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따라서 한국은행은 소비자물가에만 집착해서는 안되며 “소비자물가지수를 넘어 시야를 넓히고 경제의 단기적 변동뿐 아니라 몇 년 뒤의 상황까지 내다보면서 혹시 있을지 모르는 우리경제의 위험요인들에 대해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수준 높은 요구에 직면했다.
지난 20년 통화정책 역사가 굽이쳐 오는 동안 때로는 적기를 놓치거나 그릇된 처방으로 국민경제의 궁극적 발전에 역행한 대목이 여러 차례 있었다는 주장에 따른 것이다.
◇ “반도체 호황 경기과열-IMF 고금리 제동 못걸어”
이같은 역사 고찰과 새 총재가 이끄는 한은이 감당해야 할 책무 규정은 금융연구원 박종규 선임연구위원이 30일 내놓은 ‘지난 20년간 통화정책 역사가 한국은행에 주는 시사점’에 담겼다. 금융분야 민간 전문연구자 시각으로 1990년대 이후 경제 변동에 조응했던 한은의 공과(功過)를 평가했다는 점에서 한은 사람들은 물론 이견은 있을 수 있지만 앞으로의 과제와 관련한 요청은 금융계의 통상적 시각에서 볼 때도 꼭 수행해야 할 시대적 소명인 것으로 보인다. 박 위원은 긴 과정 중에서도 한국은행에 적어도 세 차례의 정책선택 기회에서 기회를 놓치거나 국민경제 발전의 관점과 어긋났다고 평가했다.
먼저, 1994년과 이듬해까지 이어진 반도체 호황에 따른 경기과열을 방치 말고 과감히 진정시켰어야 했다고 봤다. 1998년초 외환위기 직후 우리 경제 위기 원인과 완전히 동떨어진 초긴축 고금리 처방을 밀어 붙인 IMF(국제통화기금)의 서슬에 대해서도 통화당국 주권 차원에서 콜금리 인하를 적극 요구했어야 하지만 역할을 찾을 수 없었다고 평가했다.
이어 2001년 저금리 정책 이후 2002년부터 금리 정상화에 나서지 않는 바람에 부동산 버블과 가계대출 버블의 팽창을 막지 못했고 가계 저축률도 OECD최저 수준으로 낮아지면서 경제 펀더멘틀이 취약해 지는 사태도 걷잡지 못했다고 봤다.
특히 그는 “20년 전체를 돌이켜보면, 과잉 유동성 또는 과도한 저금리의 부작용은 인플레이션이 아닌 경상수지 적자, 자산버블, 가계대출 버블 등의 형태로 경제를 불안정하게 만들었다”고 살폈다. 이어 “(때문에)통화정책 선택의 고비마다 소비자물가는 상당한 안정세를 보이자 한국은행으로 하여금 금리인상의 명분을 찾아내기 곤란하게 했던”과정이었다고 지적했다.
◇ 물가안정 근본 이유와 목적에 어긋난 적 있다
무엇보다 그는 물가안정에 힘쓰도록 중앙은행에 기본 책무를 맡긴 근본 이유로 돌아가야 한다고 운을 뗐다.“물가안정에 실패해, 고율의 인플레이션을 막지 못하면 국민경제가 건전하고 안정적인 발전을 할 수 없기 때문”이란 점을 상기해야 한다는 입장을 폈다.
특히 인플레이션 말고도 우리 경제를 훼손시킬 악재는 얼마든지 있다는 점을 크게 우려했다. 심지어 그는 “1990년대 중·후반에 걸친 경상수지 적자 확대, 2000년대 초반 이후 최근까지의 부동산 버블 및 가계대출 버블 등은 우리 경제를 커다란 위험에 빠뜨렸거나 빠뜨릴 잠재성이 높은 요인”이라고 지목했다.
따라서 “만약 한국은행이 지향하는 바가 궁극적으로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이라면 물가지수 안정에만 몰두해서는 안된다”고 선을 긋는다. 비록 이주열 차기 총재가 한은의 가장 기본적 역할은 물가안정이라는 소신을 바탕으로 성장과 금융안정을 함께 고려하겠다고 밝혔지만 원론적 답변에 그쳐서는 안된다며 압박하는 성격의 지적으로도 풀이된다.
◇ “물가지수에 속지 말고 제 때 제 역할 기대”
그는 또 “과거 20년을 보면 한은이 중요한 선택을 해야만 했던 시기엔 어김 없이 물가가 매우 안정돼 있었다”고 되돌아 살폈다. 이 차기 총재가 비록 현재 물가수준이 그대로 유지되지 않고 중장기적으로 뛰어 오를 것으로 예견하긴 했지만 충분하지 않다는 판단 탓에 물가수준 안정에 현혹될 가능성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그는 단기적 경기변동만이 아니라 몇 년 뒤 상황까지 내다보는 실력을 갖출 것을 요청했다. 그래야만 우리나라 거시 경제정책 양대 축의 하나인 통화정책 당국자로서 한국은행은 리더십을 발휘, 국민경제를 이끌어 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전문적 역량과 정책 리더십 유감없이 발휘해 우리 경제가 험난한 시기를 넘기고 장기적 펀더멘털이 탄탄해지도록 한국은행이 반석 위에 올려 놓았다는 평가를 받게 되기를 그는 축원했다.
정희윤 기자 simmoo@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