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블랙컨슈머’ 보험업계만 벌벌?
지난 29일 한국금융연구원이 주최한 ‘금융소비자보호 강화 추진과제’ 공개토론회 자리에서 토론자로 참여한 교보생명 서희우 상무는 “금융상품에 따라 가입목적이나 소비자 성향에 차이가 있는데, 소비자이기 때문에 무조건 보호를 받아야하는 대상으로 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소비자보호를 너무 강조하다 보니 소비자들의 기대치가 높아져 이에 미치지 못하면 민원으로 연결 되는 등 오히려 문제점이 발생한다”고 지적하며 블랙컨슈머(Black consumer) 문제를 언급했다.
그는 이어 “(이러한 맥락에서) 민원감축이 소비자신뢰 제고에도 직접적인 영향이 있을 거라 판단되지 않는다”라며, “보험업권과 보험고객의 특수성을 감안해 금융업권별로 차별화된 전략을 수립해 달라”며, 최근 금감원의 보험민원 50% 감축에 대해서도 재고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블랙컨슈머란 악성 민원을 상습적으로 제기하는 소비자를 지칭하는 것으로 금융당국에서도 문제점에 대해서 인식하고는 있지만, 기업보다는 소비자의 관점에서 먼저 소비자보호를 들여다봐야 한다는 입장이어서 블랙컨슈머에 대한 시각차이가 뚜렷했다.
금융위원회 윤영은 금융소비자과장은 “블랙컨슈머가 소비자보호의 걸림돌인 것은 확실하나 금융회사 입장에서의 소비자보호로, 금융사의 내부적 통제를 우선하고 이것이 정착된 단계 이후에 다시 논의되어야 할 부분”이라고 선을 그었다.
또한 “업권별로 차별화된 전략 수립에 대한 부분은 금융소비자보호법 등이 전 업권에 걸친 기능별 규제이기 때문에 이를 미니멈적인 역할로 보고, 세부적인 규제체계나 차등화는 자율규제기구나 협회 등을 통해 내부적으로 진행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주제 발표를 맡은 한국금융연구원 노형식 연구위원은 “블랙컨슈머에 대해서는 제도적으로 불법행위로 엄단하되, 소비자들도 블랙컨슈머가 사라지지 않는 한 자신들에게 이득이 될 것이 없다는 인식이 정립되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악의적 민원인인지, 선량한 소비자인지 블랙컨슈머를 구분하는 문제가 여전히 있지만, 금융회사의 질적 경쟁을 금융소비자들이 유발시키기 때문에 소비자의 권리의식이 높아진 부분을 문제로 보는 것은 재고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 “못 받으면 바보” 소비자인식 문제 커
이날 토론주제가 ‘금융소비자보호 모범규준과 금융상담서비스’에 한정됐다는 점을 차치하고서도 블랙컨슈머에 대해 언급한 곳은 보험업계 밖에 없었다. 이처럼 보험업계가 ‘블랙컨슈머’ 문제에 유독 민감한 것은 보험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 때문이다. 보험은 상품의 특성상 장기계약이 많고, 보험사고가 발생하기 이전에는 보험금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소위 ‘본전’ 생각에 보험금을 받지 못하면 손해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또한 교통사고 후 장기입원 등을 통한 병원비 허위·과다 청구 등을 보험범죄가 아닌 당연한 것으로 인식하는 등 소비자들의 도덕적 해이가 심각한 수준이다.
최근에는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생계형 보험범죄가 늘어나 보험업계가 진통을 겪고 있는 상황. 이러한 가운데 법적이나 제도적 뒷받침 없이 무조건 민원을 줄이라는 당국의 입장을 보험업계는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것이다. 실제 보험업계는 민원감축이 오히려 ‘블랙컨슈머’들의 먹이감이 될 것으로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블랙컨슈머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금감원 소비자보호처 한 관계자는 “블랙컨슈머는 당국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보고 있는 부분이고, 실제 블랙컨슈머들로 인한 피해도 많은 것으로 안다”며, “그러나 블랙컨슈머를 정확히 정의내리기 힘들기 때문에 업계와 함께 고민해야 할 부분으로 당장 처리하기는 쉽지않은 문제”라고 말했다.
◇ 소비자보호 모범규준 개편
현재 금융당국의 소비자보호 초점은 ‘내부통제 강화’를 통한 소비자 피해 사전예방에 맞춰져 있다. 현행 소비자보호 모범규준이 민원, 분쟁처리 등 사후관리에 치중되어 있다는 지적이 지속됐기 때문. 이에 따라 새 모범규준에는 소비자보호를 전담하는 조직을 독립적으로 분리하고 이를 총괄책임하는 CCO(Chief Consumer Officer)를 임원급으로 선임하는 등 독립적인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도록 해야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또한 최고경영자(CEO)의 소비자보호 책임을 더욱 강화해야한다는 방침도 나왔다. 한편, 그동안 소외됐던 취약계층을 위한 금융자문서비스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도 논의됐다.
김미리내 기자 pannil@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