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창 일을 배우던 시절부터 구비마다 그렇게 꿈꾸던 정통 은행원은 최고 높은 은행장에 올라 솔선해서 현장주의 열정을 살려 하나씩 열매를 남겼다.
“나무는 꽃을 버려야 열매를 맺고 강물은 강을 떠나야 바다에 이른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고 낡은 관행과 폐습은 끊임없이 고쳐나가 달라”는 간곡한 청은 임원시절부터 틈만 나면 직원들의 눈길을 붙잡고 전해 주던 푸근한 온기였던 터. 고 강권석 행장 재임 시절 마련해 둔 산수유나무와 감나무를 떠올리며 “찬바람이 부는 이른 봄 산수유가 노랗게 피어날 때도, 낙엽 지는 늦가을에 빨갛게 익어가는 감나무를 볼 때도 기업은행과 임직원들을 생각하겠”노라며 그는 아련한 이임의 길을 나섰다.
“새로 임명된 권선주 신임은행장을 중심으로 ‘위기에 더 강하고 어려울 때 서로 도우며 목표 앞에 하나되는’ IBK 특유의 DNA로 1만 3천여 임직원이 똘똘 뭉쳐 반드시 우리 IBK를 ‘위대한 은행’으로 만들어”줄 것이라는 믿음이 굳건했기에 외롭거나 아쉽지 않다고 했다. 그 사이 한 때 권 신임 행장 선임에 반대했던 노조와는 흉금 없이 터놓는 소통으로 신뢰를 첩첩이 쌓아 올리던 풍속 그대로 오해의 응어리를 상생경영 통 큰 단결의 다짐으로 돌려 놓았다.
◇100만 순증, 1조원 아니면 1000억 달러 돌파를 평시체제로
1980년 7월 15일 신입행원으로 발을 디뎠던 은행원 생활 33년 5개월 가운데 마지막 3년 동안이 행운이었다는 고백. 그 행운은 훌륭한 선배, 뛰어난 후배들과 동고동락하면서 배우고 익히며 꿈꿔 왔던 모든 것을 현실로 불러 세우는데 전심갈력 다할 수 있었던 행운이라고 한다. 조 전 행장의 시계가 그가 태어난 뒤 가장 길었을 하루를 달리고 있던 이임식 하루 전 26일 기업은행은 올해 영엽실적에서 다섯 바퀴 신기원을 썼다고 알렸다.
12월 중 기업고객 수 100만 곳 돌파를 비롯해 스마트 원뱅킹 고객 100만 명 돌파, 개인고객 수 100만 명 순증 등 100만 트리플 크라운 달성이 전부가 아니었다. 가계대출 순증 1조원에 외국환 실적 1000억 달러 돌파 등 조 단위 새 기록이 쌍봉을 이뤘다.
조 전 행장은 숫자 단위를 한 차원 끌어올렸다고 자랑스러워 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기은 사람들을 특별히 치켜 세웠다. 기은에선 지난 과거의 영업관행이 된 캠페인이나 프로모션 없이 “각 영업점 사정에 맞는 자율적인 전략과 실행으로 모든 임직원이 혼연일체가 되어 일궈낸 성과이기에 더 없이 값지다”고 점수 매겼다.
특별히 분발해 달라는 톱 다운 없이 아래로부터 샘 솟는 열정으로 궤도를 끌어 올렸다는 사실에서 그가 내건 ‘봉산개도 우수가교(逢山開道 遇水架橋)’ 슬로건은 조직 안에서 선순환 하고 있노라 자평할 근거로 삼는 표정이다.
◇한 자릿수 금리, 원샷 인사, 5대양 6대주 네트워크 ‘기백’
송사를 하러 왔던 김기문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장은 9.5% 금리 상한선을 실행하는 파격 행보를 되짚었다. “위기 때면 시중은행들이 중소기업들을 내치곤 했지만 기업은행이 끌어 안았기에 금리가 조금 높아도 기업은행을 거래하는 기업이 적지 않았다”면서 “한자리 수 금리 도입에 힘입어 거래를 더욱 늘리는” 선순환이 가속화했던 원동력이 됐다고 평가했다.
했다 하면 열흘 안팎 은행 업무를 정체로 몰아 넣었던 연쇄 인사 관행 물길을 돌려 2012년 1월 정기인사부터 네 차례에 걸쳐 한꺼번에 이어 가는 괴력을 발휘했던 것이나 정년보장 시간제 채용과 전국 영업 은행으로는 처음으로 고졸 채용 새바람을 본격적으로 일으킨 인재 가치 존중 경영도 큰 족적을 남겼다.
기은인이 다니는 모든 길을 기업행복과 함께 가는 쪽으로 가다듬고 새로 내려는 노력은 5대양 6대주 글로벌 네트워크를 직접 열거나 손잡고 연결시켜 주는 독특한 책략으로 승화시켰다. 홍완엽 노조위원장이 이별의 정을 담았던 말은 “정말 큰 사람”을 떠나 보내야 한다는 아쉬움 반 아픔 반이었다.
하지만 울타리 밖에서 지켜 나선 조 전 행장이나 홍 위원장이나 30일 취임을 앞둔 권선주 행장과 당당하게 새 역사 구현이 시작되기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성탄절 새벽까지 마음을 열고 나눈 신임 행장과 직원들의 대변자의 깊은 이야기가 신뢰에 기반한 생산과 혁신 에너지에 소중한 만큼 조심스럽고 결연한 불씨를 지폈기 때문일 것이다.
▲ 27일 이임식 때 손잡고 있는 조준희 전 행장(오른쪽)과 권선주 신임행장.
정희윤 기자 simmoo@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