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대윤 피플펀드 대표이사
비즈니스 리서치 컴퍼니에 따르면 글로벌 핀테크 시장 규모는 2025년 1,918억 달러(약230조원), 2030년에는 3,253억(약390조원) 달러까지 1.7배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쯤되면 IT강국인 한국의 핀테크 산업 현황이 궁금해진다. 하지만 아쉽게도 한국 핀테크 산업의 성장 속도는 글로벌에 비해 더디다.
글로벌 리서치업체 핀덱서블에 따르면 주요국 핀테크 산업 발전 순위에서 한국은 2020년 18위에서 2021년 26위로 밀려났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국내 핀테크 산업의 성장 저해 원인으로 규제체계를 꼽는다.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의 보고서 ‘디지털 금융혁신 동향과 정책적 시사점’에서, 한국은 정보통신(IT) 산업의 발달로 핀테크 수용도가 다른 국가에 비해 높은 편이지만 금융산업의 경영환경과 직결되는 법제도가 핀테크 기업이 제공하는 신규 서비스를 수용하기 어려운 구조인 것으로 평가됐다.
당국은 지난 몇년간 핀테크 산업 성장을 위해 업계와 소통하며 규제 완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18년 7월 금융위원회는 ‘금융혁신기획단’을 신설해 핀테크 기업과의 소통 통로를 마련하고 금융혁신을 체계적으로 지원해왔다.
2019년 6월에는 국무조정실, 기재부, 과기부 등 유관부서와 함께 ‘핀테크 활성화 규제혁신 방안’을 발표하고 각종 규제 혁신을 통해 글로벌 핀테크 기업을 키워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최근 분위기로는 그간 당국이 쏟았던 산업 부흥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것은 아닐지 걱정된다. 작년 국정감사에서 촉발된 ‘빅테크 독과점’ 논란으로 ‘빅테크 규제’에 대한 사회적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그 화살이 핀테크 업계 전반에도 퍼졌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금융플랫폼과 기존 금융산업 간 ‘동일기능, 동일규제’를 원칙으로 내세우며 핀테크에 대한 규제 강화를 예고했다.
빅테크 플랫폼에 대한 규제의 움직임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많은 나라의 정책 관료들은 최근 몇 년간 급성장해버린 빅테크 플랫폼이 시장지배적 지위를 이용해 자사 서비스를 우대하여 소비자의 선택권을 제한하고 업계의 생태계를 퇴화시킬까 걱정한다. 건전한 시장경제 환경을 유지하고 소비자 보호를 위한 당국의 규제 방향은 타당하다.
다만 해당 규제의 적용 대상을 빅테크뿐 만 아니라 중소형 금융 플랫폼에도 포괄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역설적으로 시장경쟁을 약화시키고 소비자의 선택권 역시 제한할 수 있음을 면밀하게 검토해주기를 바란다.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할 아이디어를 가지고 힘찬 발걸음을 내딛은 중소형 핀테크사들에는 규제 하나 하나가 생존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작년 9월 금융소비자보호법이 본격 시행되면서 마이데이터 자격을 취득한 보험 앱들이 핵심 서비스인 상품중개 서비스를 할 수 없게 됐다. 이로 인해 업계 1위 회사조차도 직원 절반을 내보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국내 핀테크 산업의 규모도 기존 시장 대비 미미한 편이다. 2021년말 상반기 기준, 공식 등록된 핀테크사 345곳 중 실적을 공시한 핀테크사 186곳의 2020년 매출 총액은 4조5089억으로 집계됐다. 동일 기간 4대 금융지주의 매출인 161조 5344억원 대비 2.8% 수준에 불과하다.
더욱이 지금 핀테크 업계는 편의성을 너머 금융의 새로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기 위한 진화 단계에 접어들었다.
간편 송금, 결제 등 기존 금융 대비 편의성을 획기적으로 높인 서비스는 이제 보편화되고 더 높은 투자 수익과, 더 합리적 조건의 자금 조달을 돕는 등 금융 본연의 기능들을 진보시키는 핀테크 서비스가 그 가능성을 입증해가고 있다.
핀테크 신생 업권인 온라인투자연계금융은 기존 금융기관들로부터 소외된 금융사각지대에 자금을 공급한다는 취지로 생겨난 신규 핀테크 업계다.
그 예로, ‘나이스abc’는 기존 금융기관에서 대출이 어려운 중소기업들의 상환 능력을 재평가해 2월 말 기준 3,857억원의 대출을 시장에 공급했다. ‘피플펀드’ 역시 AI 신용평가 기술력을 바탕으로 개인신용대출 이용 고객 중 절반에게 기존 2금융권 대출을 대환해 평균 금리 4.5%p를 낮추고, 한도도 1,255만원을 개선한 혜택을 제공했다.
이렇듯 보다 나은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중소 핀테크 기업들이 연구개발 노력을 지속하며 금융산업의 새로운 활력을 제공하게 하기 위해서는 당국의 유연한 규제 적용이 절실하다.
AI 기술 기반 신용평가를 통해 180만 자국민의 금융 이자 비용을 낮추고 있는 미 핀테크 기업 ‘업스타트’의 창업자인 데이브 기루아르(Dave Girouard)도 포용적 금융이 중요한 가치라면, 그 가치를 위한 시도들이 지체되지 않도록 샌드박스 같은 제도적 지원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우리도 핀테크가 창출하고 있는 사회적 가치를 객관적으로 평가해보자. 신생 핀테크사들이 기존 금융의 문제를 해결하는지, 소비자들에게 더 나은 혜택을 제공하는지, 상생 금융 생태계 조성에 기여하는지 말이다.
그리고 그 사회적 가치가 명약관화하다면 개별 기업들의 노력이 성과를 내고 고차원적인 산업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선별적인 규제 적용과 제도적 지원을 검토해주기를 바란다.
그래야 한국 핀테크 업계도 봄을 지나 여름을 맞이할 수 있다. 여름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 열매가 붉게 익어가듯, 금융당국의 명확한 규제 방향과 유연한 운영이 핀테크 업계의 의미있는 결실을 무르익게 한다는 점을 기억해주길 바란다.
[김대윤 피플펀드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