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현태 기자
지난해부터 만나는 친구들이 ‘영끌족’인 기자에게 던지는 말이다. 금리 인상으로 고공행진이었던 집값이 본격적으로 하락하기 시작하면서, 영끌족들이 살아가기 힘들다는 소식을 접한 뒤의 반응이다.
‘영끌’은 가용 가능한 자금과 대출을 활용해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다는 의미의 신조어다. 문재인 정부 때 집값이 크게 치솟으면서 생겼다. 특히 2021년 2030세대의 영끌 매수세가 거셌다.
당시 서울 아파트 매매 시장에서 가장 큰 손으로는 ‘30대’가 꼽혔다. 30대는 서울 아파트 3채 중 1채를 매입하며 전통적인 주력 구매층인 40∼50대를 압도했다.
한국부동산원 집계에 따르면 2021년 한 해 서울 아파트 매매 건수는 총 9만3784건으로 이 가운데 30대가 33.5%인 3만1372건을 매입해 전 연령대를 통틀어 최다를 기록했다.
다만 영끌족의 고비는 지난해 고금리·고물가·고환율, 즉 ‘3고 시대’가 열리면서 시작됐다. 수억 원대 빚을 내고 집을 산 영끌족에 초비상이 걸렸다. 대출을 받을 수 있는 만큼 받아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뤘지만, 주택담보대출부터 신용대출까지 받아 집을 산 영끌족은 고금리로 인한 금융 부담이 커졌다.
환경이 열악해졌다고 샀던 집을 팔수도 없다. 매수심리가 역대 최저로 떨어지면서 매수했던 때보다 수억원 떨어진 하락 거래가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영끌족이 할 수 있는 거라곤 허리띠를 조르고 빚을 조금씩 갚아나가며 돈벌이에 안간힘을 써야했다. 대출을 받아 비싸게 산 내 집이 경매로 넘어가지 않게 더욱 치열하게 살아가는 중이다.
그러나 그동안 버티던 ‘영끌족’들이 소유한 부동산들이, 이자와 대출금 상환에 대한 어려움 때문에 매물로 하나둘씩 나오고 있다. 2년 전까지만 해도 경매시장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서울 아파트 물건이었지만, 지난해 경매 진행 건수는 총 734건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영끌족이 가장 많다고 평가받는 노도강(노원·도봉·강북구) 아파트 비중은 12.8%로 나타났다.
최근 영끌족을 ‘투자하다 망한 사람’으로 바라보는 시선들이 있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오락가락한 부동산 정책으로 태어난 영끌족이지만, 마냥 생각 없이 빚내서 투자했다가 실패한 사람이라고 평가되는 셈이다.
2021년 청년 대부분은 누구나 한번쯤 생각했을 것이다. 이 월급 받으면서 집을 살 수 있을까? 치솟는 부동산 가격에 시기를 놓치면 평생 집을 살 수 없겠다는 느낌. 이에 지금이 아니면 집을 사지 못한다는 불안심리가 작용하면서, 실행으로 옮긴 영끌족도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물론 큰돈을 만지기 위해 영끌족에 올라탄 사례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지만, 영끌족들이 ‘내 집’이라는 안식처를 구하기 위한 움직임이었다는 점을 주목해야한다.
‘1인가구 생애최초 특별공급’ ‘청년 원가주택’ 등 국가 복지정책에 해당사항이 없는 영끌쪽은 잘못된 정부 정책 방향성 때문에 생겨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자 또한 영끌을 시도한 사람으로서 국가와 사회에 ‘빚을 탕감해달라’, ‘지원을 해줘야 한다’고 말한 적이 없다. 다만 매달 월급 절반 이상을 원금·이자로 써야하는 어려운 현실을 ‘빚투 실패자’로 취급 받는 게 문제라고 지적하는 것이다.
금융위원회는 최근 윤석열닫기윤석열기사 모아보기 대통령에게 주택담보대출 차주 중 총부채상환비율(DTI)이 70% 이상인 경우 채무조정을 해주기로 했다. 9억원 미만 주택을 구매자 중 ‘주담대 상환 애로 차주’는 원금 상환을 최대 3년간 유예할 수 있다.
정부 역시 금리가 급등하고 집값이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영끌족이 투자 실패자가 아닌 지원이 필요한 취약계층이라고 판단한 셈이다.
다만 부동산 투자가 망했다고 무조건적인 정부의 지원을 바라면 안된다. 그 순간부터 영끌족은 투기 실패자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영끌족에 대한 비난은 정부 지원에 대한 암묵적인 반대의 목소리이기도 하다. 국민을 보호하는 것은 정부의 역할이지만 영끌을 선택한 책임은 본인에게 있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더 나아갈 수 있는 계획을 세워야 하는 시점이다.
주현태 기자 gun1313@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