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우리나라 사람들은 술을 무척 좋아한다. 한국인의 성격유형을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에서는 구강가학적(口腔加虐的: oralsadistic)이라고 하는데, 이런 성격유형의 특성은 입을 통해서 쾌락을 얻으려하는 구순기적 쾌락추구의 경향이 있다. 그래서 술을 많이 마시고 담배를 많이 피운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의 남성세계에서 술을 마시지 못하는 이는 인간관계나 조직생활에 애로를 겪기 십상이다. 요즘에는 여성들까지 술맛에 푹 빠져서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술이란 술술 잘 들어간다는 뜻에서 ‘술’이고 안주는 술이 아니라는 뜻에서 ‘안주’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지만, 술을 마셔서 일이 술술 잘 풀리는 경우가 있는 반면에 술술 추락하는 수도 있다는 점을 확실히 염두에 두고 술자리에 임해야 할 것이다.
고쳐야 할 술 문화
나는 술을 즐긴다. 겉보기로는 술을 못할 것 같다는데, 집에서 혼자서도 술을 마실 만큼 애주가이다. 그런 내게 술을 원 없이(?)마실 기회가 왔었다. 바로 농협 강원지역본부장 시절과 강원도 정무부지사를 지내던 때이다. 아는 이는 알지만, 무려 100여명과 대작을 한 기록을 가지고 있을 만큼 술을 많이 마셨다.
술 예찬론을 펴거나 술 실력을 자랑하려는 게 아니다. 술을 많이 마신 게 후회될 뿐 아니라, 천박한 우리네의 술 문화를 짚어보며 연말을 보내자는 의미에서 술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다.
우리네의 술 문화는 문제가 많다. ‘문화’라기보다 ‘버르장머리’라고 하는 게 더 적절할 것 같다. 그 중의 으뜸은 술을 강권하는 것이다. 사람마다 체질이 다르고 주량이 다르건만 술자리에서는 무조건 평준화다. 그것도 가장 술이 센 사람을 기준으로 한다는 데 문제가 있다. 만약 힘 센 자리에 있는 사람이 주량까지 센 경우, 그 밑을 맴도는 사람은 정말 죽을 맛이 된다.
대화를 하기 위한 분위기 메이커로서 술을 대하는 게 아니라 오직 취하기 위해서 술을 마시는 풍토다. 맥주 한잔을 놓고 한 시간 이상 대화를 나누는 장면도 외국에서 봤는데 우리네는 일단 한잔을 다 들이키고 나서 시작이다. 기분 좋게 적당히 마시는 게 아니라 완전히 만취가 돼서 더 이상 마실 수 없을 정도가 돼야 술자리를 끝낸다. 2, 3차례 자리를 옮기고 ‘폭탄’을 몇 차례 투하한 후 인사불성이 돼야 직성이 풀린다.
그뿐인가. 요즘처럼 별별 세균이 기승을 부리는 판에 아직도 술잔을 돌린다. 잔 언저리에 안주 국물이 묻고, 그것을 깨끗이 씻어준다고 물 컵에다 술잔을 휘휘 헹구어서 권하는 몰상식한 사람까지 있다. 이쯤 되면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의 세균을 한데 모아서 권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처럼 주법이나 매너가 형편없는 게 우리의 술자리이다.
제대로 마시자
이제 술을 좀 삼가는 게 어떨까? 그 정도 마셨으면 됐다. 나 역시 한 달 전부터 다부진 결심으로 절주하고 있다. 술을 많이 마시는 게 왠지 추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마시더라도 제대로 마셨으면 한다. 강권하지 말고 잔을 돌리지 말자. 북한에 갔을 때 인상적이었던 것의 하나가 자작문화와 첨잔문화였다. 어느 기업에서는 사장이 엄명을 내려 ‘낮술 안 마시기’ ‘술잔 안 돌리기’ ‘주량대로 마시기’를 실천해서 사내 분위기를 바꾸었다고 한다.
술을 강제로 권하는 사람은 ‘나쁜 놈’이다. ‘주사파’(술로 사람을 파멸시키는 사람)다. 자기 건강이나 해칠 일이지 왜 남의 건강까지 망가뜨리려 하는가. 그런 사람은 ‘심보 더러운 놈’이다. 이렇게까지 험한 표현을 쓰는 이유는 잘못된 술 문화에 확실히 쐐기를 박고 싶어서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술로 인해서 결정적으로 건강이 훼손될 수 있다는 점이다. 酒님(술)을 지나치게 가까이 하지 마시라. 그러다가 정말 주님의 나라(하늘나라)에 일찍 가게 된다.
이번 망년회부터 새로운 음주문화가 형성되기를 기대해 본다.
관리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