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율이 심상치 않다. 며칠간 급등을 하더니 당국의 개입으로 잠시 주춤한 상태이지만 언제 급격한 움직임이 나올지 짐작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주지하다시피 최근의 환율 움직임은 매우 복잡한 국제적 국내적 경제상황이 복합적으로 반영되어 나타나는 현상으로서 단기에 안정화되기는 힘든 구조를 지니고 있다.
최근 환율의 불안한 움직임의 일차적 원인은 무엇보다도 서브프라임위기로 대표되는 글로벌 금융시장의 자금경색 현상이다. 작년 여름부터 불거지기 시작한 서브프라임 위기는 올해 초반에 진정 기미를 보이더니 갑자기 다시 부각이 되기 시작하고 있다.
미국의 주택 담보대출은 프라임 등급, 알트-A 등급 그리고 서브프라임등급 까지 대략 세 등급으로 나누어진다. 전체 대출의 약 20%를 차지하는 3등급 서브프라임 등급에 대한 대출이 부실화되면서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한 것이 작년이다. 게다가 담보대출을 준 상태에서 은행이 이를 그냥 두지 않고 채권으로 유동화하여 시장에 매각을 하고 회수된 자금으로 다시 또 대출을 주고 또 이를 유동화시켜 매각하는 과정에서 채권은 점점 더 많아지고 자금이 주택 담보 대출로 엄청나게 몰리게 되었다.
◇ 알트-A 등급도 문제가 있다
3등급으로 분류되는 대출이 늘어난 것도 따지고 보면 유동화로 인해 자금이 풍부하게 조달될 수 있었던 데에 기인한 것이다.
결국 엄청난 자금이 몰린 상태에서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면서 대출이 부실화되자 대출을 준 은행, 채권을 사들인 헤지펀드, 헤지펀드에 대출을 준 은행, 채권을 보증한 보증회사 등이 한꺼번에 부실화되면서 문제가 커져버렸다. 당국이 나서서 금리를 낮추고 유동성을 풀어서 부랴부랴 문제해결에 나서기는 했지만 아직도 쉽게 해결이 되지는 못하는 분위기이다.
특히 그동안은 상대적으로 안전한 것으로 보았던 2등급 대출 곧 알트-A 등급의 대출도 부실이 증가하는 등 심상치 않은 조짐이 나타나면서 시장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부실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면서 더 큰 대형위기가 발생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최근 프레디맥과 패니메이로 불리는 모기지 회사가 부실조짐을 보이자 미 당국이 비판을 무릅쓰고 구제책을 발표한 것도 이러한 위기 확산을 방지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 안전자산선호와 자금경색
미국의 금융위기가 전세계로 확산이 되면서 국제금융시장에서는 자금경색이 발생하고 있다. 위기 시에 투자자들은 안전자산을 선호하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금융위기의 발생지가 미국인데도 일단 금융시장위기조짐이 보이면 안전자산의 대표 격인 자산은 미국 국채가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달러에 대한 선호도가 증가하고 결국 달러가치는 강세를 보일 수 밖에 없다. 과거 남미 외채위기와 동남아 외환위기 때 미국은 유동성을 풀어서 위기를 수습하는 데에 기여한바 있다. 저금리정책을 통해 유동성을 충분히 풀었고 우리나라는 이런 분위기 속에서 1998년 원화약세를 유도하여 수출을 장려함으로써 400억 달러에 달하는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하면서 외환위기 탈출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이때 기록한 흑자규모는 아직까지 깨지지 않고 있는 기록적인 흑자규모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소방서 역할을 톡톡히 하던 미국 스스로에게 문제가 생긴 모습이다. 말하자면 소방서에 불이 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은 스스로 엄청난 유동성을 풀어서 스스로의 불을 끄고 있는 모습이다. 또한 국부펀드들이 미국 내에서 빌딩 등 부동산이나 주식을 저가에 매입하고 있는 것을 장려하는 느낌이다. 과거 1980년대 후반의 경우 록펠러 센터를 일본이 매수하자 미국의 자존심이 무너졌다는 식의 감정적 반응을 보인바 있는데 이번에는 매우 대조적이다. 그만큼 미국의 내부사정이 급하다는 인상을 받게 되는 대목이다.
◇ 9월 대란설
서브프라임위기가 가진 아이러니는 이처럼 문제의 근원은 미국이지만 국제금융시장이 위기분위기에 휩싸이면서 달러 강세가 유도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우리의 경우 채권을 둘러싼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그동안 외국인이 국내채권을 상당 부분 사들인바 있는데 이제 위기국면에서 원화가 약세로 돌아서고 자금시장이 경색이 지속 되자 외국인들이 9월에 만기가 도래하는 원화채권의 원리금 (달러로 약 67억달러)을 일시에 달러로 바꾸어 한국시장을 탈출할 것이라는 9월 대란설도 설득력 있게 전파되고 있다. 서브프라임위기의 후폭풍이 우리 시장을 강타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한은은 국내금리가 높아서 채권의 재투자가 일어날 것이고 외국인들이 8월에는 국내채권 순매수로 돌아섰다는 점을 내세워 9월 위기설을 부인하고는 있지만 파장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사실 최근 국내은행들이 빌려온 달러자금의 만기연장이 힘들어지고 있고 연장이 되더라도 금리를 올리거나 원금 일부상환을 요구받는 등 글로벌 자금시장의 경색이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최근의 환율은 이러한 위기가능성을 미리 반영하고 있는 셈이다.
◇ 위기방어가 우선되어야
이러한 상황에서 환율의 상승은 당장 수입 물가를 자극하고 있고 물가가 오르면서 국민고통지수는 7년내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스태그플레이션의 악몽이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물가가 서민경제를 힘들게 하고 있기는 하나 더욱 중요한 것은 위기에 대한 방어기능의 확충이다. 2500억 달러에 달하는 외환보유고가 든든히 받쳐주고는 있지만 만의 하나 외국인의 일시적 탈출로 인한 위기국면이 도래하면 이는 물가상승에 비견할 수 없는 대형악재가 되어 서민경제를 덮치게 될 것이다. 위기국면에서는 약자가 먼저 실려 나갈 수밖에 없다.
환율의 상승이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외환당국은 달러매도를 통한 개입을 자제하고 외환보유고를 잘 지키고 있어야 한다. 상황에 따라서는 일부 달러 매입을 통한 개입도 시도하여 보유고를 약간 늘리는 제스처를 취하는 것도 좋다. 환율의 상승을 통한 원화약세국면은 수출을 늘이고 수입을 줄여서 경상수지를 방어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위기국면에서는 물가를 조금 희생해서라도 위기를 방어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물론 일단 위기국면을 벗어나기만 하면 각종 대책을 통해 물가를 안정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물가안정만이 서민경제를 위하는 길은 아니다. 어떻게 보면 위기방어가 서민경제에는 더욱 중요한 정책일 수가 있다. 정책당국은 이러한 부분을 감안하여 유연성 있게 현 상황에 대처해 나가야 할 것이다.
관리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