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행 이자마진과 수수료수입의 적정성 논란은 어제 오늘의 이슈가 아니었지만 대부분의 은행은 25~26일 자동화기기 수수료를 대거 인하했다. 미국 반 월가 시위와 국내 금융경제 및 사회 상황은 역사적 흐름과 상황에 큰 차이가 있지만 국내 은행들도 탐욕만 추구하는 집단으로 몰리면서 검토에서 최종결정까지 채 1주일도 되지 않아 동시다발적으로 인하하는 기현상을 낳았다. 1등 공신은 금융당국과 여론의 일방성을 극대화시킨 언론들이었다.
◇ 외부압력에 동반 인하, 만족도는 미미
30일 한 대형은행 간부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몇일 되지 않았지만 다시 돌아 보니 막판까지 어느 항목을 몇 % 내려야 할 것인지 고심했던 이유 자체가 솔직히 씁쓸하기 짝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인하 수준이 너무 튀어서도 안되고 너무 미진해서 여론의 뭇매를 맞으면 그것 또한 안될 상황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전국의 모든 은행이 똑같은 시기에 수익성의 향방에 적잖은 영향을 끼칠 사안을 급박하게 조정해야할 만큼 실물경제나 금융시스템이 위태로운 것도 아닌데다가 시장경제체제에서 그래야 하는 것인지 회의감이 든다”는 자조어린 한탄으로 그의 고백은 이어졌다.
은행권에선 이번 수수료 인하과정에서 숱한 일화를 남겼다.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는가 하면 보도자료를 냈다가 은행장이 추가 인하 지시를 내려 정정하는 사태가 빚어졌다. 은행들의 수수료 인하율은 최저 항목은 10%에서 출발했고 최고 항목은 60%에 이른다. 같은 은행 ATM을 쓰면 영업시간이 아니더라도 수수료를 물지 않게 됐고 다른 은행으로 10만원 이상 송금할 때 물어야 하는 돈도 1600원~1900원 하던 것이 800원~1000원으로 줄었다. 〈3면 표 참조〉
그러나 큰 환영을 받진 못했다. 쫓기듯 동시에 진행했고 자동화기기 수수료에 한정되는 등의 이유로 금융소비자연맹은 추가 인하를 촉구했다. 은행권은 은행권대로 수익기반 악화 부담에 대한 냉가슴을 앓고 있다.
◇ 은행경쟁력 부정적영향 승수효과 키울 듯
이번 수수료 인하에 따른 소비자 혜택 만큼 은행의 수익은 줄어들기 마련인데 뚜렷한 추산치도 나와 있지 않다. 이 규모와 관련 감독당국 내부에선 연간 1500억원으로 봤고 현대증권 구경회 애널리스트는 상장 8개은행 세전이익 감소치만 1600억원으로 추정했다. 문제는 다른 여건과 맞물려 은행 장기경쟁력에 끼칠 부정적 효과가 가중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점이다.
지난 국회 정무위 국정감사 때 적지 않은 국회의원들이 은행 이익규모를 놓고 문제 삼은 바 있다. 심지어 “이자이익 규모가 갈수록 커지고 있는 것은 은행만 배 불리는 행위라며 금융당국이 왜 방기하고 있느냐”는 질책이 쏟아졌다. 연관 관계를 따지지 않고 한 쪽 단면만 문제 삼는 이 시각은 발화력을 전혀 잃지 않았다. 불행히도 그 계기는 김석동 금융위원장과 권혁세 금융감독원장 등이 은행이익 규모와 배당 수준 등을 연이어 문제삼고 하필 그 시기가 미국 반 월가 시위를 통해 ‘금융자본 탐욕 분쇄’운동과 오버랩 되면서 수수료 인하로 귀결되는 극적 전개를 이끌었다.
익명을 청한 민간 연구기관 간부는 이와 관련 “우리나라에는 장수하고 있는 CEO는 있을지언정 금융자본이라 부를 만큼 축적한 자본의 질도, 축적을 이룬 주체도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금융자본의 탐욕을 논하는 것은 넌센스”였다고 지적했다. 금융계 관계자들은 특히 은행 이익창출력은 약화되는 추세인데 이자마진 축소에 이은 수수료 인하 압력이 가중된다면 결국 장래 위험흡수능력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이미 국내 은행들의 이자이익 창출력은 눈에 띄게 퇴보하고 있다. 금감원에 따르면 국내은행 이자수익자산 규모는 지난해 1분기 1452조8000억원에서 올해 3분기 1525조6000억원으로 5.01%나 늘어났다. 〈그림 참조〉하지만 은행들이 거둔 이자이익 규모는 지난해 1분기 9조 6000억원에 그쳤고 지난해 4분기 이후 올 3분기까지 9조 8000억원 안팎에서 고정돼 있다.
한국은행 통계를 보더라도 예대금리차가 하향곡선을 더욱 뚜렷이 하고 있어 4분기 이자이익 역시 같은 수준 아니면 줄어들 가능성마저 배제하기 어렵다. 이자를 가져다 주는 자산이 늘었다는 것은 위험자산도 함께 늘어난다는 뜻이다. 반면에 이자이익은 정체됐으니 위험대비가 그만큼 어려워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뜻한다. 설령 이자이익이 불안정하더라도 비이자이익이라도 버텨 줄 수 있다면 다행이겠지만 비이자이익의 핵심인 수수료이익은 당장 4분기부터 눈에 띄는 감소가 확정됐다. 게다가 유가증권관련손익이나 외환파생관련 이익은 글로벌 금융위기 불안요인 때문에 장담할 수 없는 지경이다. 금융연구원은 최근 2012년 금융산업 경영과제로 위험관리 강화를 가장 중요하게 꼽았다. 불행하게도 국내 은행들의 이익창출 기반은 약화하고 있어 어떻게 대비할 것인지 주목된다.
〈 은행별 ATM 수수료 인하 현황 〉
(단위 : 원)
관리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