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히 건강상태가 좋지 못한 유병자들의 경우 평균이하의 기대수명을 가지고 있어 연금수령액을 상향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에 따라 ‘건강상태 연계 연금(표준하체연금)’을 개발한다는 목표를 밝힌바 있다. 그러나 당국의 의지와 달리 개발을 위한 기초통계 부족으로 상품출시를 위한 사전준비 작업이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은데다 보험사들의 개발의지도 낮아 사실상 출시가 어렵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 ‘표준하체연금’ 개발…몇년 째 거론만
표준하체연금은 건강한 사람이 아닌 비건강체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기존에 연금가입 유인이 낮았던 유병자와 고령자들의 개인연금 가입을 독려해 연금재원을 확보토록 하고, 노후의료비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고령화의 대안으로 오래전부터 도입 논의가 이루어져왔다.
그러나 최근 당뇨, 고혈압 등 유병자를 대상으로한 보험상품 출시가 활발함에도 불구하고 연금상품이라는 점에서 장수리스크에 대한 부담이 큰데다 관련 통계 부족으로 도입이 쉽지 않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현재 유병자나 고령자를 대상으로 한 상품들이 많이 개발된 상태지만 대부분 보장성보험으로 연금의 형태가 아니다”라며, “고령화의 속도가 매우 빠른 우리나라에서 사실상 장수리스크가 어떻게 돌아올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하는 상황인데다, 해외의 정착사례를 참조한다고 해도 나라별로 질병유형과 생존율도 다르고 건강한 사람과의 생존위험률 차이에 대한 정확한 통계자료가 전무한 상태라 사실상 개발이 어렵다”고 말했다.
◇ 당국, 보험업계와 엇박자
그러나 당국은 실상 이르면 올해 안에 고혈압과 당뇨 등에 대한 표준하체연금 개발을 목표로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위 박주영 연금팀장은 “표준하체와 관련한 보험 중에는 장애인연금이 먼저 출시됐으며, 건강상태에 연계한 연금상품 개발도 현재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당초 출시 목표가 있었으나) 고혈압이나 당뇨 등 비교적 가벼운 질병에 관련된 상품이 먼저 나올 가능성이 큰데, 아직까지 통계가 없어서 올해 안 출시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며, “구체적인 시기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현재 보험개발원에서 통계작업 중에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정작 보험업계는 추진상황에 대해 들은바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보험개발원 생명보험상품팀 관계자는 “장애인연금 등 관련회의가 있었던 것은 맞지만 건강연계 연금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나 통계집적 의뢰는 없었다”며, “개발원 내에서 자체적인 장기플랜으로 올 하반기 표준하체연금 도입과 관련해 통계집적을 위한 기반 구축작업이 예정되어 있지만 당국과 이야기가 돼서 실제 통계작업을 진행 중인 사항은 없다”고 말했다.
이어 “당국을 서포트하는 입장에서 통계집적을 의뢰할 경우 시행하겠지만 사실상 암과 관련한 표준하체연금 상품이 개발되기 위해서는 보험사들이 가진 암보험 통계와 암센터, 병원, 해외자료 등에 대한 리뷰를 통해 현실적으로 개발이 가능한지 여부를 판단해야 하며, 가능하다고 할 경우에도 통계를 중심으로 요율산출 전문가와 요율을 산출한 후 해외 요율과 적정성 검증을 선행한 후에야 상품개발 이야기가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사실상 뚝딱 만들어 낼 수 있는 상품이 아니라는 것이다.
◇ 장기플랜, 느린걸음으로 준비해야
더욱이 국내에 상품개발이 가능할 정도의 통계가 존재하는지 여부에 대한 논란도 적지 않다. 업계 한 상품개발팀 관계자는 “암보험조차도 5년내 생존율 통계밖에 없는데 그것마저 치료여부나 이후 기대여명을 알 수 없다”며, “질병별 기대여명에 대한 통계축적이 쉽지 않고 같은 질병이라도 개인별 건강상태가 다르고 연금이라는 점에서 위험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개발원에서 요율을 산출한다고 해도 통계가 부족한 상황에서 요율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검증되지 않은 리스크에 총대를 멜 회사는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다른 업계 관계자는 “당국이 당뇨, 고혈압 등 위험도가 낮은 질병을 시작으로 단계적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이지만 연금액 차이가 클 경우 표준체가 비표준체로의 역선택 위험이 큰데다, 향후 신약개발이나 의료기술 발달로 인해 수명이 길어질 가능성이 있어 접근이 쉽지 않다”며, “당국이 방향추를 잡고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개발이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겠지만 10~20년 후에 돌아올 리스크를 짐작하지 못하는 것은 확실한데다 재보험사들 역시 국내 장수리스크가 크다고 보고 있어 그나마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재보험 역시 어려울 것으로 짐작된다”고 말했다.
업계 전문가는 “고위험소비자에게 생존급부를 제공하는 특화상품의 개발은 업계의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수 있지만, 보험상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통계를 기반으로 해야 하기 때문에 보다 장기적인 시각에서 봐야하며 보험사들 역시 길어지는 수명과 노후문제 등을 대비해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미리내 기자 pannil@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