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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금융질서 뒤흔드는 票퓰리즘 경계해야

김의석 기자

eskim@fntimes.com

기사입력 : 2021-09-29 10:38

‘신용사면’ 선의의 피해자 없게 체크 필요
대선 정국 부동층 의식 정책 의구심 해소

[데스크 칼럼] 금융질서 뒤흔드는 票퓰리즘 경계해야
[한국금융신문 김의석 기자] 인류 문명과 역사를 함께해온 것이 채권채무(債權債務) 관계다. 도저히 갚을 수 없는 빚을 갚지 않아도 되게 해 주는 빚 탕감(蕩減) 역시 그만큼 역사가 깊다. 인류 4대 문명의 기원 중 하나인 고대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에선 BC 2400년에 왕이 모든 빚을 탕감하는 칙령(勅令)을 발표했다고 한다. 고대 유대 사회에는 50년마다 한 번씩 오는 안식년인 '희년(禧年)'에 모든 부채(負債)를 탕감하고 빚 때문에 노예가 된 사람은 해방시키는 율법(律法)이 있었다.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정치지도자 솔론(solon)이 BC 594년 단행한 '솔론의 개혁'의 핵심 내용도 빚 탕감이다. 빚 때문에 빼앗긴 토지를 되돌려주고 노예(奴隷)가 된 사람은 자유의 몸으로 풀어줬다.

서양(西洋)뿐만 아니라 우리 역사를 살펴봐도 빚 탕감은 드물지 않게 등장한다. 신라 문무왕(文武王)때에 어려운 백성의 부채를 탕감하고 이자(利子) 면제를 단행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에도 흉년(凶年)이 들거나 나라에 경사가 있으면 춘궁기(春窮期)에 빌려주었다가 가을 추수(秋收)후에 되돌려 받는 곡식인 환곡(還穀)과 같이 백성이 나라에 진 빚을 탕감해 주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물론 나라에서 탕감해 준 빚을 끝까지 받아 내 사리사욕(私利私慾)을 채우는 탐관오리(貪官汚吏)도 적지 않아 문제가 되기도 했다.

2021년에도 이 같은 역사는 되풀이되는 듯하다. 정부가 금융 채무를 일시 연체했다가 상환한 사람들에게 신용등급을 회복시켜주는 ‘신용사면(信用赦免)’을 추진하기로 했어서다. 신용사면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97년 IMF 외환위기 직후 김대중(金大中)정부 때도 소액연체자(少額延滯者)에 대해 비슷한 조치(措置)를 한 적이 있었다.

사실 ‘신용사면’이란 단어는 없다. 법률용어(法律用語)인 사면을 신용에다 적용한 것이다. 돈을 빌렸다가 제때 갚지 않은 ‘연체(延滯) 기록’, 이 기록을 최장 5년간은 안고 가야 하니까, 신용측면에서 보자면 일종의 ‘낙인(烙印)’인 셈이다.

문재인(文在寅) 정부가 이런 불행한 낙인 지워주기에 나섰다. 이번 ‘신용사면’ 조치는 금융권이 지난해 1월부터 금년 8월 말까지 2000만원 이하 채무를 연체했더라도 올해 안으로 전액 상환(償還)하는 개인과 개인사업자는 신용도 하락에 따른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한 대책(對策)이다. 연체 이력(履歷) 정보를 금융회사끼리 공유하는 않는 게 핵심이다. 빚을 다 갚아야 사면대상자 명단(名單)에 오를 수 있기 때문에 특혜(特惠)는 아니다.

하지만 꼼꼼히 뜯어보면 공정한 정책인지 의구심(疑懼心)이 드는 게 사실이다. 일례로 신용사면에는 코로나19 피해자를 돕는다는 선의의 취지와 달리 심각한 시장 왜곡(歪曲) 가능성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은 고객이 맡긴 돈을 대출(貸出)해 주고 남긴 이자로 생존한다. 그만큼 금융업 연체는 최대의 리스크로 꼽힌다. 그래서 은행은 금융회사끼리 연체 기록을 공유해 '신용불량자(信用不良者)'를 걸러낸다.

이번 신용사면은 금융회사 간 연체 기록 공유와 활용을 제한(制限) 한다는 점에서 논란이 될 수 있다. 돈을 빌려줄 때 신용불량자를 구별(區別)할 길이 없어진다. 때문에 금융회사도 이미 이자 상환유예(償還猶豫) 조치로 연체파악이 어려운 상황에서 '신용사면'까지 진행되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는 눈치다. 빚을 제때 갚은 사람이 더 높은 신용등급을 받는 것이 금융에서는 상식(常識)인데, 이런 원칙(原則)이 흔들리면 금융에 대한 신뢰가 무너질 수도 있어서다. 또 코로나19 여파로 부득이하게 연체했다는 것을 파악(把握)하는 게 어렵다는 점도 문제다. 사유(思惟)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는 주식이나 코인 투자를 위해 빚을 냈다가 연체한 경우도 '신용 대사면' 대상에 포함될 수도 있다.

금융업(金融業)의 본질을 흔들고 있지만, 정부가 실행에 나서면 금융회사는 사실상 거부할 만한 힘이 없다.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금융감독원(金融監督院) 감사 등을 통해 금융회사에 영향력(影響力)을 행사할 수 있는 게 현실이다. 금융회사 입장에서는 대출이 부실화해도 정부 지침에 따랐다는 변명(辨明)이 가능하다. 도덕적 해이가 만연할 수밖에 없다. 국제금융 경쟁력이 후진국에 비견(比肩)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가 수십 년간 매진해온 ‘선진 신용사회’라는 대전제(大前提)에 맞지 않는다는 점에서 대통령 지시는 '관치금융(官治金融)'이자 '정치금융(政治金融)'이라는 비판이 불가피하다. 금융업이 복지나 사회사업(社會事業)이 아닌 이상, 그런 역할(役割)은 정부가 재정으로 감당해야 할 몫이다. 게다가 내년 대통령 선거에 부동층(浮動層) 표심을 잡기 위한 정책(政策)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도 있다. 대선 등 큰 선거 때는 결국 중도 층으로 통하는 부동층을 누가 잡느냐가 승부(勝負)를 가를 때가 많다. 이들 부동층은 경제적으로 이익이 되는 쪽에 표를 던지는 성향(性向)이 높은 게 사실이다. 특히 자영업자(自營業者) 등 경기와 정책에 민감한 부동층의 경우는 이 같은 쏠림현상이 더욱 심해진다.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막론하고 역사에서 빚 탕감과 사면이 등장한다는 건 그만큼 부채로 인해 고통을 받은 취약계층이 많았고, 이로 인해 건강한 공동체(共同體)를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의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가뜩이나 법 적용을 무시하고 생떼를 쓰는 억지 주장이 횡행하는 마당에 문재인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무조건 신용사면 메시지를 내는 것은 선을 넘은 것이다. 말로는 금융산업 선진화(先進化)를 외치면서 행동은 정치금융을 더 강화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금융 산업이 흔들리면 나라의 근간(根幹)이 위태로워진다. 이미 외환위기(外換危機)에서 크게 데여본 적이 있지 않았나. 금융은 봉이 아니다. 지금은 ‘코로나19 이후’의 새로운 비즈니스와 일자리를 만들어 낼 수 있도록 국가적 힘을 모아야 할 때다.

김의석 기자 eskim@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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