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적립식방식 랩이 아니라 펀드에 적합
스폿랩에 이어 적립식랩이 금융규제로 타겟이 됐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적립식랩은 펀드와 다를 바없다며 판매금지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적립식은 증시가 조정을 보여도 꾸준히 적립금을 납입해 ‘주식매수단가 하락효과(Cost Averaging Effect)’을 꾀하는 방식이다.
금융위가 판매금지로 내세운 근거는 이 적립식방식이 랩과 궁합이 맞지않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무엇보다 랩이 본질상 투자성향, 라이프스타일 등을 고려한 맞춤형상품임을 강조한다.
즉 매월 일정한 액수를 납입하는 적립식은 똑같은 대우를 받는 펀드에 적합하고 투자자별로 각기 다른 서비스를 해야 하는 랩과는 맞지않다는 논리다.
조인강 금융위원회 자본시장국장은 “랩은 일종의 적금인 적립식과 매칭되는 상품이 아니다”며 “고객의 투자기간에 따라 6개월, 1년 이후에 쓸 것인지 또 노후준비, 유학 등 투자목적을 모두 맞춰 운용해야 하는데, 적립식으로 투자규모가 낮으면 맞춤형이라는 기본틀이 손상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조국장은 또 “랩은 맞춤형인 까닭에 증권사입장에선 손이 많이 가고 수수료도 높지 않느냐”고 반문한 뒤 “랩이 적립식으로 운용되면 약속된 내규나 약관에 맞춰 똑같이 운용되는 펀드와 거의 차이가 없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금융당국의 규제가 시장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것이다. 적립식랩은 거의 한달 전부터 시장에 선보였다. 실제 한국투자증권은 지난달 18일 업계에서 처음으로 적립식 랩상품인빌드업(Build-up)을 내놓았다. 적립식 채택으로 주식시장이 급변할 때 고객성향에 따라 주식투자비중을 탄력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는 장점이 최근 인플레, 중동리스크 등으로 변동성이 커진 시장상황과 맞아떨어졌다. 그 결과 보름도 안되 약 20억원이 팔리는 등 인기를 모으는 것으로 알려졌다.
◇ 시간, 비용 등 이중부담, 고객불신확대도 우려
현대증권도 최근 적립형 ‘QnA 투자자문랩’을 선보였다. 이 상품은 최근 수수료인하로 랩대중화를 꾀하는 현대증권의 야심작이다. 그 취지에 맞춰 가입금액은 업계 최저 수준인 매월 100만 이상으로 대폭 낮췄으며, 상품구조도 자유롭게 입출금이 가능하도록 설계했다. 하지만 금융당국이 적립식랩의 상품구조에 문제를 삼으며 사실상 사형선고를 내리면서 이들의 판매는 모두 올스톱됐다.
현대증권의 경우 출시 당일 금감원이 적립식랩에 대해 우려를 전달하며 반나절만에 판매를 중단하는 헤프닝도 연출되기도 했다. 업계에선 금융당국의 한발 늦은 조치가 시간, 비용부담을 늘릴뿐 아니라 나아가 고객혼란을 부추기고 있다고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
증권사 랩운용부 관계자는 “금융상품개발은 고객니즈에 얼마나 발빠르게 대응하느냐가 관건”이라며 “스폿형규제를 피해 창의적, 혁신적 아이디어로 최근 변동성이 큰 시장에 유리한 방식을 찾은 상품이 적립식랩인데, 또다시 판매금지를 당해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도 “그 내용보다는 규제가 시장이 커지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것이 문제”라며 “갑작스런 판매중단조치로 전산시스템을 재정비해야 하는 등 비용부담뿐만 아니라 고객과 신뢰가 생명인 영업점에서도 혼란이 크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금융당국이 랩규제를 큰틀의 가이드라인을 정하고 세부운영은 증권사에 맡겨 정책과 현실사이의 갭을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업계 관계자는 “현행 방식으론 새로운 방식의 랩이 등장할 때마다 논란이 빚을 가능성이 높다”며 “기본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나머지 각론은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발휘하도록 맡기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최성해 기자 haeshe7@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