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올 초에 손보업계가 보험개발원의 주요 업무를 축소하자는 논의가 일자 생존을 위한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3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최근 보험개발원이 정채웅 원장 취임 1주년을 기념해 향후 보험개발원의 업무계획을 발표했는데 주요 내용을 보면 외제차 부품수입우수업체 지정제도 운영, 자동차 충돌시험의 지속적 확대 실시, 민간의료보험 활성화를 위한 시스템구축지원, 산재보험의 효율성 제고를 위한 보험사 참여방안 제시 등이다.
하지만, 보험업계에서는 이러한 보험개발원의 행보가 설립당시의 취지는 망각하고 회원사인 보험사들에게 보여 주기식의 계획만 수립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먼저 외제차 부품수입우수업체 지정제도 운영의 경우 개발원이 외제차 부품수입 우수업체와 파트너십을 체결, 우수협력업체로 지정하면 보험사 지정 정비공장이 수리용 부품조달시 지정 받은 부품수입 우수업체의 부품을 우선 활용하게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손보업계에서는 보험개발원이 외제차 부품수입우수업체 지정제도를 운영하는 것이 외제차 수리비를 현실화 하는데 큰 효과가 있을지 의문스럽다는 입장이다.
먼저 외제차 부품수입업체들이 자신들의 이익이 감소하는 것을 감내하면서까지 보험개발원과 파트너십을 체결할 이유가 없다.
또한 보험사 지정 정비공장에서도 개발원이 지정한 부품수입업체에서 부품을 공급할 때까지 고객을 기다리게 하는 것과 이로 인해 추가로 발생하는 휴차료, 대차료비는 고스란히 보험사에게 전가되는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여기에 민간의료보험 활성화를 위한 시스템구축지원 사업도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다.
보험업계와 의료기관과의 협의를 통해 의료비 청구양식을 표준화·전산화하고 보험회사와 의료기관을 연결하는 전산망구축을 지원하겠다는 것인데 병의원에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예산이 소요된다. 시스템 구축에 필요한 예산이 확보된다고 해도 걸림돌은 또 있다.
이 시스템이 도입되면 보험가입자는 보험회사가 발급한 민영의료보험카드를 의료기관에 제시하고 진료를 받고, 의료기관에서는 의료비 청구서를 전산망을 통해 전자문서로 보험회사에 송신하고 보험회사는 의료기관에 의료비를 지급하게 된다.
즉 개인의 의료정보가 보험사에게 이전될 수 있다는 문제가 발생해 병·의원에서도 보험사와의 협의를 꺼려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고객의 입장에서도 전국에 있는 모든 병·의원이 이러한 시스템에 가입되어 있지 않다면 민영의료보험카드를 소지하고 다닐 필요가 없다.
이처럼 보험개발원이 현재 보험사들의 주요 관심사항인 문제에 대해 현실적 실현가능성은 검토하지 않고 보험사에게 유리한 방향으로만 추진하려 하고 있는 것은 개발원의 주요 업무를 축소하려한 보험업계의 눈치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지난 2월초 삼성화재를 비롯해 총 8개사(현대·동부·LIG·메리츠·롯데손보·교원나라·AHA)는 실무TF팀을 구성하고, 유관기관들에 대한 업무기능 재편안을 논의한 끝에 최근 가칭 ‘유관기관의 역할 재정립안’을 도출했다.
이에 따르면, ICPS(보험사고정보조회시스템) 운영을 비롯해 중고차조회서비스(카히스토리)·보험사기관련 조사와 연구·보험제도 개선업무 등 보험개발원이 수행하고 있는 주요 업무를 폐지해야 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외부로부터의 연구용역 업무도 개선하는 방식으로 보험개발원의 신규사업도 자제시킨다는 원칙을 마련했다.
대신 보험개발원의 ICPS 업무는 향후 손해보험협회로 이관, 유의자시스템과 계약중복조회시스템을 통합, 이를 업그레이드해 운영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었다.
이에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산업에 대한 연구기능이 보험연구원으로 넘어간 이후 보험개발원의 필요성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늘자 업계의 주요 이슈만 따라가는 업무계획만 수립하고 있다”며 “무엇이 보험개발원이 해야 할 일인지 다시 생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재호 기자 hana@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