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존물이란 보험에 가입된 물품 가운데 화재, 도난 등 사고로 인해 보험사가 보험금을 지급한 뒤 소유권을 넘겨받은 물품을 말한다. 보험사는 이를 매각해 환입한 금액으로 보험금으로 지급된 손실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잔존물 처리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잔존물처리를 통해 보험금의 손실을 줄일 수 있음에도 대부분의 침수차량이 폐차 처리돼 고철비용 밖에 되지 않기 때문. 보험업계에 따르면 지난 12일 시작된 폭우로, 17일 현재 침수피해가 접수된 차량은 총 2612건에 달하며, 미접수된 건을 포함하면 3000건을 상회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아직까지 피해정도가 다 확인되지 않았으나, 한 대형사에 따르면 피해정도가 확인된 건 중 64% 이상이 전손차량인 것으로 나타났다. 업계 관계자들은 침수피해로 인한 차량은 대부분 전손 처리되는 경우가 많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엔진에 물이 들어가는 경우 고칠 방법이 없고 침수되면서 진흙 등이 들어가 청소비용 등 수리비용이 더 많이 나온다는 것. 그러나 이처럼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아니라도 폐차 처리되는 경우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한 관계자는 “잔존물 처리는 건물 등을 포함한 모든 재물성 보험의 경우 해당하기 때문에 차량뿐 아니라 한 달에 많으면 10만건도 넘는 경우가 있어 일일이 잔존물 처리를 하기에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보험사가 침수차량을 수리해 중고차로 매각한 경우, 중고차 매매상이 침수차량을 무사고 차량으로 속여 파는 일이 잦아짐에 따라 당국에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예 침수차량을 수리하지 말고 폐차 처리하도록 유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문제를 원천적으로 막고자 수리를 통해 사용할 수 있는 부분들까지도 그냥 폐기된다는 것.
또 다른 관계자는 “보험사가 잔존물처리를 제대로 해야 사고로 인해 지출된 보험금 손실을 줄일 수 있는데, 폐차시킬 경우 겨우 고철 값밖에 받지 못한다”며 “침수차량을 폐차 처리하면 무사고차량으로 팔려나가는 일은 없겠지만 잔존물처리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점에서는 보험사 입장에서는 불합리하다”고 말했다.
보험사는 잔존물처리를 통해 손해액을 줄일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할 경우 그만큼의 손해율이 올라가고 이는 다시 고객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현재 대부분의 손보사들은 전손차량의 잔존물처리를 보험사가 처리하지 않고 매각 업체 연결을 통해 고객이 직접 잔존물을 처리하게 하고 있다. 자동차관리법상 중고차량의 매매는 매매업 허가를 받은 중고차 매매업자만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데, 보험사의 전손차량 잔존물처리가 이에 위배될 수 있다는 문제가 계속 지적되면서 국토해양부에서 이를 제지하는 공문을 각 보험사에 전달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보험사는 잔존물처리와 관련된 문제들이나 법률적인 리스크에서도 벗어날 수 있게 됐지만 그에 비례해 ‘피할 수 있는’ 손실부분을 감내해야 한다.
업계 전문가는 “현재 보험사들로서도 침수차량의 잔존물처리에 대해 달리 어떤 방책이 없다”며 “자동차 중개업자들이 침수차량을 무사고차량으로 꼼수를 부려 판매하는 것을 막으려다 결국 잔존물처리 제도를 유명무실하게 만든 꼴”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이러한 침수차량이 무사고차량으로 둔갑해 시중에 유통되는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보험개발원에서 국내 14개 손해보험사로부터 자동차보험 사고처리 정보를 제공받아 침수사고 유무를 조회할 수 있는 서비스를 20일부터 제공할 예정이다.
개발원 관계자는 “침수차량의 경우 자동차의 성능, 안정 등에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사전 확인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침수차량 무료조회 서비스가 중고차 시장 유통 투명성 제고에도 기여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미리내 기자 pannil@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