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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하다는 오해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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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5-07-06 00:42

한국금융투자자보호재단 손정국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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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하다는 오해
금융소비자가 합리적인 판단을 스스로 할 수 있다는 건 큰 오해

자기책임이라는 미명하에 금융소비자들은 일방적 희생 강요돼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3년 후인 2018년부터 트랜스지방의 사용을 전면 금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식물성기름은 상온에서 액체 상태라서 보관이 불편한데 수소를 첨가하면 상온에서 고체 상태를 유지하게 될 뿐 아니라 보존기간도 길어지고 맛도 좋아진답니다.

이처럼 식물성기름에 수소를 첨가한 것이 마가린이나 쇼트닝의 원료로 이용되는 트랜스지방인데, 독일의 과학자 빌헬름 노르만(Wilhelm Normann)이 1903년에 특허를 받았습니다.

미국의 프록터 앤 갬블(P&G)사가 특허를 사들여서 2년 후인 1911년에 트랜스 지방을 원료로 하는 “크리스코”(Crisco)라는 쇼트닝 제품을 출시했는데, 크리스코를 이용해서 만들 수 있는 615가지 요리법을 수록한 책까지 무료로 배포해서 큰 인기를 모았답니다. 2차 세계대전 발발로 천연지방을 구하기 어렵게 되자 트랜스지방이 더욱 더 인기를 얻었고, 1970년대에 동물성지방의 위험성이 부각되었을 때에도 상대적으로 트랜스지방은 안전하다는 논문이 잇달아 나오면서 더 넓게, 더 많이 사용되었답니다.

사용된 지 무려 80년이 훨씬 지난 1990년대에 가서야 트랜스지방의 위험성이 밝혀지기 시작했습니다. 2000년대 들어서 미국에서 트랜스지방의 사용을 규제하는 조치들이 등장하면서 과거에 비해서 사용이 많이 줄기는 했다지만 2018년부터 전면 금지된다니 무려 100년 이상 사용되는 것이지요. FDA는 트랜스지방 사용 금지로 식품업계가 앞으로 20년 간 감당해야 할 비용을 7조원으로 추산했지만 가공식품업체들의 고민은 훨씬 심각합니다. 트랜스지방은 식물성기름을 이용하기에 동물성기름에 비해 원가도 저렴하지만 무엇보다 감칠맛이 있는데 다른 대체재를 사용하면 그 맛을 내기가 어려워 결국 매출감소로 이어지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랍니다.

반면에 소비자들이 그간 트랜스지방 때문에 입은 피해는 얼마나 될까요? FDA는 트랜스지방의 전면 금지로 향후 20년 동안 의료비 절감 등으로 얻는 효과를 145조원으로 추산했습니다. FDA의 추산금액을 기준으로 역산해 보면 소비자들이 입은 피해는 천문학적인 숫자가 될 수도 있겠지요.

피해가 이렇게 심각한 이유는 트랜스지방이 너무도 바람직하고 이상적인 제품으로 여겨졌기 때문일 겁니다. 동물성지방에 비해서 원가는 저렴한데 상대적으로 더 안전하고 게다가 트랜스지방으로 만든 쇼트닝은 “하늘이 내린 맛”으로 불릴 만큼 맛도 좋았다니까요. 가히 “완전히 새롭고 더 좋은 지방“으로 불리기에 미흡함이 없었습니다. 서브프라임 금융위기의 주범인 ”증권화“가 꼭 이랬습니다. 주택담보대출(mortgage)을 모아서 여러 종류의 유가증권을 발행했습니다. 원리는 매우 단순하고 흠잡을 곳이 없었습니다. 많은 모기지를 담보로 유가증권을 발행하면 모기지 중 일부에서 상환불능이 발생해도 그 유가증권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모기지 일부가 상환불능이 될 때 그 손실을 첫 번째로 부담하는 유가증권부터 가장 마지막에 부담하는 유가증권까지 여러 종류의 유가증권을 발행하면 상환불능의 손실을 첫 번째로 부담하는 유가증권을 제외한 나머지들은 위험은 거의 없으면서 수익은 높은 유가증권이 된다는 것입니다. 논리에 혹한 신용평가회사들이 무더기로 최고 등급을 부여하면서 이런 유가증권이 폭발적으로 늘어났습니다. 마케팅에서 신용등급이 가지는 마력을 잘 알고 있는 금융회사들은 신용평가회사들에게 수수료를 후하게 지불하기도 했지요. 그 최종 종착점은 우리가 아는 대로입니다. 위험을 줄일 수 있다는 생각은 착각이었습니다.

미국 연방준비위원회(FED) 전 이사였고, 부시 행정부에서 국가경제위원회의 고위 관료였던 린지(Lawrence Lindsey)의 말처럼, 증권화로 위험을 분산시켰다는 오해였습니다. 개인은 위험을 분산할 수 있겠지만 전체 시스템 위험은 줄일 수 없다는 점을 혼동했던 것입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우려됩니다. 우리는 금융소비자가 완전히 합리적이라고 전제합니다. 금융소비자들이 합리적이어서 불량 금융회사들을 스스로 외면하기에 금융당국의 역할은 직접 개입보다는 시장질서 유지이고, 금융당국의 직접 개입이 최소화되기에 금융회사들은 다양한 금융상품을 출시해서 금융소비자들의 수요를 충족시킵니다.

결국 금융시장은 가장 적은 비용으로, 가장 효율적으로 운영됩니다. 명료하고 흠이 없는 논리입니다. 기본 전제인 금융소비자들의 합리성이 맞는다면 말이지요. 문제는 기본 전제가 흔들린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합리성이 제한적이라 주장하는 행태경제학이 점점 더 지지층을 넓히고 있습니다. 서브프라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각국이나 여러 국제기구들이 정책 결정 및 집행에서 행태경제학을 반영하거나, 금융소비자의 절대적 합리성이 의심스럽다는 입장을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으며, 2013년에는 행태경제학자가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합리적이라는 막연한 추정을 근거로 “자기책임”이라는 미명 하에 일방적 희생을 강요당했던 금융소비자들의 억울함을 더 이상은 도외시할 수 없게 될 수도 있습니다. 금융소비자들의 부당한 피해를 없애고 금융소비자보호 관련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 이 문제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지금 당장 필요합니다.

트랜스지방의 퇴출은 한 노교수의 평생에 걸친 노력의 결과입니다. 일리노이대 쿠머로우(Fred Kummerow) 교수가 트랜스지방의 위험을 확인한 것은 1957년입니다. 동맥경화로 사망한 환자들의 혈관에서 공통적으로 트랜스지방을 발견한 것입니다. 쿠머로우 교수는 트랜스지방의 문제점을 논문으로 발표했지만 당시는 트랜스지방의 인기가 하늘을 찌를 때였기에 주목을 받지 못했답니다.

그 논문이 제대로 평가 받은 것은 30년이 훨씬 지나 트랜스지방의 위험성이 드러나기 시작하던 1990년대입니다. 2009년에 쿠머로우 교수는 트랜스지방의 완전 퇴출을 FDA에 청원했으나 FDA가 반응을 보이지 않자 2013년 여름에 미국 보건부와 FDA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소송이 제기되고 3개월 후인 2013년 11월에 FDA는 트랜스지방을 안전식품에서 잠정 제외한다고 결정하였습니다. 50년의 노력이 마침내 결실을 맺기 시작한 것이지요. FDA의 잠정 결정 이후 「뉴욕타임스」가 쿠머로우 교수 특집을 실었는데, “트랜스지방에 대한 평생의 싸움”이란 제목 뿐 아니라 쿠머로우 교수의 이름을 제대로 발음할 수 있도록 “Koo-mer-ow”라고 표기하는 등 기사 여기저기에서 공익을 위해 평생을 헌신한 노교수에 대한 존경심을 엿볼 수 있습니다.

트랜스지방을 안전식품에서 제외하는 최종 결정은 그로부터 또 다시 약 2년이 더 필요했습니다. 6월 16일자 「워싱턴포스트」의 특집기사에서 쿠머로우 교수는 “과학이 승리했다”고 소감을 밝혔지만 그보다는 “헌신과 집념의 승리”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금융투자자 보호를 주 업무로 하는 비영리 재단법인인 저희 재단은 공익에 평생을 바친 쿠머로우 교수의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았으며, 저희 재단의 역할과 사명에 대해서 새로운 각오와 확고한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관리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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