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기진화후에는 신플라자 합의 등 활로 모색 기대
1982년 멕시코의 모라토리움 선언으로 촉발된 남미외채위기는 꽤 오랫동안 세계경제를 괴롭혔다. 결국 미국이 나서서 브래디 플랜을 비롯한 해결책을 내면서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하였다. 1990년대의 동남아외환위기도 마찬가지였다. 급격한 달러유출 현상이 나타나면서 위기에 빠진 동남아와 한국경제는 결국 미국이 금리를 낮추면서 대량으로 유동성을 풀고 자국의 경상수지 적자를 통해 아시아경제의 경상수지 흑자를 유도함으로서 해결이 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지금 이번에는 또 한번의 위기가 국제금융시장을 엄습하고 있다. 바로 2007년 여름에 발발한 서브프라임 위기이다. 이번 위기는 지난 위기들에 비해 몇 가지 면에서 독특하다. 우선은 위기의 진원지가 미국이라는 사실이다. 지난 위기의 진원지는 남미나 아시아였고 그때마다 미국은 불을 끄는 소방수 역할을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미국에서 위기가 발발했다. 소방서에 불이 난 것이다. 따라서 이번 위기는 미국 스스로도 노력을 해야 하지만 동네주민들도 나서 주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또 하나는 위기의 원인이 일반소비자들 곧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수많은 소비자들이 연루되어 있어서 규모나 크기를 파악하기조차 힘들다는 점이다. 최고 4000억 달러까지로 파악되기는 하나 앞으로 어떻게 될지 유동적인 측면이 강하다. 이번 위기로 경제가 안 좋아지면서 이자를 못 갚게 되는 가계가 추가로 나타나면 담보대출을 근거로 발행된 주택담보관련 채권에 이상이 생기면서 추가부실이 발생 가능하다. 한마디로 상황에 따라 크기가 커지는 동적인 부실화의 과정을 겪을 가능성이 농후한 것이다.
세 번째는 주택경기가 워낙 좋다보니 그만 금융기관들이 방심을 하면서 첨단 파생기법을 동원했다는 점이다. 이들은 주택담보대출을 기반으로 각종 파생적 금융상품을 쏟아내기 시작하였다. 단순한 패스쓰루(pass-through) 형태의 채권 말고도 주택담보대출의 풀을 전제로 선순위와 후순위 채권구조를 토대로 한 CDO(collaterized debt obligation) 형태의 채권을 만들어 내거나 심지어 CDO를 기본자산으로 하는 CDO 제곱(CDO square) 형태의 채권까지 쏟아내기 시작하였다. 주택담보대출로 자금을 운용하는 일차적인 금융기법에 만족하지 못하고 2차 3차의 상품들을 만들어서 비즈니스를 계속 확장해나간 것이다. 과유불급이라 했던가. 지나친 쏠림은 결국 문제를 야기하였고 문제는 일파만파 커져갔다.
넷째 이 과정에서 자금을 굴릴 대상을 찾아 헤매는 헤지펀드 등 여러 종류의 펀드들이 한몫을 했다. 변제순위가 매우 떨어지는 바람에 부실이 조금이라도 생기면 일차적으로 책임지는 후순위 채권을 주로 사들이는 기법이 고수익을 올리는 기법으로 헤지펀드에게 각광을 받기 시작하였고 이들은 위험한 채권을 펀드자금만으로 운용하지 않고 채권을 담보로 돈까지 빌려서 레버리지를 일으키는 기법까지 사용하였다. 헤지펀드들이 부실화되면서 돈을 빌려준 금융기관까지 아주 안 좋아져 버렸다.
모든 위기를 극복하는 데는 시간과 돈이 든다. 이번 사태도 보면 상각이 끝난 듯 보이다가는 추가상각이 이루어지고 하는 과정을 계속 반복하고 있다. 추가부실 혹은 추가 파산이 없다는 것이 확인이 되려면 시일이 필요하고 이 기간 동안 여진은 계속될 것이다. 실제로 그동안 다양한 자금이 상각에 투입이 되었다. 제일 대표적인 예가 바로 아부다비 투자청이 시티은행에 투입한 75억 달러의 자금이다. 이 자금은 전환사채형태로 조달이 되었는데 금리가 무려 11%로서 거의 정크본드 수준이다. 시티은행의 신용등급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수준의 금리이다. 얼마나 급했으면 하는 소리가 나오는 것도 그리 이상하지 않다. 더구나 이 전환사채가 주식으로 전환되고 나면 지분이 5%에 육박하면서 아부다비 투자청은 시티은행의 최대주주가 된다.
불이 진화되고 나면 이제 다시 국제금융시장은 안정을 찾을 것이다. 그러나 주택담보대출을 기반으로 한 금융시장은 한동안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다. 실제로 지금 LA의 경우 주택 등 부동산 급매물이 많이 나와 있는데 거래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 상황은 한동안 지속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러나 이 사태가 달러를 기축통화로 한 달러본위시스템에 근본적 문제가 생길거라는 일각의 주장은 지나친 부분이 있다. 브레튼 우즈 체제의 출범 이후 월남전 혹은 쌍둥이 적자 등 수많은 위기가 왔지만 달러중심의 국제금융체제는 그때마다 문제를 해결하면서 계속 잘 유지되어 왔다. 이번도 상각이 다 끝나고 추가부실 발생이 잦아들면서 위기가 극복이 될 것이다. 약 5조달러의 달러 표시 자산이 전세계에 풀려있는 상황에서 달러중심의 국제금융체계가 흔들리는 것은 어느 국가도 원치 않는 시나리오이다. 가끔씩 미국 달러표시 채권을 팔고 다른 자산으로 바꾸겠다는 발언을 해서 물의(?)를 일으킨 중국도 최근에는 이런 발언을 자제하고 있는 것을 보면 자신이 보유한 달러자산의 가치가 크게 손상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점이 분명하게 다가온다.
물론 글로벌 임밸런스의 해소를 위해 유동성의 축소와 미국 경상수지와 재정수지의 적자를 해소하는 것이 중요한 상황에서 달러를 더 풀어야 하는 바람에 혼란이 가중되고 있고 이러한 와중에서 금리를 안 내리고 버티는 유럽제국들이 유로의 헤게모니 장악을 시도하는 움직임이 엿보이기는 하나 상황을 완전히 바꿀 정도의 파괴력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이제 위기가 어느 정도 진화되면 신플라자 합의 등 다양한 방법으로 활로를 모색하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최근 한국투자공사가 메릴린치에 20억달러를 투자하였다. 이처럼 급매물의 일부를 받으면서 위기의 진화를 돕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두는 정책은 매우 의미가 있다. 외환보유고의 상당부분이 달러자산인 우리나라로서 달러의 발행국인 미국경제가 지나치게 흔들리지 않도록 도와야 한다. 또한 미국과의 금리차가 2%p까지 벌어진 것은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으며 원화절상요인으로 작용할 경우 수출에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마저 농후하다. 국내경기가 어느 정도 위축이 되고 스태그플레이션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물가만을 보면서 지나치게 긴축만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비용상승 인플레는 조금은 완화적인 통화정책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세계경제가 위기를 잘 극복하고 한국경제도 슬기롭게 대처하여 좋은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관리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