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경우 젊은시절을 지내오면서 부지불식간에 다소 부정적인 느낌을 갖게된 단어로 “개인주의”라는 것과 일본어인 “혼네(本音)”이라는 것이 있다.
개인주의는 서양사람들의 사고방식을 거론할 때 주로 쓰이던 것이고, 혼네는 일본사람들의 속마음을 가리킬 때 쓰던 말인데 교육을 그렇게 받은 탓인지 내게는 웬지 안좋은 느낌의 단어로 인식되어 왔다.
그런데 이 두 단어가 사실은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사는 공동체생활에서 결코 나쁘지않은, 아니 우리 한국사람들에게는 오히려 배울점이 많은 의미있는 단어라는 인식을 갖게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외국을 다니면서 체험한 서양사람들의 개인주의는 단순히 “내 일에 간섭하지 말라”는 차원을 넘어 “내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중요한만큼 남의 일에도 함부로 간섭하지 않겠다”는 존중감과 “남을 배려해야 나역시 제대로 배려받을수 있다”는 배려의식이 바탕이 되어 있었다.
일본도 마찬가지. 일본사람들이 겉으로 하는말을 다 믿어서는 안된다. 겉으로 드러나는 다테마에(建前)에 현혹되지 말고, 혼네(속마음)를 읽어라등 웬지 일본사람들은 표리부동함이 많은 것처럼 비쳐줘 왔지만, 사실은 적어도 면전에서 상대방의 감정을 훼손하지는 않겠다는 배려감이 짙게 깔려있는 생활자세의 한 단면이었다.
그런데 이 배려야 말로 사회생활의 기본이요 근간이 아닐까 싶다. 근래들어 우리사회에 자기 목소리 키우기에만 급급하고 타인에 대한 배려에는 점점 인색해지는, 그래서 결국은 우리 민족의 심성이 매우 이기적이고 편협해 지는 것만 같은 아쉬움을 금할 길 없다. 배려의 시작은 무엇일까? 당연히 말과 행동일 것이다. 말한마디를 해도 상대방의 눈높이에 맞춰 하는 것이 배려요, 여러 사람이 모인데서 혼자만 말을 독점하는 것도 배려가 부족한 것이다.
그렇다면 배려의 반대는 뭘까? 말과 행동을 함부로 하는것이니 요즘으로 말하면 언어폭력과 몰상식한 행동이 그에 속할 것 같다. 영어단어로는 hurt가 제격이다. 배려는 없고 hurt만 난무하는 사회? 요즘 우리사회를 그렇게 말하고 싶다. 얼마전 인터넷에서 비롯된 모 여배우의 자살과 국회 국감장에서의 추태가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자신의 일도 아니면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남의 일에 그렇게 뛰어들어 험악한 용어들을 거침없이 내뱉는 소위 악플러들, 국회에 증인이라고 불러놓고 증인의 인격이나 증언은 안중에 없고 폭언만 늘어놓는 국회의원들. 이들이 그 책임의 일단을 갖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왜 그렇게 됐을까? 언제부터 우리사회가 남을 hurt하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 저급한 사회가 됐을까. 언젠가 아는 분이 어느나라나 말의 중요성과 관련된 속담이나 격언이 많지만 우리나라처럼 “말한마디에 천량 빚을 갚는다” 부터 “아 다르고 어 다르다”까지 다양하게 있는 나라도 드믈것이다 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렇게 말한마디를 중시하던 민족이었는데 최근에는 해도 너무한다 싶다. 나라안팎으로 경제가 어려운 요즈음. 개인주의도 좋고 혼네도 좋으니 말한마디 행동거지하나에도 지금보다는 좀더 타인에 대한 배려가 살아있는 품위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네티즌들은 익명성의 보호막을 과감히 걷어내고, 국회의원들은 면책특권에 안주하지 말며, 언론은 표현의 자유를 남발하지 않는 원숙한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국정감사의 이모저모를 보여주는 TV방송을 보며,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했던 독일철학자 하이데거의 멋진 은유가 오늘 더욱 가슴에 다가온다.
관리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