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년 기자로 최근 '한국형 양적완화' 논란을 바라보는 시선은 갈대처럼 흔들린다. 아무리 선거철에 나온 이야기라도 여당 선대위원장에게 나온 발언인 만큼 쉽게 간과할 수는 없어서다. 유일호 경제부총리도 강봉균 선대위장의 '사견'으로 선을 긋긴 했지만, 최근 경기상황을 감안하면 그저 선거철 마케팅으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물론 한국은행의 산업은행 채권 인수와 시중은행 보유 주택담보대출증권 인수 방안은 현행법에서 불가하다는 지적이다. 한국은행법 68조 공개시장조작 규정을 보면, 한국은행이 인수할 수 있는 증권은 국채와 원리금 상환을 정부가 보증한 유가증권으로 한정하고 있다. 주택담보대출 증권 등을 한국은행이 직접 매입하려면 한국은행법을 바꾸든지 국회 동의하에 이를 정부보증채로 바꿔야 한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여당 선대위원장 말의 파급력은 시장에서 먼저 나타났다. 강봉균 선대위장의 발언 당일인 지난달 29일 서울채권시장에서 국고채 금리는 대부분 하락세(채권값 상승세)를 보이며 3년물은 전일보다 3.0bp 하락한 1.449%, 10년물은 3.6bp 하락한 1.798%에 장을 마쳤다. 30일에도 국고채 3년물 금리가 전일보다 0.1bp 오른 것을 제외하면 일제히 금리가 하락했다. 이날(30일) 코스피 지수는 2000선을 회복하기도 했다.
시장을 움직인 건 다른 이유일 수도 있다. 전날(28일) 한국은행에서 다음달 20일 임기가 끝나는 4명의 후임 금융통화위원회 위원들을 발표했는데 시장에서는 이른바 '비둘기파(물가보다 성장 중시)' 분석이 높았다. 7명 중 당연직인 한은 총재와 부총재를 제외하고 각 기관에서 추천된 5명의 금통위원 중 4명의 성향을 이렇게 해석한 것이다. 앞으로 기준금리 인하를 비롯해 한국은행의 완화적인 통화정책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진 것으로 풀이되는 대목이다.
한국은행은 제도적으로 독립성이 보장돼 있다. 한국은행법 3조에는 한국은행의 통화신용정책은 중립적, 자율적으로 집행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만큼 정부의 입김에 상관없이 정책을 수행할 수 있도록 법규 도입부에 자주성을 강조한 것이다. '한국형 양적완화' 얘기가 불거진 다음날(30일) 취임 2주년 기념 출입기자단 오찬 간담회에서 이주열닫기

얼마 전 인기리에 종영된 과거의 장기미제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현재의 간절한 외침을 다룬 드라마가 떠오른다. 지직거리는 무전기에 실린 흐릿한 '시그널'에 귀기울여 사건을 해결해가는 주인공들 모습에 사람들은 마음을 뺏겼다. 선거철에 나오는 발언에 구체적으로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있느냐는 의견들도 있다. 어쩌면 선거가 끝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질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선거가 끝나고 나서라도 변하지 않는 게 있다. 한국은행이 법에 규정된 독립성을 바탕으로 시장과 제대로 소통하고, 그것이 시장에서 명확한 '시그널'로 읽혀 불필요한 오해나 혼란이 일어나지 않길 바라본다.
정선은 기자 bravebambi@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