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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인탐구] (3) LA 한미은행 유재환 은행장

박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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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03-07-17 16:27

BOA 성공 모델 삼아 지역은행 한계 극복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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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은행과 업무제휴 적극 추진

“한미은행은 국내 은행의 美 진출 교두보”

한국인 최초로 ‘BOA 독수리 휘장’ 수상



미국 LA에 위치한 한미은행(Hanmi Bank)을 아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드물다. 금융인 중에서도 LA 한미은행은 국내에 있는 한미은행의 현지법인 정도로 오해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의 한미은행(Koram Bank)과 이름이 같다는 이유도 있지만 현지 은행에 대한 관심이 그만큼 적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새로 LA 한미은행장에 선임된 유재환 행장은 “규모는 작지만 LA 한미은행은 BOA만큼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춘 은행”이라며 “BOA도 처음에는 이탈리아 교포들이 만든 작은 은행에 불과했지만 결국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은행 중의 하나로 성장하지 않았냐”며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공교롭게도 유 행장은 한미은행 출신인 동시에 한미은행 시절 LA지점장을 지낸 경력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이번에 유 행장에 선임된 배경에는 LA지점장 시절 때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 것이 결정적인 원인으로 작용했다.

유 행장은 “은행장 선발을 위한 최종 인터뷰 때 한미은행 시절 LA지점장을 맡았다는 것이 인사 위원회 관계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준 것 같다”고 말했다. 유 행장을 잘 안다고 말하는 지인들이 유 행장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BOA시절 노조 위원장을 지냈다는 것이다.

그것도 외국 은행에 근무하는 한국인으로서의 노조 위원장이 아닌 BOA의 노사 관계를 전면 개선시킨 위원장으로써 유 행장을 기억한다.

유 행장은 당시 BOA의 노조위원장을 맡으며 BOA 사상 처음으로 단체협약을 이뤄냈다. 그리고 BOA에서 체결한 단체협약은 나중에 한미은행의 노사관계에서도 그대로 적용되기도 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였을까. 남들은 4~5년이 걸리던 과장 승진을 1년만에 이뤄냈고 BOA에 속한 한국인 중에는 처음으로 본사의 전문인력양성 과정을 거치게 됐다. 지금까지도 한국인 중에 BOA의 전문인력양성 과정을 경험한 직원은 한명도 없는 실정이다.

나중의 이야기지만 유 행장은 결국 BOA 설립 이래 최초로 최고의 영업실적을 올린 직원에게 부여되는 ‘Eagle Lapel Pin’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얻기도 했다.

유 행장은 금융계에서 영어 구사능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이때 미국에서 공부한 것이 큰 도움이 됐다.

유 행장은 뉴욕의 맨하탄에 위치한 BOA사에서 근무를 했는데 당시만해도 그렇게 영어를 잘 하는 편은 아니었다. 그래서 본사에서 가진 첫번째 인터뷰 때 영어가 부족하다고 양해(?)를 구했지만 용납되지 않았다고 한다.

프로들만이 살아남는 뉴욕의 맨하탄에서 언어가 안된다는 것은 변명이 될 수 없다고 인터뷰 담당자는 단호하게 말했다는 것. 이후부터 유 행장은 다시 시작한다는 심정으로 영어에 매달렸고 단기간내에 의사소통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 정도로 능숙하게 됐다.

유 행장은 “MBA에서는 배울 수 없는 살아있는 경영 시스템을 배웠다는 점에서 맨하탄에서의 업무 경력이 그의 인생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고 말했다.

미국에서의 전문가 연수를 마치고 귀국한 후에는 외자를 취급하는 기업부분을 담당했다. 그리고 이때부터가 국내의 주요 금융인들과 인맥을 맺게 되는 계기가 됐다. 당시만해도 국내 기업의 외자유치는 대부분 BOA를 통해 이뤄졌기 때문이다.

한미은행으로 자리를 옮기게 된 계기는 시애틀퍼스트뱅크의 아시아 담당자를 지내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한미은행의 전무로 있었던 김진만 前 한빛은행장이 제의를 했다. 당시 한미은행은 세를 확장하던 때라 유 행장과 같은 전문가가 절실하던 참이었다.

마침 BOA에서도 조기퇴직제도가 도입되던 때라서 직장을 이동하기에는 적기였던 것이다. 그리고 결국 한미은행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고 홍세표 행장 시절 LA지점장을 맡게 됐다.

결국 유 행장은 BOA시절에는 미국 본사에서 근무했고 국내 은행에서는 외국 지점장을 지낸 독특한 경력을 보유하게 된 것이다.

한편 은행장으로서 유 행장은 해야 할 일이 많다고 말했다. 유 행장은 LA한미은행을 ‘작은 BOA’로 만드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라고 밝혔다. 유 행장은 “BOA도 태생은 뱅크오브이태리였다”며 “BOA를 철저하게 모델로 삼아 임기내에 한미은행이 지역은행을 넘어서는 대형은행으로 성장하는 발판을 마련하겠다”라는 의지를 피력했다.

이와 관련 국내 은행과의 적극적인 제휴 방안도 모색하고 있다. 본국 은행들의 규모가 세계적으로 성장했기 때문에 미국 시장에 진출해 시장을 확대할 수 있는 여건은 마련됐다는 설명이다. 본국 은행의 경우에도 미국에서 조속히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LA한미은행과 같은 현지 은행을 전략적으로 이용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유 행장의 일 욕심은 대학시절부터 자연스럽게 몸에 배인 것이다. 유 행장은 대학 1~2학년때 여한 없이 놀았고 학생 운동에도 열심히 참여했지만 공부는 소홀했다고 기억한다.

현재 수협의 신용사업부를 맡고 있는 장병구 대표이사와 표준협회 유영상닫기유영상기사 모아보기 부회장 등과 학생운동에 열중하다가 3학년 때부터 공부에 매진했다.

SK그룹과의 각별한 관계는 이때 형성된 것이다. 당시 선경 그룹의 창업주인 최종건씨 댁에 숙식하며 과외 선생을 한 것이 인연이 돼 SK 텔레시스 고문을 맡게 된 것이다.

대학 시절 유 행장의 최종 목표는 IMF였는데 실제로 IMF에 응시해 최종 선발 과정에서 하이닉스 박종섭 사장과 유 행장 두명이 경합을 벌였지만 둘 다 떨어지는 아픔을 겪었다.

유 행장은 “1학년때 조순 교수로부터 처음 강의를 들었는데 서울대 최고의 명강으로 손꼽혔다”며 “특히 조교수는 한국에서 안주하면 안되고 해외로 진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세계 무대로 진출해야 한다는 인식을 처음으로 갖게 됐다”고 말했다.

김세원 교수와의 만남도 세계로 진출해야 한다는 유 행장의 의지를 강화시킨 계기가 됐다. 당시만 해도 유학 내지 학위 취득은 철저하게 미국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던 터라 프랑스에서 학위를 받은 김교수는 유 행장에게 또 다른 충격이었다.

서울고 당시 양주석 선생은 특히 잊지 못할 은사라고 유 행장은 말한다. “양선생은 인생이 무엇이냐, 사람이 왜 사느냐는 화두를 던졌는데 나에게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며 “결국 불교에 심취해 종로에 위치한 대각사의 룸비니 학생회에 참여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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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준식 기자 impark@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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