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이 3분기 연속 영업적자를 기록한 가운데 주가 역시 타격을 면치 못하고 있다. 자회사 한국남동발전이 북한 석탄을 수입했다는 의혹에 더해 영국 원전 사업자 뉴젠의 지분인수 우선협상대상자 지위 상실, 누진제 완화까지 악재만 겹겹이 쌓여가는 모양새다. 이에 증권가에서는 한전에 대한 목표가 하향 조정이 이어지고 있다.
◇ 외인·기관 집중 매도…시총 1조7천억 증발
산업통상자원부가 한전이 영국 원전 사업자 뉴젠의 지분인수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상실했다는 소식을 발표한 지난달 31일 이후 주가는 8% 넘게 빠진 상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도시바는 뉴젠 지분매각이 새로운 사업모델 검토 등으로 지연됨에 따라 과도한 운영비 지출 문제 등으로 한전뿐만 아니라 타 업체와도 협상 기회를 얻기 위해 지난 7월 25일 한전의 우선협상대상자 지위 해지를 통보해왔다”고 밝힌 바 있다.
특히 외국인과 기관 투자자 중심으로 매물이 쏟아지고 있다. 외국인 투자자는 이달 1일부터 13일까지 한전을 총 325억원 규모로 순매도했다. 같은 기간 기관은 344억원을 팔아치웠다. 이에 시가총액은 2조원 가까이 감소했다. 한전의 시가총액은 지난달 31일 21조3774억원에서 이날 19조6441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총 1조7333억원이 증발한 셈이다.
한국수력원자력이 지난달 21일부터 한울 4호기를 재가동한 데 이어 한울 2호기의 발전을 재개하면서 주가는 반등을 꾀하기도 했으나 쏟아지는 악재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한전의 부진한 주가 흐름의 중심에는 전기요금 누진제 완화 부담이 자리 잡고 있다. 정부는 여름철 전기요금 부담 경감을 위해 7~8월 두 달간 주택용 누진제를 한시적으로 완화키로 했다.
한전의 자회사 한국남동발전이 북한 석탄을 수입했다는 의혹도 불거지면서 불확실성으로 작용하고 있다. 관세청은 북한산으로 의심되는 무연탄을 작년 11월 이후 두 차례에 걸쳐 총 9700톤(87만 달러)을 들여온 혐의로 남동발전을 조사하고 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실적 부진까지 더해져 주가를 흔들어 놓고 있다. 한전은 올해 상반기 연결 기준 8147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고 13일 공시했다. 이는 지난해 상반기 영업이익 2조3097억원 대비 3조1244억원 감소한 수치다.
2분기에만 영업적자가 6871억원에 달했다. 한전은 지난해 4분기부터 3분기 연속 영업 손실을 기록하고 있다. 상반기 당기순손실은 1조1690억원으로 전년 대비 2조4280억원 감소했다. 한전은 발전 자회사의 연료비 상승, 민간발전사로부터의 전력구입비 증가, 신규 설비투자 확대에 따른 감가상각비 증가 등을 상반기 적자 원인으로 꼽았다.
이에 증권에서도 한전의 목표주가를 줄줄이 내리고 있다. KB증권은 한전에 대해 2분기 실적 부진과 신규 원전 가동 시기 연기 등을 감안해 목표주가를 기존 4만5000원에서 4만2000원으로 6.7% 하향 조정했다. 유진투자증권은 연간 실적을 적자로 추정하고 밸류에이션을 하향해 목표주가를 기존 4만4000원에서 3만8000원으로 15% 낮췄다.
원민석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올해 연간 실적 악화로 인해 배당에 대한 기대감을 낮출 필요가 있다”며 “내년이 되어야 사우디·영국 원전 수주, 석탄·LNG 세제개편안 효과 등을 기대해 볼 수 있는 상황에서 현재 남은 투자 포인트는 주가순자산비율(PBR) 0.28배의 역사적으로 바닥 수준인 밸류에이션”이라고 진단했다.
황성현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글로벌 석탄수급이 타이트해 원재료 가격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면서 “반면 적어도 올해는 산업용 전기요금 개편이 없을 것으로 예상되고 정부는 에너지 개소세 개편 등을 추진하며 요금 인상 요인을 낮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재선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전기요금에 대한 완고한 정부의 입장은 한국전력 실적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공론화를 통해 전기요금 제도개편 추진을 언급했지만 연동제 도입 등 근본적 해결책 제시는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말했다.
◇ “긴 호흡 매수전략 유지 권고”
증권가에서는 한전의 주가가 기력을 되찾을 재료로 전기요금 인상과 실적 정상화를 제시하고 있다. 강성진 KB증권 연구원은 “전기요금 인상이 한국전력의 주가 상승의 드라이버가 될 수 있다”며 “지난해부터 국제에너지 가격 급등에 의한 요금 인상의 당위성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계속해서 낮은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과 빠른 국제에너지 가격 상승을 고려할 때 오는 10월 전기요금이 인상될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설명이다.
황성현 연구원은 “요금 인상이 없더라도 내년 기저설비(원전 2기) 도입 시 하반기부터는 실적 정상화가 예상된다”면서 “다만 올해 실적 부진에 대한 우려가 주가에 상당수 반영되었으며 투자자들의 시선은 이미 내년으로 향해있다는 점, 올해 실적이 최악을 기록할 것으로 보여 기저효과를 고려 시 현재 주가에서 긴 호흡의 매수전략을 추천한다”고 했다.
유재선 연구원은 “주가는 PBR 0.29배로 역사적 밴드 하단이며 규제 정상화 전까지는 추세적 반등은 가능성이 크지 않다”면서도 “다만 트레이딩 관점으로 접근은 유효하다”고 조언했다.
한아란 기자 aran@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