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국토교통부가 계류 중이던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 개정안’의 수정안을 마련해 국회에 제출하면서 표준 정비수가 마련이 올해 안에 시행될 것으로 기대됐다. 그러나 국회상정 과정에서 합의를 이뤄내지 못해 법안이 2년 넘게 계류 중인데다, 업계 간 이견이 또다시 벌어지면서 ‘자동차보험정비협의회’ 자체도 파행상태에 놓였기 때문.
◇ 보험-정비업계 이견차 여전, ‘자배법’ 개정안 도돌이표
11일 업계에 따르면 국토부는 지난해 말 정비수가 공표제 폐지와 자동차보험정비협의회를 통해 합리적인 정비수가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내용의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 개정안’의 수정내용을 국회에 제출했다. 수정안은 공표제 폐지, 협의회 법제화 이외에도 협의체의 공공성 확보를 위해 국토부 인사를 협의회 위원장으로 임명하고, 협의안 미이행시 과태료를 부가하는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국토부는 자배법이 통과되면 협의회가 법제화되면서 효율적 의견조율이 가능해져 올해 안에 표준 정비수가 마련이 가시적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국회에서 수정안이 ‘공표제 폐지와 시장자율합의를 통한 가이드라인 구성’이라는 본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해 또다시 통과가 좌절됐다. 이에 법적 구속력이 없는 협의회 자체도 유명무실화 된 것.
국토부 관계자는 “지난해 정비업체, 보험업계와 협의결과를 수렴해 수정안을 만들어 제출하면서 법안 통과를 긍정적으로 기대했지만 통과되지 못했다”며, “이후 재수정을 거쳤지만 이 과정에서 정비업계가 다시 반발하면서 법안이 여전히 계류상태에 놓였다”고 말했다. 이어 “협의회 자체가 법적 구속력이 없다보니 이후 논의의 장이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자동차 정비수가는 본래 국토부에서 발표해 왔으나 낮은 정비수가 및 담합 등으로 정비업체와 손보사들의 마찰이 끊이지 않았다. 더욱이 법적 구속력이 없음에도 공표제 안에서 가격이 결정되다 보니 정부가 가격을 경정하는 것처럼 인식돼 공정거래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에서 이를 폐지하라는 정부합동 결정이 난 것. 이에 국토부는 공표제를 폐지하고 대신 업계 간 협의를 통해 정비수가를 마련하도록 정비업체와 손보업계, 시민단체 등 공익대표를 포함한 자동차보험정비협의회를 지난 2011년 말 발족했다. 국토부는 협의를 통해 2012년 말 자배법 개정안을 처음 국회에 상정했으나 양측 이해가 상충하면서 2년이 넘는 시간동안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 정비수가 공백기…갈등은 심화
각 보험사는 정비공장과 개별적으로 정비계약을 체결하는데, 정비요금을 결정하는 공임(시간당 정비가격)과 표준작업시간(부품 교환, 정비 등에 걸리는 시간)을 그동안 국토부에서 발표하는 것에 의존해 왔다. 그러나 국토부에서 발표하는 내용 역시 실제 현장과 맞지 않고 후행한다는 문제가 제기되면서 양 측의 갈등이 심화돼 온 것. 문제는 정부가 2012년 공표제를 폐지하고 양 업계가 협의해 연구용역을 통해 정비수가를 마련키로 했는데, 추진되지 못하고 법안 역시 계류중에 있어 수가가 공백기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손보업계는 국토부가 공표한 2010년 정비수가에 물가인상분 등을 감안해 매년 새로운 정비수가를 적용하고 있지만 정비업계는 현장과 맞지 않고, 낮게 책정됐다는 입장이 지배적이다. 더욱이 보험개발원에서 AOS라는 프로그램을 마련해 국토부가 공표한 표준작업시간을 탑재하고 이후 출시된 차량에 대해서는 국토부 공표 산출기법을 적용해 실측한 참고작업시간을 탑재해 운영하고 있는데, 이 역시 정비업계는 신뢰할 수 없다는 입장이어서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손보협회 관계자는 “국토부에서 공표제를 시행할 당시 연구용역을 준 곳이 개발원이고, 개발원에서 동일한 기준을 적용해 실측한 값을 적용하고 있어 대부분의 손보사들이 AOS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있지만 정비업계에서 이를 받아들이지 못해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며, “결국 서로 공감할 수 있는 연구용역 발주가 시급하며 이를 위해 양 측의 중재 요구를 국토부에 꾸준히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 ‘논의 장’ 마련 시급
일각에서는 정비업계가 지역별로 색이 다른데다, 정비연합회의 대표성이 떨어져 정비업계 내에서 조차 의견조율이 쉽지 않아 업계간 합의가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정비업계 역시 자배법 개정과 협의회 운영을 통한 표준작업시간 결정 등이 시급히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촉구하고 있다. 문제는 갈등의 골이 깊은데다 오래돼 목적지까지 가는데 의견 조율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양 업계가 모두 협의체를 마련하는 것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지만 정비업체는 사실상 중소 자영업자가 대부분이다 보니 보험사라는 대기업에 맞서 최소한의 보호장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라며, “때문에 보험사가 가이드라인을 벗어난 정비수가를 주지 않도록 구속력 있는 제지장치 마련과 협의체의 공익성 담보를 위한 협의회의 국토부 참여를 요구하고 있는데, 국회에서 이를 시장원리에 어긋난다고 판단하고 있어 다시금 협의가 필요한 상태로 양 업계와 함께 논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미리내 기자 pannil@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