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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여는 인맥관리19] 사람을 잘 만나는 준비: 이도차완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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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0-05-06 18:48

일본은 1467년 오닌의 난으로 막부가 무너지면서 22명의 다이묘간 전쟁이 100년 이상 계속되는 '센고쿠시대(戰國時代)'로 접어들었다.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인 백성은 지긋지긋한 전쟁이 빨리 끝나기만을 고대할 뿐이었다. 그리고 1590년,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 통일이 완성돼 평화가 찾아왔다.

하급무사의 아들이었던 히데요시는 오다 노부나가의 신발지기로부터 시작해 일본의 제 1인자인 타이코까지 출세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우리에게는 임진왜란의 원흉이지만 아직도 일본에서는 추앙 받는 인물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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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통일전쟁 후환을 막은 최고의 선물, 이도차완
통일전쟁의 시작은 오다 노부나가였다. 그러나 일본의 통일을 목전에 둔 노부나가는 숙소였던 혼노사에서 믿었던 장군 아케치 미쯔히데의 쿠데타로 급사하게 된다. 평소 노부나가는 무서운 군주로 각인이 되어 있었다. 마음 속으로는 인정이 있지만 겉으로는 항상 호통을 치고 질타했다. 이런 습관으로 전쟁 출정을 준비중인 소심한 미쯔히데에게 격려한다는 것이 도리어 본인을 제거하는 것으로 오해를 불러일으켜 어처구니 없이 쿠데타를 일으키는 결과를 만들었다.

히데요시는 혼노사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공성전을 벌이다가 그를 키워준 주군인 노부나가의 복수를 위해 서둘러서 전투를 마무리하고 미쯔히데를 제거하기 위해 전광석화같이 이동했다. 학식도 없고 외모도 볼품없는 히데요시의 재능을 인정하고 다이묘까지 올려준 노부나가가 없었다면 히데요시는 하급무사로서 평생을 살았을 것이다. 노부나가의 사망 이후 미쯔히데의 세력이 급속하게 확산되면서 대부분의 다이묘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우물쭈물하고 있었지만, 히데요시는 인생을 건 전쟁을 시작한 것이다.

히데요시와 미쯔히데의 한판 승부처는 야마자끼였다. 그곳에는 쯔쯔이 준께라는 이해타산이 빠르고 교활한 다이묘가 있었다. 서로의 전력이 비슷한 히데요시와 미쯔히데 둘 다 쯔쯔이 준께에게 지원을 요청했지만, 누가 이길지 예측할 수 없는 전쟁에서 잘못된 선택은 본인이 몰락할 수 있기 때문에 쯔쯔이 준께는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미루기만 했다. 결국 야마자끼 전투는 히데요시의 승리로 끝났고, 히데요시는 명실 상부한 오다 노부나가의 후계자로서 자리매김을 하면서 일본 전역을 통일하게 된다.

전투가 끝난 후 쯔쯔이 준께는 일본의 최고 권력자가 된 히데요시의 호출을 받았다. 히데요시의 분노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쯔쯔이 준께는 절묘한 한 수로 히데요시의 용서를 받고 영지도 보전하게 된다. 그것은 '이도차완'이라는 찻잔이었다. 주로 조선에서 수입하거나 조선의 고급기술로 빚은 고급 찻잔을 일컬어 '이도차완'으로 불렀으며, 지금도 일본, 대만의 박물관에서 보물로 소장되고 있다.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조건은 상대방을 연구하는 일
당시 일본에서 차문화는 귀족의 문화생활이었다. 비천한 신분에서 각고의 노력으로 다이묘까지 출세한 히데요시였지만 가슴 한구석에는 출신성분에 대한 자격지심이 있었다. 히데요시는 임신한 어머니의 영양실조로 인해 태어날 때부터 볼품없는 외모로 원숭이라고 불렸고, 장군으로 출세하고도 그 별명을 들어야만 했다. 평소 잘 화내는 모습을 잘 보이지 않던 그였으나, 비천한 신분으로 놀림을 받는 경우에는 언젠가는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만들었다.

그런 히데요시에게 쯔쯔이 준께는 일본 최고의 실력자에게 어울리는 명품 찻잔인 ‘이도차완’을 존경과 사죄의 선물로 들고 갔다. 쯔쯔이 준께의 교활함을 익히 알고 있는 히데요시였지만 ‘이도차완’을 진상 받으면서 명문 귀족으로서 인정받았다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히데요시는 선선히 쯔쯔이 준께를 용서하고 휘하의 영주로 삼아 영지도 그대로 인정해주었다.

쯔쯔이 준께 입장에서는 모든 영지를 갖다 바쳐도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이도차완’이라는 찻잔 하나가 히데요시의 자존심을 살려주고 본인도 살아남는 절묘한 한 수가 된 것이다. 그리고 평소 히데요시의 숨은 욕망을 연구해 철저히 대비한 프로파일링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영업이든 인간관계든 제일 중요한 것은 프로파일링으로 상대방을 철저히 연구하는 것이다. 자부심을 갖는 업적이 무엇인지, 어떤 일에 예민한지, 주요 관심사는 무엇인지를 알고 만나고 진심으로 인정해야 마음이 열리는 접점을 만들 수가 있다.

프로파일링은 어렵지 않다, 관심만 가지면 많은 정보를 모을 수가 있고 정보와 정보를 연결하면 의미를 알 수가 있다. 사소한 정보 하나로 성공스토리를 요청하고 귀를 기울여 경청한다면 신뢰가 쌓이면서 그 과정에서 더 많은 정보를 얻어 프로파일링에 도움을 얻을 수 있다. 나의 이야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의 이야기, Hi-Story가 중요하다.

※ 본 기사는 한국금융신문에서 발행하는 '재테크 전문 매거진<웰스매니지먼트 5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윤형돈 인맥관리지원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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