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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의 위기를 극복하자

관리자 기자

webmaster@fntimes.com

기사입력 : 2003-04-06 13:04

이재웅 부총장, 성균관대학교 경제학부

우리나라 법원은 몇 년 전 대통령후보자의 선거공약은 사법(私法)상의 의무가 아닌 도덕적 정치적 의무에 불과하다고 판시했다. 도덕적 해이가 극심한 우리 사회에서 정치인의 약속은 믿을 필요가 없다는 것 같다.

신뢰의 문제는 정치권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외국사람들에게 한국을 소개하는 어느 안내 책자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한국사람들은 계약을 잘 지키지 않기 때문에 거래할 때 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상황이 불리하게 바뀌면 계약을 이행하지 않고 억지를 부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당초부터 약속을 지킬 뜻이 없는 것도 곤란하지만 약속을 지킬 능력이 없는 것도 문제이다.

기업이 상환능력을 훨씬 넘는 거액의 빚을 지는 것은 신뢰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계약을 이행하고 약속을 지키는 것이 바로 신용이며 신뢰의 기본이다.

프란시스 후꾸야마는 신뢰(trust)는 자본주의 경제의 하부구조(인프라스트럭춰)로서 이것이 결여된 사회는 경제발전을 저해한다고 주장했다. 서구 선진국에 비해서 한국 중국 동남아 국가들은 대체로 신뢰가 결여된 사회라고 한다. 따라서 이 지역에서 그동안 비약적인 경제성장이 있었지만 앞으로 더 이상 경제의 고도성장은 어렵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신뢰가 부족하기 때문에 금융시장이 낙후되고 경제성장에 필요한 대규모 자본조달이 어렵다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기 때문에 대기업도 오너의 가족경영체제를 벗어나지 못한다. 또한 열악한 기업지배구조 때문에 경영의 투명성이 결여되고 소액주주들의 권익이 보호되지 못한다. 지난 15년동안 국내 주가지수는 항상 500, 600, 700, 500, 600, 700을 반복하고 있는 것도 이런 때문이다. 그동안 한국경제가 발전했고 기업은 성장했는데 주가지수는 여전히 제자리 걸음이다. 이것이 한국경제의 신뢰 수준이며 발전의 한계인 것 같다.

한국경제가 외환·금융위기를 맞은 것도 국내외 금융시장에서 우리 기업 및 금융기관들의 신뢰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투자자는 기업을 믿지 않는다. 금융기관도 차입자를 믿지 못한다. 정부의 정책도 믿을 수 없다. 이같은 불신이 금융시스템을 파괴하는 것이 금융위기이다. 특히 외국인투자자들도 한국의 투자환경을 주시하고 있다. 한국경제가 위기를 맞을 때마다 그들은 투자자금을 회수했다. 그들이 자본을 회수할 때마다 우리는 위기를 맞았다.

최근에는 외국금융기관들이 국내 기업 및 금융기관에 대출해준 자금의 만기가 돌아오면 기한연장을 기피하고 자금을 회수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한국 경제의 대내외적 불안과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신뢰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우리 경제는 소비, 투자, 수출이 모두 부진해서 침체에 빠져있다. 게다가 가계대출 및 신용카드의 부실화, SK글로벌 등의 기업회계 분식으로 신뢰의 문제가 금융경색을 초래하고 있다. 이라크 전쟁과 북핵문제 그리고 새 정부의 불확실한 정책 방향도 불안요인으로 작용하여 금융위기 재발 우려를 낳고 있다. 최근 종합주가지수는 연일 떨어지고 원·달러 환율은 계속 오르고 있다. 외국인투자자들의 동향도 심상치 않다. 국제금융시장에서는 한국 채권에 대한 위협 가산 금리가 크게 오르고 있다.

그래도 아직 우리는 외환보유고가 넉넉하기 때문에 98년 외환위기 때와는 다르다는 주장만 되풀이 한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국가리스크는 태국보다 높다. 국제적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Moodys)도 한국의 신용등급을 낮추었다.

현재 우리나라의 외환보유고는 약 1240억달러이지만 총외채가 1323억달러, 그중에서 단기외채가 553억달러이다. 게다가 당장 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외국인이 보유한 국내 증권이 약 750억달러 가량 된다. 이렇게 볼때 위기시에 외환유동성 문제가 생길 가능성도 적지 않다. 우리 경제는 현재 상당한 외환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하겠다. 우리가 위기를 벗어나는 길은 대내외로부터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다. 이라크전쟁이나 북핵문제 등 우리가 통제하기 어려운 문제도 없지 않지만 그런 경우에도 정부의 대응이 불신이나 불안을 진정시키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새 정부의 경제정책도 아직 불확실하고 불분명한 부분이 적지 않은데 이를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야 할 것이다.



관리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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