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서울 예금보험공사 강당에서 마련됐던 ‘금융회사 정리체계 관련 국제적 논의와 대응’ 정책심포지엄은 한국판 ‘회생 및 정리계획 제도(Recovery and resolution plan, RRP)’ 확립 모색의 새로운 이정표로 삼을 만 했다. 권세훈·정지만(이상 상명대) 교수 공동발표에선 “외부 구제금융 없이 이해관계자들이 일차적으로 흡수하도록 하는 당사자 손실분담(bail-in)방안 마련”을 포함해 국내 금융회사와 관련당국이 사전적으로 회생 및 정리단계 대비에 나섬으로써 금융안정성과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금융연구원 이재연, 예금보험공사 오승곤 두 선임연구위원은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금융회사 지정과 이에 따른 규제강화 노력이 국제적 흐름인 가운데 국내에서 중요은행으로서 지정해 사전적 회생 및 정리방안 수립에 나서야 할 곳으로 자산 200조 이상 은행지주사나 은행을 1차 지목하고 2차로는 100조원 넘는 지주사와 은행을 꼽았다. 200조 넘는 은행지주사는 우리금융과 KB금융을 비롯해 신한지주, 농협금융, 하나금융 등이고 국민, 우리, 신한, 농협 등의 은행이 있다. 100조 넘고 200조원에 못미치는 곳으론 산은금융지주와 하나, 외환, 기업, 산업 등의 은행을 가리켰다.
◇ 중요도 큰 은행들 시스템 회생 역량 충분한가
이들 지주사와 은행들은 해외 영업 비중이 크지 않아 글로벌 차원에서 시스템상 중요한 금융사(G-SIFI)로 지정될 가능성이 적을지언정 국내 경제와 금융시스템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크다는 사실을 환기시키기엔 충분했다.
특히 권·정 두 교수는 “이번 금융위기를 통해 보완된 바젤Ⅲ 자기자본규제 역시 향후 위기 발생 억제나 대처 등에 충분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내 은행들은 후순위채와 신종자본증권을 미리 발행하고 일부 증자에 나서는 등 바젤Ⅲ 규제 강화에 대한 선제적 대응엔 부족함이 없을 것이라는 일반적 평가에 비춰볼 때 이같은 지적은 의미가 커진다. 바젤Ⅲ가 도입되면 일부 조건부자본 등 손실이 생기면 자동으로 흡수하는데 쓰이도록 하는 장치가 포함돼 있긴 하지만 충분하지 못하다는 지적은 꾸준히 제기된 바 있다. 따라서 위기의 강도가 너무 세어서 금융사 스스로 흡수하지 못할 경우 소유권의 전환 또는 회사의 자산과 부채 정리절차를 신속하게 이행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본다면 자본적정성 그 이상의 점검은 필수인 것으로 판단된다.
한국금융신문은 지난 12월 5일자 중요은행들의 충당금적립전이익과 부실채권규모 사이의 배율을 분석하는 작업을 거친 바 있다. 비록 1회성 이익이 포함돼 있긴 하지만 2010년 본원적 이익규모는 부실채권 규모와 엇비슷한 1.007배 안팎으로 드러났다. 반면 올해 3분기 말 부실규모는 3개 분기 누적 이익 규모의 2배 가까운 1.98배인 것으로 파악됐다. 경기하강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부실은 크게 늘어났는데 이익창출력이 약화됐기 때문이다.
◇ 비용절감 중심 구조조정에 전략적 승부수 필요
이런 사정을 직시하면 새로운 측면의 미래대비책의 실마리를 포착할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요소가 비용절감 노력과 조직 슬림화 유혹이 얼마나 유용한지 파악하는 것이다. 실제 중요은행 지정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8대 은행의 경우 점포 축소나 본점 기획 및 관리 조직의 축소는 이미 진행하고 있으며 추가로 영업본부 축소 등을 통해 고위직급을 줄이는 추세가 확산될 전망이다.
하지만 이같은 노력은 부분적 실효성은 있을지 몰라도 근본적 처방일 수도 없다고 지적하는 금융인들이 적지 않다. 진정 우려스러운 것은 부실규모가 늘어나는 사이 순이익 규모를 적당한 선에서 유지하는 것조차 벅찬 상황이 오면 견디기 어려운 어려움이 올 수 있다는 개연성이다. 점포당 생산성은 변동성이 적었지만 임직원 1인당 수익성 지표는 은행권에 닥친 가장 근보적인 과제가 무엇인지 선명하게 일깨워 준다.
8대은행 임직원 수는 2008년 8만 7834명에서 지난 3분기 말 9만 2102명으로 불어났다. 이 상태에서 3분기까지 누적 충전이익은 급감하니 1인당 충전이익은 한 때 3억 후반대이던 것이 1억 4700만원으로 주저 앉았다. 무작정 줄이고 보자는 원시적 비용절감 대신 전략적 가치를 높이는 비용절감 노력 수행도 중요하지마 결국 활로는 이익창출력 복원에서 찾아야 한다는 진실을 직시해야 할 때라는 지적이 그래서 나온다.
당연히 부실 최소화, 수익기반 확충, 상품과 서비스 차별화 등의 실질적 차별화가 관건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익명을 청한 한 민간 연구기관 전문가는 “자산 규모나 점포 규모 차이에 비해 금융사 고유의 역량 사이에는 격차가 커 보이지 않는다는 평가가 일반적인데 그렇다는 사실은 아직 배타적 경쟁우위를 확보활 여지가 크다는 뜻이라 본다”고 지적했다.
정희윤 기자 simmoo@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