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이번 회계제도 개혁안을 촉발시킨 구체적 계기는 작년 7월에 미국이 제정한 Sarbanes-Oxley Act였다고 짐작된다. 그동안 나름대로 엄격한 회계제도를 보유하고 있다고 자부하던 미국은 엔론 사태 이후 기업의 회계부정에 대해 보다 강력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느꼈고, 그런 시대적 요구가 Sarbanes-Oxley Act라는 법률로 결실을 보게 된 것이었다.
미국 법은 회계정보의 생산과 관련하여 그 진실성을 CEO가 인증하도록 하고 내부 준법감시인의 부정고발 의무를 명시하고 외부감사인의 윤리규정과 의무를 강화하고, 회계사를 감독하기 위해 SEC내에 회계감독위원회를 설치하는 것을 그 골자로 하고 있다. 이번에 공청회에 부쳐진 우리나라의 시안도 대체로 이런 방향으로 회계제도를 개선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그러나 몇 가지 점에서 중요한 부분이 누락되어 있다.
첫째, 분식회계나 허위공시 등 소위 부실표시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처방은 손해배상 소송이다.
따라서 부실표시에 따라 손해를 보게 된 피해자들이 잘못을 지시 또는 묵인한 기업의 관련 담당자나 회계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손쉽게 제기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하는 것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다. 우리 나라 역시 증권부문 집단소송제를 도입한다고 하면서 이런 문제의식에 일부 눈을 떠가고 있다.
그러나 현재 운위되고 있는 집단소송제는 시세조종에 관해서는 폭넓게 집단소송의 문호를 개방해 놓고 있지만, 분식회계나 허위공시 등 부실표시에 관해서는 소송의 대상을 크게 제한하고 있다. 이것은 매우 잘못된 것이다. 통상 가해자와 피해자의 개념규정이 모호한 시세조종 사건과는 달리, 회계법인의 주의의무 태만에 기인한 손해배상 문제는 법적인 논리구성도 정연하고 경제적인 규율효과도 지대하므로 집단소송을 주된 규율수단으로 활용해야 한다.
둘째, 기업내 내부통제제도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준법감시인이나 기타 감사기능을 수행하는 대리인의 윤리규정과 법적 의무를 명확히 규율할 필요가 있다.
미국 법의 경우 회사를 대리하는 법률가가 회사내에서 비윤리적 행위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발견한 경우 이를 시정하도록 CEO에게 권고하고 그래도 잘못이 시정되지 않는 경우에는 이사회내의 감사위원회에 이를 고지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즉 변호사의 고객보호의무 때문에 사직당국에 고발하도록까지는 못했지만 내부적으로는 충분한 경고신호를 발송해야 할 의무를 지우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정부의 시안에는 단순히 내부회계관리제도의 구축을 의무화한다고만 되어 있을 뿐 구체적으로 내부자의 의무나 이를 감시해야 할 대리인의 의무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를 확정하지 않아 자칫하면 이 조항이 빛좋은 개살구가 될 위험이 크다.
마지막으로 감독당국의 역할이 분명치 않다. 이론적으로 볼 때 만일 회계의 투명성 확보만을 생각한다면, 또 감독당국의 역량과 자원이 충분하다면, 감독당국이 회계법인과 기업 모두를 직접 감독하는 문제도 상정해 볼 수는 있다.
그러나 이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또 어떤 측면에서는 바람직하지도 않다. 특히 민간기업의 회계정보의 진실성 여부를 금융감독당국이 직접 검토하는 것은 자칫 시장경제체제에 대한 정부의 지나친 개입을 자초할 위험도 존재한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감독당국은 기업의 회계정보에 대한 일차적 감시기능을 담당하는 외부감사인(즉 회계사와 회계법인)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감독하되, 기업의 잘못은 원칙적으로 회계사가 적발하고 문제가 생기면 시장참가자들이 집단소송으로 해결하도록 공간을 만들어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부의 역할은 물고기를 입에 넣어 주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질서있게 그물을 쳐서 스스로 물고기를 낚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성인 교수(홍익대학교 경제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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