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헤지펀드, 펀드·랩 잇는 차세대 투자수단으로 주목
“펀드, 랩에 이어 금융상품의 최종판은 헤지펀드가 될 것입니다.” 김국현 메리츠종금증권 THE CLUB WM센터장은 자산가의 차세대상품으로 헤지펀드를 최우선으로 꼽았다. 시장상황에 따라 롤러코스터를 타는 랩과 달리 통화, 선물, 상품 등으로 시장상황에 관계없이 절대수익을 원하는 헤지펀드가 자산가들의 투자성향과 안성맞춤이라는 것이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각종 규제로 사실상 답보상태이나 고객니즈를 쫓는 금융상품의 진화와 맞물려 한국판 헤지펀드출시는 시간문제라고 낙관했다.
요즘 증권가의 뜨거운 감자는 헤지펀드다. 펀드가 환매로 주춤하는 사이 랩이 그 빈자리를 채웠으나 최근 코스피가 고점에서 된서리를 맞으며 인기는 예전만 못하다. 자산가들은 그 대안으로 시장상황에 관계없이 수익을 내는 헤지펀드 쪽에 눈을 돌리고 있다.
헤지펀드는 일종의 사모투자펀드로 시장상황에 관계없이 절대수익을 추구한다. 때문에 투자대상도 주식, 실물, 통화, 선물옵션 등으로 다양하며 원금의 몇배에 달하는 자금을 차입하는 공격적인 투자로 투자규모를 늘리기도 한다. 글로벌헤지펀드시장의 자산규모는 1조7700억달러로 이미 세계금융시장에서 큰손으로 자리매김했다.
◇ 증권사 유명해외사 제휴로 헤지펀드판매 러시
증권사들도 헤지펀드의 성장가능성을 높게 보고 해외유명 헤지펀드출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주요 증권사들은 해외유명회사와 전략적 제휴를 맺고 헤지펀드를 전략상품으로 내놓고 있다. 삼성증권은 맨 인베스트먼트(Man Investment)와 제휴한 재간접 헤지펀드 상품을 첫 출시했다. 운용전략은 전세계 선물시장을 활용한 ‘CTA전략’을 바탕으로 각국의 경제정책 및 거시경제 지표를 고려한 ‘글로벌 매크로 전략’을 활용하는 펀드들에 재투자한다. 헤지펀드 선점차원에서 AI(Alternative Investment, 대안투자)팀 신설 등 9개월간의 준비를 거쳐 선보인 야심작이라는 게 회사측의 설명이다.
우리투자증권도 1% 자산가를 위해 빼든 VIP상품이 바로 헤지펀드다. 지난 10일 내놓은 프리미어 블루 헤지펀드는 글로벌 헤지펀드에 투자하는 재간접펀드다. 대표적 글로벌 헤지펀드인 Paulson advantage, Winton Futures펀드에 재간접형태로 분산투자하는 구조다. 각각의 헤지펀드가 주식모멘텀, 시스템트레이딩 롱숏전략 등으로 서로의 약점을 보완해줘 시장의 상승하락에 관계없이 안정적인 수익도 기대된다.
대우증권은 독점판매로 시장선점에 나섰다. 최근 미국의 헤지펀드 운용사인 밀레니엄파트너스와 국내 독점판매 계약을 맺은 것이 대표적인 사례. 이 회사는 운용자산 약 10조원의 자산을 굴리고 전세계에 11개 지사를 보유한 대형헤지펀드 전문운용사다.
투자대상은 미국, 유럽, 아시아 지역의 주식, 채권, 외환 관련 및 선물과 원자재 선물 등이며 각양각색의 투자자산을 활용한 다양한 롱숏, 차익거래전략으로 시장흐름에 상관없이 절대수익을 추구한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3.07% 손실을 입었을 뿐 그 외에는 매년 수익을 올려 무디스(Moody’s)사로부터 최상위 헤지펀드 등급을 받았다. 대우증권은 사모재간접형태로 이달 말부터 국내 법인 및 거액투자자들에게 독점 판매할 예정이다
◇ 규제완화가 대세, 인력 등 인프라부족으로 대중화는 시기상조
이들 증권사들이 내놓은 헤지펀드엔 공통점이 있다. 바로 해외전문운용사와 제휴를 맺고 펀드 오브 펀드의 형태로 그들이 운용하는 헤지펀드에 재투자한다. 헤지펀드 운용의 주체가 아니라 수요자와 공급자 사이에서 상품을 중개하는 객체라는 것이다.
삼성증권 AI팀 관계자는 “자체 헤지펀드를 설립하려해도 현행법상 사실상 헤지펀드구조를 만들기 어렵다”며 “국내법상 미등록된 펀드는 못파는데다, 비용의 경우 사모방식이 50% 이상 절감돼 사모방식이 주류를 이룬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국내증권사들의 헤지펀드가 펀드오브펀드 일색인데, 무엇보다 규제가 까다로운 탓이다. 제도상 헤지펀드의 길을 열었으나 편입자산의무, 레버리지제한 등 규제에 막혀 다양한 자산으로 유연한 투자전략을 구사하기가 어려워 사실상 유명무실하다.
실제 현행 토종 헤지펀드는 국가, 예금보험공사, 금융기관같은 적격투자자만 가능하다. 투자대상도 구조조정기업에 50% 넘게 의무적으로 편입하고 차입한도도 300%로 선을 그었다.
대우증권 상품개발부 관계자는 “일반개인투자는 10억원 이상이 있어야 하는데, 사실상 참여가 불가능한 상황”이라면 “운용을 하려해도 각각 헤지펀드마다 구조조정관련 기업에 50% 편입해야 하는 등 구조조정펀드와 다를바 없다”고 지적했다.
반면 외국의 경우 운신의 폭이 넓다. 레버리지, 공매도, 파생상품투자등 자산운용규제도 없고 대부분 조세피난처(Off-shore) 에 세워져 펀드설립도 자유롭다. 워낙 규제수준의 격차가 크다보니 국내와 외국사 사이의 역차별논란도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금융당국이 최근 국내 헤지펀드규제를 선진국수준으로 완화한다는 방침을 밝혀 헤지펀드도약의 계기를 마련하게 됐다.
실제 금융위원회 김석동 위원장은 “해외 사모펀드가 국내에 투자하는 데에 아무런 제약이 없는 상황이지만 토종헤지펀드는 역차별로 인해 국내에 등록을 꺼리는 상황”이라며 “특히 현행법상 사모펀드(4개 유형)에 대해 규제체계가 지나치게 복잡해 자유롭고 창의적인 펀드 운영이 곤란하다”고 의지를 밝혔다.
실제 헤지펀드 개선안을 마련중인 금융위도 대폭적인 규제완화를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금융위 관계자는 “역차별해소라는 위원장의 의중이 최대한 반영하는 쪽으로 개정작업이 진행되고 있다”며 “다만 자본시장법 전면개정과 맞물려 상반기 국회에 제출하고 법령재개정 작업을 거치면 시행까지 다소 시간은 지체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규제가 대폭 완화되더라도 헤지펀드 조기정착에 대해선 신중한 반응이 우세하다. 대형증권사 상품개발 본부장은 “전세계 글로벌 헤지운용사들은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고 노하우를 쌓으며 성장했다”며 “규제완화로 하드웨어가 마련되더라도 리서치, 운용능력 등 소프트웨어는 걸음마 수준으로 랩처럼 빠른 시간 내에 대중화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 국내·해외 헤지펀드 규제 비교 〉
(단위 : 억원, %)
* 우리나라 PEF는 최소투자한도(개인 10억원, 법인 20억원), 영국은 적격투자자만
투자가능, 홍콩은 최소투자한도(Single Hedge Fund 5만불, FoHF 1만불)
(자료: 금융위원회)
최성해 기자 haeshe7@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