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따져 보니 결국 은행원 업보였네](https://cfn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131216021227128555fnimage_01.jpg&nmt=18)
이름난 금융학자가 최근에 발표한 분석보고서 한 귀퉁이 내용을 요약해 본다면 이쯤 된다. 그러고 보니 1년 반 쯤 전에 박병원 은행연합회장과 인터뷰에 들었던 이야기 한 토막이 떠오른다.‘은행이 이익을 충분히 내면 이익을 내는 만큼 대출을 더욱 적극적으로 해 줄 뿐 아니라 사회 환원할 몫이 더욱 커진다는 사실을 널리 헤아려 줬으면 좋겠는데 그렇지 않아 안타깝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사실 상업은행 탓이 아니었다. 주로 초국적 투자은행들이 레버리지를 지나치게 일으켰다가 일부 약한 고리가 끊어지자 곧바로 추락하면서 빚어진 참극이었다. 원유와 금 등의 실물자산과 부동산에 투자하고 재정이 취약한 나라의 국채 등을 문어발식으로 사들이면서 최첨단 파생상품을 동원해 리스크 분산을 시켰으니 걱정 말라던 맹서들은 허풍에 불과했다.
○…또 한 가지 일화가 생각난다. 국내 한 대형은행 임원은 이렇게 말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가 국내 금융계에 제한적 피해로 끝난 이유는 투자은행 업무를 잘 몰라서 아니면 이론적으론 알아도 다룰 만큼 자본력이 없었기 때문이지 ‘장사’를 잘 해서라 볼 수는 없다”고. 몰라서 못한 곳은 국내 상업은행들이요, 자본력부터 여건이 갖춰지지 않은 곳은 금융투자업계다.
그런데도 국내 금융계는 엉뚱하게 날아 든 불똥에 가슴을 태워야만 했다. 미국 반 월가 시위는 미국계 초국적 투자은행 경영진을 비롯한 업계에 만연했던 성과보상 풍습에 격분한 사회적 징치였다고 볼 수 있는 일이었다. 국내 은행들의 이자마진은 과거 수준과 비교하자면 크게 높아진 수준은 아니었지만 1~2년 사이의 움직임을 놓고 과도한 이자마진이라며 지탄이 이어졌다. 최고 경영자와 평 은행원 연봉 차이가 많아야 20~30배에 불과했지만 고액연봉, 성과급 잔치 비판 대열 형성에 동참하는 상황이 연출됐다.
○…열흘 붉은 꽃이 있을 수 없고 달도 차면 기운다는 천지간의 법칙을 새삼 무섭게 생각하게 되는 어려운 시기가 다가 오고 있는 것 아니냐는 반문을 최근 친분 있는 금융인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저성장-저금리 경제가 처음 겪는 일이어서 그렇지 큰 탈이 나지 않도록 잘 방비하면 못 넘을 너비이거나 못 견딜 수심이라 할 정도는 아니지 않겠느냐’고 응수했지만 그의 표정은 오히려 더욱 딱딱해졌다. 당국의 규제가 갈수록 강화되고 대내외 경제 불확실성이야 충분히 예견됐던 것이고 어느 정도 예측도 가능한 영역이니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곤혹스러워할 정도의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대신에 그는 여신건전성은 나빠진 상태에서 수익성이 좋아질 요인보다 악화시킬 요인이 더 강맹해지고 있다는 점에서 걱정을 안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소한의 바램은 외환위기 때와 똑같은 방식의 난도질이 재추진되는 일이나 없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다. 나쁜 것을 최소화하고 긍정적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어떤 진지한 고민도 없이 가장 멀쩡한 상태의 은행 수준에 직원과 점포 숫자를 맞추는 게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인 양 몰아붙였다고 묘사한다면 너무 지나친 것일까?
당시 직원들이 은행 경영정상화를 위해 퇴직금 중간정산까지 받아 가며 주식을 사들였던 노력은 결과적으로 헛수고였다. 일부 제조업 기반 대기업집단의 무분별한 사업확장과 과잉중복투자 비판만 있었지 어떤 방식으로 재건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한 검토나 연구는 배제된 채 위기 탈출을 위해서라면 어떤 고통이라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광풍노도의 시기 아니었던가.
○…순이익을 많이 내면 ‘예금 받아 대출하는 땅짚고 헤엄치는 영업으로 너무 많은 이익을 거둬서 연봉잔치 벌인다’는 공세에 둘러싸였다. 이제는 수익성이 나빠진데다 한계에 몰린 기업과 개인들의 부실 때문에 건전성마저 나빠지면 당연히 경영지표들이 우수수 떨어질 텐데 여전히 고액 연봉을 누린다는 비판이 고개를 들 것이다. 은행숫자가 너무 많다는 주장이 별 의심 없이 신봉받기도 한다.
은행 숫자 줄이고 은행원도 줄이고 연봉도 깎아서 새롭게 다가온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는 논리가 지배하는 날이 올 수 있다. 그러고 남을 것이다. 다수 대중들, 평범한 소비자들은 판단에 도움될 만한 정보나 가치 척도를 제공받지 못한 채 눈 앞의 속 시원함만 보장된다면 당장은 박수를 치며 환영할 것이다.
고도성장을 거듭하던 시절 쌓았던 업보를 제대로 턴 적도 없고 낙하산 인사가 반복해서 CEO가 와서 연속해서 실패와 부실만 양산했어도 진정한 반성이 이뤄진 적이 없었으며 소비자 대중과 같은 호흡 같은 눈높이로 상품을 만들어 팔고 서비스하려는 노력은 별로 기울인 적이 없는데 무슨 수로? 아직도 고객만족(CS)은 은행원이 베풀어야 하는 것으로 이해하거나 민원을 줄이는데 급급한 풍속이 지배하는 세태이고 근본적 성찰로 금융업 재건을 모색하지 않는데 감독당국 규제 걱정, 소비자평판 걱정, 당장 눈앞의 실적 목표 걱정에 신입행원부터 임원까지 목을 메는데 본질적으로 나아질 것은 얼마나 될까.
정희윤 기자 simmoo@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