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가 구매해야 매상이 오르고 할인판매점의 이익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판매업자끼리 소비자의 이익을 위해 경쟁하는 모습은 대부분 시장에서 발견되는데 펀드판매시장 역시 예외는 아니다. 주요 국가의 펀드판매시장은 판매회사가 과거처럼 계열회사 펀드를 우선 권유하는 관행에서 벗어나 투자자에게 가장 적합한 펀드를 판매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투자자의 재무상태와 재무목표 등을 감안하여 포트폴리오를 제공하는 자문서비스의 경우 투자자의 이익을 보다 더 확실하게 보장하기 위하여 자문과 판매를 완전하게 분리하려는 움직임까지 나타나고 있다. 한국투자자교육재단은 펀드판매시장의 구조개선이 투자자 교육 및 투자자 보호의 궁극적인 해답이라는 판단 하에 국내·외 펀드판매시장의 변화를 살펴보고 우리 시장의 진로에 대해 고민해 보고자 한다.
맞벌이와 자가용이 늘어나면서 매일 필요한 만큼 구입하기 보다는 대량으로 구입하는 방식이 선호되었다. 이처럼 수요가 변하자 대형 할인점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났다. 최근에는 인터넷을 이용해서 장을 보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반면에 사람 간에 부대끼는 정이 그리워 여전히 재래시장을 이용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서울 근교의 5일장이 열리는 곳은 아직도 북적거리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각자 자신에게 적합한 판매방식을 이용하는 것이다.
◇ 펀드의 종류와 펀드 수의 대폭 증가
우리나라는 1970년 5월 20일에 펀드 판매가 시작되었다. 그 당시 펀드 투자자들은 펀드에 투자할까 말까만 선택하면 되었다. 1973년에 두 개의 펀드가 추가되었다. 펀드 투자에 필요한 선택 사항이 늘어났겠지만, 다행히(?) 세 펀드 모두 주식형 펀드였기에 선택이 크게 어렵지는 않았을 것이다.
1974년 9월부터 공사채형 펀드가 등장했다. 투자자의 수요에 신축성 있게 대응하고자 장기공사채, 중기공사채, 단기공사채 등 여러 가지 펀드를 판매했다. 당연히 펀드 수도 크게 늘었다. 1974년 말까지 펀드 수는 10개가 되었다. 그래도 이때까지는 선택이 그리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1988년 7월부터는 해외에 투자하는 펀드가 등장했다. 1998년에는 회사 형태의 새로운 펀드까지 등장했다. 이와 함께 펀드 수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1993년에 1,000개를 넘어섰고 2009년 말 현재 일반 투자자가 제한 없이 투자할 수 있는 공모펀드만도 4,000개로 집계되었다. 이제는 펀드 투자자가 직접 펀드를 선택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 펀드 판매직원의 역할 그리고 한계
우리나라에서 펀드에 투자하려면 대개 펀드 판매회사 (은행이나 증권회사 등 펀드를 판매하는 금융기관)를 방문해서 판매직원과 상의한다. 판매직원의 법적인 성격은 중개인(broker)이다. 아파트 근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공인중개사들이 바로 (부동산) 중개인이다. 판매직원들은 투자자의 수요에 적합한 펀드를 선정해서 투자를 권유하고 거래를 체결한다.
따라서 현재와 같이 투자자가 직접 펀드를 선택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판매직원의 역할이 더욱 커지게 된다. 아쉽게도 판매직원들과 펀드 투자자 간에 있을 수 있는 이해상충 가능성도 그에 비례해서 커지게 된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대형 판매회사들이 투자자에게 적합하기보다는 자사에 유리한 펀드를 판매하다가 감독당국의 제재를 받은 경우가 여러 차례 있었다. 영국에서는 2002년에 중장기 소매저축시장(retail savings markets)을 검토하는 가운데 판매직원 또는 상담사들이 투자자에게 적합한 펀드보다는 수수료가 높은 펀드를 권유한 것으로 밝혀졌다.
2009년에 일본 금융감독청(FSA)에서 나온 보고서도 이런 문제를 지적하고 있으며, 펀드 마케팅이 펀드 판매에 미치는 영향력이 매우 강력하다고 밝히고 있다.
◇ 외국에서의 개선 움직임
제반 여건을 감안할 때 우리나라 투자자들이 보다 자신에게 적합한 펀드에 투자할 수 있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판매직원의 자격이나 교육을 강화하는 방법이 유용할 것이다. 투자자와 이해상충문제를 일으킨 판매직원이나 판매회사를 공개하는 방법도 효과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보완방안 보다는 이해상충을 근원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방법이 더욱 효과적일 것이다. 예일대의 쉴러 교수 말처럼 ‘투자자들이, 상품 판매와 완전 무관해서 특정 상품을 파는 대가로 받는 수수료를 받지 않고 상담만으로 대가를 받는 독립적인 전문 상담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그것이다.
펀드 산업 선진국들의 움직임을 살펴보자. 미국에서는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독립적인 위치에서 투자자들에게 자문을 제공하는 독립 재무상담사 (Independent Financial Advisor, IFA)의 시장 점유율이 크게 늘었다. 투자자들의 수요 증가와 찰스 슈압 인스티튜셔널과 같이 독립 재무상담사를 지원하는 온라인 판매망 등 인프라의 확충이 추진 동력이다. 영국에서는 ‘소매판매 검토’(Retail Distribution Review) 추진 과정에서 자문(advice)과 판매(sales)를 구분하기로 했다. 자문은 투자자에게서만 보상 받아야 한다. 투자자 이외의 자가 보상하는 경우는 자문이 아니고 판매에 해당된다. RDR 최종 보고서는 2010년에 발표될 예정이며 영국 금융기관들은 2012년 말까지 최종 보고서 내용에 따라야 한다.
◇ 우리나라 펀드시장의 구조개선이 시급
영국이나 미국 펀드시장의 변화는 모두 독립한 위치에서 투자자에게 자문을 할 수 있는 전문가와 관련된다는 점에서 공통된다. 우리나라 펀드 시장에도 이런 제도의 도입을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개인에게 자문업을 허용한다던지 하는 방법을 일견 생각할 수 있겠다. 다만, 선결과제가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펀드 판매에서 자문서비스는 독립된 서비스로 인정받지 못한다. 자문서비스에 대한 별도의 대가는 없으며 판매에 대한 대가에 포함될 뿐이다. 자문 서비스가 별도의 대가를 받는 독립된 서비스로 인정 되어야 독립적인 전문 상담사 제도가 쉽게 정착될 수 있을 것이다.
또 하나의 선결과제가 있다. 이런 전문가의 의무를 엄격하게 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투자자의 전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자문업자에게 신인의무(fiduciary duty)라는 엄격한 의무를 부담시킨다.
최근에 미국 정부가 중개업자에게도 신인의무를 부여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중개업자의 의무를 가중시키는 것이 아니다. 중개업자가 자문을 할 때에는 자문업자와 같은 의무를 부담해야 한다는 뜻이다.
펀드 투자가 100% 이런 전문가를 통하지는 않을 것이다. 현재와 같이 중개인의 서비스를 원하는 펀드 투자자들도 있게 마련이다.
또한, 온라인 판매를 이용하려는 투자자들도 있을 것이다. 기존의 판매방식을 개선해 나가면서, 자문이 필요한 투자자들이 이용할 수 있는 새로운 판매방식을 갖추면 된다. 찰스 슈압 인스티튜셔널의 사례에서 보듯 온라인 판매의 활성화는 자문을 통한 펀드 투자의 발전에도 직결된다. 우리나라 펀드시장의 구조개선을 위해 많은 이들의 관심과 노력이 시급하다.
관리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