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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럼] 국제경쟁력은 무슨, 껍데기들은 가라!

정희윤 기자

simmoo@

기사입력 : 2007-05-16 20:56

금융 중정(中庭)을 거닐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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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진출기업도 국내銀 외면 일쑤

신동엽 시인의 ‘껍데기는 가라’엔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껍데기는 가라”는 싯귀가 있다. 그런데 우리 금융산업을 둘러싼 허위의식을 생각하면 이 작품으로 빗대는 일조차 과분해 보인다.

은행업이란 뭘까? 불특정다수로부터 자금을 끌어 모을(수신) 수 있는 아주 특별하며 배타적인 인가를 따 놓았으니 공공성에 복무해야 마땅하면서도 기업이니만큼 수익성에도 소홀히 해선 안 된다는 이중잣대에 시달린다. 골칫거리지만 피할 수 없고 피하려 해서도 안되는 숙명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오피니언 리더들의 담론은 스스로 모순에 빠져있거나 이율배반적일 때가 적지 않다. 이래서는 금융산업 강국으로 갈 수 있을 리가 없다.

대표적으로 국책은행들에 대한 주류 논리들을 짚어보자. “법으로 정한 목적에 벗어난 민간영역 침해”라며 법치주의를 앞세우는가 하면 아직도 문제의식의 출발선은 “정부가 대준 돈(혈세)으로 편하게 영업하는 주제”이고 “기업들에게 우월적 지위를 지닌 채 군림하는 작자들”이라고 물정 모른 채 비판하는 판이니 오죽할까.

저원가 자금인 대중들의 요구불예금이나 저축상품과 같은 수신을 유치하지 않고 산업은행이 산금채만 찍어서, 기업은행이 중금채만 찍어서 영업한다면 자금조달 비용이 비싸져서 대출하기 어려워지다 결국엔 망할지도 모를 일인데 이 문제는 외면하거나 건너뛴다. 지점 신설을 못하게 막고 개인고객 영업 늘리는 것을 억제해도 충분히 먹고 살만 할 것이라는, 허상에 뿌리박은 믿음이 작동하기 때문일 게다.

급여 수준 문제도 마찬가지다. 은행권 전체를 놓고 비교하는 작업은 생략해버린 채 업종이 다른 공기업과 비교해서 많이 받으니 임금인상을 억제하란다. 임단협은 할 필요가 없어졌다. 유독 이대목에선 법치주의가 실종된 채 기본권인 노동3권을 무시하는 과감한 모습으로 돌변한다.

야구는 투수놀음이고 금융업은 사람장사라 했다. 임금을 포함한 보수수준이 합당해야 우수한 인재가 열심히 일해서 연봉의 수십배를 벌기도 하는, 성과가 가능하다. 독과점 업체도 아닌 국책은행들 임금수준을 장기간에 걸쳐 외국계는 물론 다른 은행들보다 낮은 수준으로 몰고 가려하는 것은 있는 인재더러 외국계나 시중은행으로 옮겨가라는 책동으로 보인다.

성과측정을 개선하고 합리적인 성과보상을 해서 공공성을 거스르지 않은 가운데 수익을 많이 내면 정부가 받을 배당도 더 늘어날 텐데 그런 수고를 기울일 의지는 없다. 궁극적으론 국책은행의 주인인 국민들의 손해로 귀결될 것이다.

이러다 국책은행들이 위축돼 역할이 미미해진다면 그때는 누가 시장 최후의 보루 노릇을 하고, 시장의 실패는 누가 보정해 줄 것인가. 공공성에 기초한 자금공급을 시중은행들이 할까, 외국계 은행들이 할까. 지금 공공금융이 따로 있고 민간금융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외국계까지 얼마든지 활개 칠 수 있는 전면개방 자유경쟁 시장이다. 오죽하면 FTA에 따른 영향을 점검할 때 “충분히 개방됐으므로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는 전망으로 분석보고서가 시작되겠는가 말이다.

혹세무민하기에 편하다고 실존하지 않는 ‘공공금융’ ‘정책금융’이라는 가상의 영역을 전제로 한 억지 논리를 언제까지 반복하려는지 이해가 안된다.

케케묵은 논법에 매달릴 때 정작 국내 은행들의 경쟁력은 어떤가. 해외진출 기업이 현지에서 비딩이라도 부칠라치면 국책은행이건 시중은행이건 맥을 못춘다. 금리와 서비스가 훨씬 좋은 외국계 은행들을 택하지 말라며 애국심에 호소하는 마케팅에도 한계가 있다.

우리 기업마저 외면하고 싶다면 심각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제는 차원높은 관심과 정책적 지원 속에 금융산업을 알짜 산업으로 키워야 한다고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할 때다.

그것이 금융사들이 글로벌 진출을 추진하는 시대정신에 부응하는 길이다.

시중은행들에 대한 시선도 모순으로 꼬일 때가 적지 않다. 은행들은 항상 금리상승기엔 대출금리를 곧장 올리고 수신금리는 미적대다 올리며 금리하락기엔 거꾸로 대출금리는 미적대다 내리고 수신금리는 빨리 빨리 내리는 것처럼 곧 잘 묘사된다.

하지만 실상은 지속적인 순이자마진으로 허덕이고 있다. 수수료 현실화는 이야기도 못 꺼낸다. 필요할 때만 앞세우던 시장경제원리는 이 문제에선 증발해서 없어지고 사실상 정치 논리가 압도하면서 더 내리라고 압박하기 일쑤다.

금융산업에 대한 애정이나 문제의식의 진정성이 없으니 빗나간 표상에만 조응하는 꼴이다.

증권업계나 보험업계는 은행들만 대형화 겸업화의 과실을 독점한다며 삿대질해댄다. 외환위기 수습과정에서 금융산업 제도와 질서를 재구성해야했고 금융업 발전단계상 불가피했던 변화가 진행되는 동안 은행이 가장 대형화했고 다른 권역의 전유물이던 비즈니스에 열렬히 손댔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면 금융소비자 후생이 지금보다 좋아졌을 리 없고 보잘 것 없는 수준이나마 이 정도 경쟁력도 갖추지 못했을 일이다.

거꾸로 다른 권역에선 세계 금융시장과 금융산업의 격정적인 변화의 흐름에 복지부동한 나머지 국내 은행권에 대한 경쟁력 뿐 아니라 동종업계 외국계에 대해서도 경쟁력이 뒤지는 결과를 방치했던 게 아닌지 곱씹어 볼 문제다.

한-미 FTA에 이어 한-EU FTA협상이 진행 중이다. EU측은 외국계 은행의 원화 표시 채권 발행, 보험사의 파생금융상품 허용, 방카슈랑스 규제완화, 증권 및 자산운용업 인허가 간소화 등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같은 주장을 들어주지 않는 대신에 다른 분야를 양보하는 게 어떠냐고 도대체 누가 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

보험설계사 실직우려를 전면부각해서 방카슈랑스 도입 취지를 망가뜨리려는 시도나 본연의 투자은행 업무개발에는 별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서 지급결제허용을 핵심쟁점화 한 것은 당장엔 일부 도움이 될지 몰라도 근본적으로 자기 권역의 생존력을 훼손하는 결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외환위기 이후 겸업화 대형화 정책이 지속된 지 10년이 지났다. 그동안 대한민국 금융산업의 효율성 수익성 경쟁력은 얼마나 좋아졌을까? 금융업을 둘러싼 논쟁의 수준이 요즘 같을진대 무슨 국제경쟁력이란 말인가?



정희윤 기자 simmoo@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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