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관치금융 버전은 몇 점 몇?](https://cfn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140319221500130481fnimage_01.jpg&nmt=18)
관치금융 소신이 확고했던 전직장관과 또 다른 전직장관 그리고 전직 금융감독원장과 전직 은행과장이 피고발자 명단에 이름 올랐다. 같은날 금융소비자연맹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금융위원회가 생보협회더러 개인질병정보 집중관리 및 활용을 할 수 있게 해준 조치가 위법, 부당하다며 국민감사를 청구했다.
고객정보가 절취되긴 했지만 유통되지는 않았다고 속단했다가 최근에 와서 사실은 이미 유통됐다는 사실이 드러나 비난의 표적 신세가 된 것이 정부와 감독기구의 처지다. 한동안 금융회사와 그 종사자들이 죽을 죄를 지은 죄인 취급당했던 사회적 분위기가 잦아든 가운데 이쯤되고 보니 금융정책당국의 시련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왜 이렇게 됐을까? 이런 지경에 이르지 않을 수는 없었을까?
곰곰이 복기해 보면 원인은 정부와 감독당국 스스로가 제공한 셈이라고 볼 만 하다. 엄청난 양의 개인정보가 절취 당했다는 충격적인 상황 앞에 정부와 감독당국은 문제의 본질을 직시하려 하지 않았던 탓이 가장 커 보인다. 일시적으로 일손이 필요한 경우 외주형태로 처리하는 게 일상화된 금융 전산영역에서 외부협력업체 직원이 작심하고 정보를 빼돌리려 덤벼 들었던 것이 사건의 요체였다. 주를 주지 않을 수 없다면 근본적으로 이같은 정보절취를 막을 수 없었고 사고는 반복적으로 이어졌던 터였다.
그런데 새해 벽두에 대형사건으로 불거지니까 우왕좌왕 했던 게 금융분야 치세를 관장하는 당국의 행보였던 것이다. 근본적 처방은 하나 없이 금융사 CEO다, 임원이다 불러 모아 놓고 군기(?)를 잡고 카드 재발급 등 민원응대를 철저히 하도록 감독하는데 주력했던 것은 어떻게 평가 받게 될까?
자기는 취임하기도 전에 일어난 사건 때문에 취임한 지 얼마 안된 금융사 대표가 옷을 벗은 반면 그 인사권을 행사했을 뿐 아니라 사건이 일어났을 당시 책임 있는 자리에 있었던 사람은 여전히 고위직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은 훗날 금융사가들로부터 어떻게 기록될까?
최근 정부 전반에 걸쳐 규제완화가 가장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지만 금융산업은 완전히 딴 세상에 있다. 이자 수준을 낱낱이 꺼내 들고 미주알 고주알 결정해 주는 당국, 수수료 수준을 낮추기 위해 꾸준히 구체적인 경영지도에 애썼던 감독기구. 게다가 산업 성숙도와 무관하게 낙하산 인사 비판을 확산시켜 왔던 그간의 행적들을 돌아 보자.
내부에서 굉장히 디테일하게 이뤄져야 할 내용까지 두루뭉수리하며 단순한 잣대에 맞추도록 끌고 온 끝에 오늘날의 금융산업은 어떤 상황, 어떤 수준에 와 있느냐는 물음 앞에 서 보면 된다. 금융계 안에선 이미 “이런 상황에서 국제화는 무슨 국제화냐?”는 자조 가득한 반문이 횡행한다. 내수용 제품은 품질이 더 나쁜데도 값은 비싸게 받으면서 가격경쟁력에 기초한 수출로 사세를 성장시켰던 산업자본을 빗대어 왜 금융계엔 세계무대를 주름 잡는 플레이어가 없느냐는 기막힌 논리비약이 판을 친다.
수수료와 이자수준 국제비교를 한 적도 없이 일일이 국민을 위해 낮추라는 압력의 카르텔이 기세등등하다. 자율적 판단과 책임경영을 해본 적이 별로 없으며 최고경영자 자리에 이어 주요 집행임원까지 낙하산 인사와 함께 우루루 들어왔다가 2~3년 뒤면 또 우루루 떠나고 나면 그 뿐인 상황이 반복되는 상황을 만들어 놓고 금융계엔 왜 이리 인물이 없느냐고 따지는 것도 관행이 됐다.
내부 출신 CEO의 성과가 은행에서도 높게 나올 수 있는 사례를 국민들은 이미 안다. 그런 일은 여전히 제한적이며 아무런 법적권한 없이 청와대 의중이 CEO 인선에 절대적인 민간금융그룹 이야기도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두 그룹을 비교해 본 적이 있는가 당국 관계자들은. 하기는 그 당국의 의사결정라인은 낙하산 인사 임기보다 더 짧기 일쑤다. 인걸은 간데 없어도 전임자가 하던 방식이 반복되는 상황이라고 할까.
그래서 대한민국 금융산업 경쟁력이 어떠한들 진정한 대안이 나올 리가 없다. 다음 대통령선거가 어떻게 가름 나든 그 때 또 다른 낙하산 인사가 여러 집행임원들을 데리고 나타나 지난 CEO의 흔적은 하루 아침에 지우고 이런 저런 실험을 할 게 뻔하다면 지금 집행임원 자리를 넘볼 위치에 있는 금융회사 웃 ‘형님’들이 무슨 선택을 할까.
아무리 말이 안되는 관치가 횡행해도, 아무리 비전문적 인사가 무리한 의사결정을 해도 그냥 조용히 받아들이며 수용하면서 신임을 얻어 자신도 한 자리 차지하려는 사람만 두각을 나타내는 게 당연해 보이지 않은가. 그런 게 우화가 아니라 현실로 굳어지고 있다는 개탄의 소리를 대통령에게 전해 줄 사람 어디 없을까. 모든 규제를 뛰어넘는 대한민국 관치금융 버전은 그래서 몇 점 몇인지 가늠하는 일은 일개 기자에겐 벅찬 노릇이다.
정희윤 기자 simmoo@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