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교수(법무장관 후보자)의 딸이 외국어 고등학교, 이공계 대학(고려대)을 거쳐 의학전문대학원으로 진학하는 과정에서 꼼수를 썼다는 의혹과 관련해 날선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그간 공정사회를 바라는 많은 사람들이 외고 등 특수 목적 고등학교의 폐지를 외쳐왔다. 외국어 고등학교는 '외국어 특화 고등학교'라기 보다는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한 가진 자들이 거치는 코스라는 인식이 강했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은 어학영재 양성이라는 '특수 목적'과 전혀 맞지 않는 외고의 존립 이유를 찾지 못하겠다고 한탄해왔다.
그런 와중에 늘상 '진보 이념'을 내세워 온 조국 교수의 딸이 '공정한 경쟁' 대신 각종 제도적 허점을 이용해 의사가 되려고 한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들이 분노했다. 진보 이념에서 '공정 경쟁'은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조국 교수를 지지했던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도 그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입으로만 진보를 떠드는 '패션좌파', '강남좌파', 혹은 '귀족좌파'에 대한 분노가 우리 사회를 가득 메웠다. 심지어 '기승전 조국'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조국 교수를 둘러싼 논란은 연일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조국 교수의 딸은 고등학생 신분으로 영어로 된 병리학 논문의 '제1저자'가 돼 많은 사람들이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다. 외국에서 공부를 해서 영어를 아무리 잘 한다고 한들 전문 지식이 없으면 이해조차 하기 어려운 병리학 논문을 썼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들이 경악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부자 아빠를 둔 데다 학점은 나쁜 학생이 꼬박꼬박 장학금을 탔다는 사실 또한 납득이 되지 않았다. 이러다 보니 조국 교수에게 '이중 인격자'나 '위선자'라는 딱지를 붙이는 경우까지 나왔다.
조국 교수를 둘러싼 각종 의혹들이 많았지만, 그의 자식이 엘리트 코스를 밟아가는 과정은 많은 사람들에게 불편하게 다가왔다.
조국 교수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이번 논란은 '이미 망가져버린' 한국 교육시스템의 민낯을 낱낱이 보여줬기 때문이다.
지금의 교육 시스템은 부자들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대학 진학 방법이 다양하다보니 능력 있는 부모가 자식의 '스펙'을 확보해 주는 일이 중요해졌다. 대신 공부를 잘하는 가난한 자들의 자식은 명문 대학 입학이 과거보다 훨씬 어려워졌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이 '무너진지 오래된' 교육 시스템을 고치자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번 기회에 말 그대로 '공정한 경쟁' 시스템을 만들자는 것이다.
■ 지금 대학입시는 현대판 음서제도..학생 실력과 무관한 대학 진학 비판 목소리 높아
지금은 대학들이 '수시'로 학생들을 뽑고 있다. 심지어 대학을 갈 수 있는 방법이 수천개에 달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한국의 대학 입학 시스템은 엉망이 됐다.
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을 '다양화' 해 놓으면 온갖 꼼수가 판을 치게 되는 것은 너무나 뻔한 이치다. 아울러 돈이 많은 엄마, 아빠를 둔 학생들이 훨씬 유리하다는 점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조국 사태가 터진 뒤 '학력고사'를 쳐서 대학을 갔던 많은 중년들은 지금의 입시 시스템에 대해 분노했다. 학력고사 시절 '입시지옥'이란 얘기를 입에 달고 살았던 세대지만, 적어도 지금의 시스템보다는 훨씬 공정했기 때문이다.
50대 초반 직장인 A씨는 "고3 자녀를 둔 아빠로서 지금의 교육시스템은 도무지 용납할 수 없다"면서 "조국 씨의 자녀 교육법은 우리 사회의 상류 계급이 어떻게 부와 권력을 되물림하려는지 여실히 보여준 사례"라고 말했다.
그는 "솔직히 요즘 대학은 실력이나 능력과는 무관하게 학생을 뽑고 있다"면서 "수시 입학의 본고장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과 비교해도 한국 교육 시스템은 너무 썩었다. 한국은 수시 비중이 너무 높아 미국인들도 놀란다"고 말했다.
그는 "상식이 있는 사람들과 얘기를 해보면, '수시'를 통해 대학을 들어간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조국 사태를 통해 이 썩은 교육 시스템에 메스를 가해야 한다"고 열을 올렸다.
문재인 정부가 공정경쟁을 정말 중요한 가치로 생각한다면 '일부러 입시제도를 복잡하게 만들어 기득권만 위하는' 지금의 제도를 뜯어고쳐야 한다는 목소리들도 많았다.
펀드매니저로 일하는 B씨는 "지금의 대학입학 시스템, 로스쿨, 의전원은 모두 고려시대 음서제도와 똑같다"면서 "신분의 되물림 제도를 하루빨리 철폐하고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똑같은 날짜에 똑같은 시험지로 시험을 쳐서 성적순으로 평가하는 게 가장 공정하다"면서 "공정경쟁과 공정사회를 위해선 학력고사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고등학생 아들을 키우는 B씨는 1990년 한국 대학입시 역사상 유일무이하게 경쟁률이 5:1이 넘었던 시기에 시험을 쳤던 사람이다. 어려운 형편에도 열심히 공부해 명문대학을 나왔지만, 지금의 교육 시스템이라면 자신은 대학을 아예 가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증권사에서 금융상품을 운용하는 40대 후반의 C씨는 "조국사태를 통해 우리사회가 배우는 게 있어야 한다. 왜 대학 입시를 '정시'나 학력고사 식으로 되돌리자는 얘기는 하지 않는 것이냐"고 되물었다.
그는 "386 정치인들이 학생운동 한번 한 것을 끊임없이 벼슬로 내세우면서 이 사회구조를 엉망으로 만들었다. 그들이 진정한 진보주의자이거나 양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지금의 대학입시는 뜯어고치는 게 맞다"면서 "지금의 교육제도는 진보의 이념과 전혀 맞지 않는 부와 학력의 되물림 구조"라고 일갈했다.
■ 제도허점 이용해 명문대에 자식 보낸 지인 마저도..."양심 있다면 학력고사나 정시로 돌아가라"
필자가 오랜 기간 알고 지내온 50대 중반 D씨의 자녀는 현재 명문대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있다. 놀랍게도 D씨의 자녀도 시험을 치지 않고 대학에 들어가 의사의 길을 준비하고 있다.
아버지가 해외 근무를 하는 동안 자녀는 외국에서 학교를 다녔다. 그런데 이 '우연한' 경험 때문에 딸이 명문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고 했다. 그가 말했다.
"당시 1~2명을 외국에서 졸업한 학생으로 뽑았어요. 외국 학교 졸업했다는 사실과 자기 소개서만으로 제 아이가 그 대학에 들어갔어요. 입시 전형이 2천개 이상이라고 하니, 정말 대학을 가는 방법이 많아요. 우리 애의 경우도 운 좋게 이런 시스템의 혜택을 입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물었다.
"외국에서 고등학교를 나왔다는 사실이 의학도를 뽑는데 왜 중요한가요? 의학이란 학문에 왜 외국생활 경험이 중요한지 모르겠네요. 영어권 외국 경험이라면 영문과에서 한 두명 뽑을 수 있겠지만요. 뭔가 좀 이상하지 않나요?"
D씨는 내 말에 수긍한 뒤 현재 한국의 교육시스템이 완전히 정상적인 궤도를 이탈했음을 인정했다. 자신의 아이가 누구나 부러워하는 곳에 들어갔지만, 이 시스템이 불공정하다고 말했다. 정상적인 시스템이었으면 자신의 딸이 명문대학에 들어가서 의학을 공부하고 있지 않을 것이란 점을 인정했다. 냉정하게 얘기하면 그 역시 왜곡된 교육 시스템의 수혜자였음을 시인한 것이다. 그리고 솔직하게 말했다.
"예컨대 우리도 입학사정관제니, 수시 입학제도니 하는 것들을 기존 학력고사 보다 더 나은 제도라고 해서 도입했습니다. 하지만 외국에선 '수시'에 대해 훨씬 엄격한 심사를 해요. 우리는 지금 수시가 많은 부작용을 만들고 있습니다. 교육에서도 부익부빈익빈이 심해지죠. 시쳇말로 없는 사람들의 아이가 언제 스펙을 쌓습니까?"
그러면서 그는 학력고사가 가장 공정하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학력고사의 경우 자신의 점수에 맞춰서 특정 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 명확하고 간단한 시스템이다.
1990년대 초반까지 '공부를 못하거나 내신성적이 나쁘면' 명문 대학은 꿈도 못꾸는 '대단히 공정한' 시스템이 작동했다. 덕분에 지방의 고등학교에서도 고르게 서울에 있는 명문대학에 학생들을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대학이 학생들의 '봉사활동'이나 '국제경험' 등과 같은 이상한 항목들로 학생들을 선발하고 있다.
사실 말이 좋아 봉사활동이지, 있는 집 아이들의 봉사활동은 분식회계나 마찬가지라는 주장까지 있다. 없는 집 아이들은 봉사활동을 할 여유조차 없는 상황에서 이런 이상한 항목을 만들어 귀족 자제들에게 제도적인 특혜를 준다는 말도 많다.
아무튼 '수시입학'이나 '다양한' 평가 방법은 불공정함을 감추는 속임수일 뿐이라는 비판이 많았다. D씨도 이에 동의했다.
"대학이 수시로 신입생의 80% 이상을 뽑는다는 것은 사실 말이 안 돼요. 정시를 기본으로 해야 경쟁이라는 말의 의미가 있습니다. 솔직히 말합시다. 수시는 '스펙 싸움' 아닙니까? 그게 학생들의 실력과 무슨 상관이 있나요?"
학생들의 스펙은 사실 부모의 부와 지위에 의해 결정된다. 무엇보다 공정해야 할 대학입시에선 '정시'가 기본이 돼야한다는 점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최근까지 아이를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해 용을 썼던 D씨도 동의했다.
"적어도 배보다 배꼽이 크면 안 됩니다. 정시를 80~90% 이상으로 수시는 10% 정도에서 보완하는 의미로 활용해야 합니다."
그는 자신의 과거를 반성(?)하며 누군가 '학력고사 부활운동'을 펼친다면 반드시 서명에 참여하겠다고 다짐했다.
■ 대학입시는 '공정함'이 생명..학종 없애야 한다는 주장들도
대학입학 학력고사는 1982년부터 1993년까지 대학생을 뽑는 제도였다. 말 그대로 대학 입학을 위한 시험이었다.
기본적으로 필기시험 320점과 체력장 20점(대부분 20점 취득), 즉 340점을 만점으로 해서 이 점수에 맞춰 대학에 진학하던 제도였다.
이 제도에선 봉사활동 점수도, 학생시절 각종 사회활동 경력도, '너그 아부지 머 하시노' 식의 오해도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오로지 점수가 말을 할 뿐이었기 때문에 어떤 제도 보다 공평하고 공정했다.
세상에 완벽한 제도란 없다. 학력고사는 주입식 교육의 폐단을 단죄하자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이후 수능제도에 그 자리를 내줬지만, 수능 제도 역시 많은 문제를 노출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부모의 지위가 자식의 대학 입학을 결정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정도로 교육 시스템은 무너져버렸다.
학력고사든, 수학능력시험이든 정시가 중심인 시스템에선 '다 같이 같은 자리에서 시험으로 겨룬다'는 차원의 공정성은 담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정시 비율이 30%도 되지 않는다. 명문대학들도 경쟁력이 있는 뛰어난 학생을 뽑는 게 아니라 부모 잘 만난 아들, 딸을 뽑는다는 우스개소리(?)도 들려왔다.
정시로 대학에 입학하고자 하는 학생들은 수학능력시험(수능)을 치러야 하지만, 정시의 비중이 줄어 들고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의 비율이 높아만 가면서 한국교육의 '공정 시스템'은 완전히 무너졌다.
부잣집에서 태어나지 못한 공부 잘하는 학생들은 '정시'를 통해서 대학에 들어가야 하지만, 정시 비중이 지속적으로 줄어들다보니 큰 불이익을 받고 있다. 실력만 따지면 명문대학에 갔을 학생이 '가난하다는 이유로'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하는 것이다.
수시 비중의 확대, 학종의 확대는 결국 상류 계급의 하류 계급에 대한 '사다리 걷어차기'에 다름 아니다.
■ 기득권층의 끊임 없는 시스템 왜곡..로스쿨, 의전, 치전 등 모두 기득권의 왜곡된 욕망 반영된 시스템
필자는 학력고사 세대다. 이 당시엔 대학을 가는 데 있어서 학생들의 실력이 가장 중요했다.
예체능계의 경우 당연히 운동 신경이 뛰어나거나 음악, 미술적 재능도 중요했다. 일반적인 학과의 경우 학업성적이 가장 중요했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 많은 수시 전형이 있으며, 자기 소개서 '따위'가 대학 입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정도로 교육시스템이 엉망이 됐다.
교육 제도가 복잡해진 이유는 간단하다. '기득권층'의 욕망 때문이다. 내 자식이 공부를 못하면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해야 하건만, 한국의 기득권층은 이를 납득하지 못한다.
공적 기관에서 일하는 한 사람이 들려준 얘기는 이러했다.
"치전이라는 말 들어본 적 있어요? 치의학전문대학원입니다. 고등학교 때 그냥 치과대에 들어가면 되는데, 다른 식으로 치과의사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어둔 제도에요. 공부를 잘 못하는 자식을 의사로 만들고 싶은 어른들의 엇나간 욕심이 만든 제돕니다. 예컨대 내 자식을 4년 동안 딴 대학에서 공부하게 하고, 이후 대학원으로 치대에 들어갈 수 있을 길을 열어둔 제도였죠."
그는 이런 식으로 제도를 왜곡하다 보면 소비자들도 피해를 입게 된다고 했다.
"치대 본과에서 4년 공부한 학생과 다른 학부 4년을 공부하고 치전에 들어온 학생의 실력차는 상당히 클 수 밖에 없습니다. 자기 자식들만 생각하는 어른들의 잘못된 욕심 때문에 이런 기형적인 제도가 생기는 겁니다. 로스쿨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로스쿨 옹호론자들은 처음 만들 때는 인생의 여러 다양한 경험을 한 뒤에 법을 전공하는 게 낫다는 식의 논리를 폈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돈 있는 집 자제들을 율사로 만들기 위한 욕구가 작동했다고 보는 게 옳아요."
사실 대학입시 수시확대, 로스쿨 도입, 의전이나 치전 도입 등이 이뤄질 때마다 비판이 많았다. 하지만 이런 제도를 도입하면서 기득권은 선진화된 제도라는 둥 다양한 방법으로 다양한 인재를 뽑을 수 있다는 둥 온갖 거짓말을 남발해왔다.
왜 그냥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는가. 이런 제도들이 도입되고 확대된 이유가 기득권의 욕망 때문 아니었는가.
■ 공정경쟁 시스템 바라는 40대, 50대들 교육개혁에 힘 합치고 싶어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 따른 이른바 '촛불혁명'으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특히 문 대통령의 취임사는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기도 했다.
문 대통령이 취임사 등에서 했던 말, 앞으로 우리사회에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발언은 많은 사람들을 설레게 만들기도 했다.
교육제도는 이런 발언과 정반대로 굴러간 지 오래됐다. 이른바 '조국사태'가 터져서 다행이다. 조국 후보 딸의 일로 인해 우리 사회가 잘못된 교육 시스템을 되돌아볼 기회를 얻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교육제도는 기득권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고, 과정은 불투명하며, 결과는 정의와 무관하다.
이 정부의 약속이 빈말에 그치지 않길 바랄 뿐이다. 그러려면 기득권 이익 사수의 첨병 역할을 하고 있는 교육제도를 싹 뜯어고쳐야 한다.
이번 일을 계기로 교육 시스템이 제발 좀 더 공정해지길 바란다. 현재 40대 후반, 50대의 학력고사 세대들, 특히 이 가운데 공정한 경쟁 시스템의 부활을 꿈꾸는 이들의 바램이 물거품이 되지 않길 바란다. 그러나 주변을 돌아보면 회의적인 사람들이 많아 안타깝다. 한 친구는 이런 말을 했다.
"이미 한국사회의 계급화는 돌이킬 수 없는 수준이라고 봐. 기득권이 너무 강력해서 교육제도 개혁도 불가능에 가까울 걸.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얘기지. 하지만 젊은층이든 누구든, 학력고사와 같은 공정한 경쟁 시스템을 만들자는 운동을 한다면 거기엔 기꺼이 힘을 보탤 준비가 돼 있다네."
장태민 기자 chang@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