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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규 컬럼] 사라짐의 美學

관리자 기자

webmaster@fntimes.com

기사입력 : 2002-12-21 20:22

포보스의 ‘100대 기업’ 조사 발표는 1917년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이 조사작업을 개시한 이후 70년이 지난 1987년을 기준으로 해서 볼 때 1917년 포보스에 의해 100대 기업으로 뽑힌 기업 가운데 70년 넘게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업체는 39개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그 기간 동안에 무려 61개 기업이 사라진 것이다.

또 살아 남은 기업으로서 1917년 처음 선정된 이후 1987년까지 계속해서 100대 기업에 끼어 있는 업체는 39개 가운데 절반인 18개에 불과했으며, 그나마 이들은 당시의 시장 수익률보다 20%이하로 경영되고 있었다고 딕 포스터와 사라 캐플런은 그들의 공저 ‘창조적 파괴’에서 밝히고 있다. 더욱이 이 18개 기업가운데 당시의 시장 수익률과 비슷하거나 이 보다 높은 선을 유지하는 업체는 GE와 Kodak이었는데 이들 둘 가운데 Kodak은 100대 기업명단에서 이미 사라졌고, 지금은 유일하게 GE만이 살아 남아있다고 한다. 포보스가 이 조사작업을 벌인지 85년이 지나는 동안 오직 한 개 기업만이 생잔(生殘)해 있는 것이다.

기업의 세계에서 살아 남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증명하는 통계의 하나다. 우리 속담에도 3대를 잇는 부자가 없다는 말이 있지만 이런 양상은 동서양이 비슷한 모양이다. 우리 나라에서도 이 같은 예를 얼마든지 들 수 있다. 모든 것이 순환하고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뒤집어 보면 우주의 모든 만물은 살아있으면서 변화하고 바뀌어 가고 있다는 하나의 증좌(證左)가 아닌가 싶다.



사라짐에도 때가 있는 법



그러나 좀더 깊이 살펴보면 모든 사라짐에는 원인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동시에 거기엔 불변의 질서가 있다.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인과(因果)의 관계를 분명히 하는 원리가 내재돼 있다. 때문에 사라짐의 아름다움과 추함도 숨겨져 있는 것이다. 사람들의 사라짐만이 아니다. 권력이나 기업의 세계 등도 마찬가지다.

대통령 선거가 끝난 지금 우리 사회는 앞으로 무수하고 다종다양한 변화를 경험하게 되지 않을까 예상된다. 그 가운데 가장 큰 관심을 끌 것은 사람들의 사라짐일 것이다. 지금까지 일반대중의 시선을 끌어온 인물, 인구에 자주 회자돼온 인걸들 세계에 남아있음과 사라짐의 쌍곡선이 이어질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은 내다보고 있다.

잔류하게 됐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다. 동시에 사라지는 것이 불행이고 비극이라고 단정하는 것도 어리석은 판단이다. 잔류하게 된 것이 단순히 사라져야 할 시간의 찰나적 늦춤이 될 바에야 차라리 시간이 됐을 때 떠나는 것이 당당하고 순리에 맞게 처신하는 모습일 것이다. 떠나야 할 시간을 놓친 불쌍한 군상들을 우리는 얼마나 많이 보아왔는가.

겨울추위의 매서움이 가시기 전에 피는 꽃 가운데 우리 민족이 가장 사랑하는 꽃은 아마도 동백꽃이 으뜸일 것이다. 이 꽃의 마지막 모습을 눈여겨보면 예부터 우리 조상들이 왜 이 꽃을 사랑해 왔는가를 어렴풋이 나마 짐작케 한다.

피어있는 동안 뽐내온 진홍색 빛깔이 잔설 속에 남아 있는 추위와 어우러져 아름답게 보이기 때문만이 아니다. 꽃송이 자체가 여러 가지 효능이 있는 생약재로 쓰이고 그 씨앗이 다양한 용도로 쓰이는, 말 그대로 버릴 것이 없는 꽃이기 때문도 아니다. 꽃의 사라지는 마지막 모습이 장렬하고 깨끗하기 때문이다. 즉 대부분의 꽃들은 잎이 질 때 처음엔 시들다가 한 닢씩 꽃잎을 떨어뜨린다. 꽃의 향기가 사라지고 꽃잎의 색깔도 변해 원래의 아름다움은 전혀 찾아볼 수 없이 한참동안 흉한 몰골을 드러내다가 사라진다.



동백꽃의 기품 배워야



그러나 동백꽃은 질 때도 처음의 아름다움과 기품을 간직한 채 조용히 사라진다. 꽃잎이 하나씩 떨어지면서 천천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필 때의 싱그러운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마치 날카로운 칼날에 베인 듯이 진홍색 꽃송이 전체가 한꺼번에 떨어지는 것이다. 장렬한 최후를 맞이하는 장면 같다.

이번 대통령 선거는 단순한 투표행위가 아닌 대 변혁의 예고편 같은 여운을 남겼다. 세대간·계층간의 서로 다름이 여과없이 표출되었고 완연하게 갈라지는 계기가 됐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 같은 변화는 사회구석 구석에서 새로 바뀐 주역들에 의해 앞으로 조용하게 그러나 꾸준히 추진되면서 역사발전의 동기를 부여하게 될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은 전망하고 있다.

사라짐을 두려워하거나 창피한 것으로 여기는 것은 리더의 자세가 아니다. 오히려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는 것이며 다시 태어남의 약속을 보장받는 것이기도 하다. 사라짐이란 생명의 단멸(斷滅)이 아니라 본래자리로 회귀(回歸)하는 것이란 말이 있다. 그래서 사라짐엔 때가 중요하다고 옛 선현들은 강조해온 것이다.

<주필>



관리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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