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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색(事色)] 힘겨운 시절의 초상_ 윤은경의 형용모순(形容矛盾)

박정수 미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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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4-01-26 10:55

아트테크 ① 윤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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팍팍한 오늘을 사는 현대인의 초상을 카메라에 담는 작품이 있다. 모순에 찬 우리 사회의 모습을 자연스레 보이게 하는 한편의 시와 같다. 자세히 보면 엇갈린 이미지가 겹쳐서 그렇게 될 수 없는 이미지 임에도 전체를 보면 자연스럽게 보인다. 2024년 오늘을 사는 우리네 모습과 닮아 있다.

윤은경作. 시인의 지금. digatal drawing. 35x50cm. 2023

윤은경作. 시인의 지금. digatal drawing. 35x50cm. 2023

'시인의 지금'이라는 작품은 불편을 감추려 들지 않는다. 오히려 보란 듯 불편을 과시한다. 어느 순간 작가의 시선에 포착된 장면은 카메라 렌즈에 담기고, 렌즈에 담긴 이미지는 작가에 의해 삭제되거나 다른 이미지와 편집되어 있다. 새로운 장면이 아니라 가만히 있던 어떤 장면을 움직이지 못하게 렌즈에 담았다. 서로 다른 그림들을 모아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한다. 하나이면서 여럿이 된다.

양립할 수 없는 단어의 결합 같은 형용모순(形容矛盾)이나, 전혀 별개의 이미지를 중첩시키는 낯설게 하기(Defamiliarization)와 같은 선상의 이미지 해석이다. 문학적으로는 ‘시끄러운 침묵’이나 그림에서는 마그리트의 작품처럼 전혀 엉뚱한 장소에 물건을 두는 등의 의미를 지닌 이미지들이다.

윤은경作. 고요에 서다. digatal drawing. 80x60cm. 2023

윤은경作. 고요에 서다. digatal drawing. 80x60cm. 2023


세상의 여러 모양은 여러 가지 눈으로 바라본다. 인공이 가미된 자연의 이미지임에도, 계절의 변화를 보여줌에도 이미 자연의 것이 아님에도 그냥 존재하게 만든다. 작품 '고요에 서다'가 있다. 굳게 닫힌 창, 창의 이미지에 중첩된 녹음 짙은 이파리들, 빛바랜 회벽과 앙상한 나뭇가지들. 무엇인가를 이야기하면서도 무척이나 조용하다. 움직임을 감지할 수 없는 ‘고요’와 온갖 움직임과 시간과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중첩된 이미지들이 만났다. 자연풍경과 인공의 창틀은 숨겨진 또 다른 코드로 작용한다. 분명 시끄러운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오늘을 사는 현대인은 지금 무엇인가를 하지않으면 안되는 억압의 시절을 보내고 있다.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면서 조용히 있으면 시절에 묻혀버릴지 모른다는 억압의 시간이다. 윤은경의 형용모순(形容矛盾)이라는 용어가 적합한 시절이다. 카메라 렌즈로 시인처럼 그림을 쓴다. 카메라 렌즈에 들어온 자연풍경은 자연에서 디지털 이미지로 전환된다. 더잉상 자연이 아니다. 그럼에도 자연의 모습이다. 형용모순이다.

윤은경作. 시인의 편견. digatal drawing. 20x30cm. 2022

윤은경作. 시인의 편견. digatal drawing. 20x30cm. 2022

'시인의 편견'이라는 작품이 있다. 머리, 가슴, 배로 나뉘는 곤충처럼 식물을 분리 시켜놓았다. 사진으로 글을 쓴다. 지금 우리 사회가, 지금의 현실을 이기고 지켜나가야 할 의지의 그림들이다.

박정수 미술칼럼니스트/정수아트센터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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