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정부가 어제(28일)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을 밝히면서 10조원의 추가경정예산을 포함한 20조원+α 규모의 재정 보강 카드를 꺼냈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Brexit) 등 대외여건 악화와 기업 구조조정에 따른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일자리 확충 효과가 큰 사업을 중심으로 예산을 편성하되 특히 구조조정 진행과정에서 발생하는 실업과 지역경제 위축에 집중 대응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차질없이 수행된다면 올해 성장률을 0.2~0.3%포인트 정도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정부의 기대다.
과연 정부의 기대대로 될까. 벌써부터 의구심이 나온다. 올해 예산을 워낙 보수적으로 잡아놓은 탓에 여유세수가 발생했고 그 안에서 그러니까 빚을 늘리지 않는 선에서 추경을 하려고 보니 규모가 애매해졌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추경은 긴급한 필요로 발생하는 일시적 예산이다. 당연히 어느 곳에 얼마나 투입돼야 하느냐가 먼저 결정돼야 한다. 하지만 급하게 추경을 짜다 보니 정부는 ‘20조원+α’라는 규모만 정했을 뿐 용처는 제시하지 못했다. 설명이라고는 고작 “구체적인 분야와 재원 배분은 향후 편성과정에서 결정할 것”이라는 게 전부다. ‘본말전도’ ‘깜깜이 추경’이라는 비판이 등장하는 이유다.
또 소비 부진으로 성장잠재력이 하락해 있는 상황에서 부양 효과가 얼마나 있을지도 의문이다. 추경 편성으로 급한 불을 끄려는 것은 지난해와 닮은꼴이다.
지난해 6월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이 확산됐을 때도 정부는 추경을 편성했다. 예상보다 깊은 경기 둔화 우려에도 “추경은 없다”던 입장을 싹 바꾼 것이다. 추경 편성에 앞서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하한 것도 작년과 올해가 똑같다.
그 때나 지금이나 정부는 국가재정법 89조에 명시된 추경 편성 요건인 ‘경기 침체·대량 실업 우려’를 근거로 들고 있다. 메르스와 마찬가지로 구조조정과 브렉시트도 예산을 더 편성할 명분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대다수 경제 전문가들도 여기에 동의한다. 특히 브렉시트는 그야말로 세계 경제가 ‘가보지 않은 길’이다. 우리나라에 미치는 영향은 예상보다 심각할 수 있다.
관심은 추경안을 어떻게 짜느냐에 모아진다. 지난해의 경우 정부는 메르스와 관련이 없는 가뭄·장마 대응, 지역경제 활성화, 심지어 세월호 선체인양비 지원까지 추경안에 끼워넣었다. 그래서 ‘떡 본 김에 제사를 지낸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세 번째이자 제20대 국회의 첫 추경은 이전과는 분명히 달라야 한다. 구조조정과 브렉시트가 추경의 근거라면, 이에 따른 영향을 면밀히 파악해 꼭 필요한 용도에 맞춰 추경을 편성하는 게 바람직하다. 국회도 이 같은 원칙에 입각해 정부의 추경 안을 들여다봐야 한다.
우리 경제는 이미 저성장 시대에 진입했다. 잠재성장률은 겨우 2%대를 유지하고 있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이 남의 일이 아님을 직감하게 된다. 초고령화 사회가 멀지 않았고, 생산가능인구는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추경이 '경기회복의 마중물' 기능을 제대로 하기 힘든 국면이 됐다.
다시 말해 스테로이드 주사 몇 방 맞아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A씨가 말한 '염증치료'는 구조개혁과 이를 통한 경쟁력 확보다. 염증치료에도 타이밍이 있다. 타이밍을 놓치면 이번에 편성하는 추경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내년에 다시 추경을 편성해야 할지도 모른다.
김의석 기자 eskim@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