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은행소유한도에 대한 찬반논의는 은행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관치금융을 청산하고 책임경영체제의 확립이 필요하다는 데는 의견이 일치했지만 방법론에 대해서는 주장을 달리해 왔다. 은행 주인찾아주기가 합의된 방법론으로 제시되었지만 책임경영체제를 이끌어 갈 주체로 재벌을 허용하는 가가 논쟁의 핵심이었다. 재벌에 의한 사금고화 가능성을 줄이는 동시에 내년까지의 은행민영화 정책 시행과 공적자금 조기회수 등의 현실적 문제로 인해 이번의 절충안이 제시된 것으로 보인다.
시행해 보지 않은 제도에 대해 사전적으로 우열을 판단하는 것은 어렵지만 우리의 현실을 감안하면 재벌의 은행소유에 대한 반대논리가 더 정당하다고 판단된다. 우선 은행이 재벌계열에 소속될 때 은행주인찾기의 궁극적인 목표인 은행경영의 독립성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이 그 이유이다. 기업의 경영형태는 주인의 의사를 반영할 수 밖에 없다. 우리의 현실에서 재벌그룹은 총수 1인 중심의 경영체제와 계열사간 인사교환이 당연시 되고 있다. 그룹전체의 이익을 우선하는 의사결정체계 하에서 은행은 다시 한번 독립적인 의사결정주체가 아니라 자금의 중개소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과거에는 공공성이라는 미명하에 정부 및 정치권에 희생당하던 은행이 재벌소유로 바뀔때 은행자체의 독자적인 결정보다는 다른 관계기업과의 연계선상에서 의사결정이 내려져 또 다른 자원배분의 비효율성, 즉 ‘財治金融’으로 연결 될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이미 재벌의 소유가 된 제 2금융권에서 나타났으며, 위기상황의 대우그룹이 은행을 소유했더라면 어떠했을 건가를 상상해보면 쉽게 이해 될 수 있다. 특히 이번의 개정안에서 하위재벌에게는 은행 소유와 경영을 허용하겠다는 내용은 1인 지배체재의 문제점이 하위재벌로 갈수록 더 심해진다는 사실을 망각한 잘못된 방안이다.
개정안은 은행의 사금고화를 방지하기 위해 각종 규제감독을 강화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사기업이 강력한 경제적인 유인을 가지고 회피를 하고자 할 때 특정 기관이 이를 감독하는 것은 동서고금을 통해 실효성이 적다는 것이 증명되었고 그에 따른 사회적 비용이 너무 크다. 특히 우리 감독기관의 정치적 중립성이 취약하고 감독 능력이 부족한 점을 고려하면 감독 실효성이 의심된다.
좀 더 원칙적인 과제는 왜곡된 현재의 경제체제를 바로 새우기 위해 금융과 산업의 관계에 대한 고려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근본적인 문제점은 금융이 산업의 시녀노릇을 해왔다는 것이고 이제 산업의 잘못될 수 있는 판단을 선택적인 신용공여기능을 통해 견제하고 균형을 이룰 수 있는 관계의 정립이 건전한 시장경제의 확립을 위해 필요한 시점이다. 은행은 자신을 소유하고 경영하는 산업자본에 대해 감시기능을 제대로 발휘하기를 기대 할 수 없다. 바로 이 이유 때문에 선진국들에서도 산업과 금융은 엄격히 분리하는 원칙을 지켜오고 있다. 재벌의 은행소유는 견제와 균형이 아니라 은행을 정부대신 재벌의 시녀로 바꾸는 결과로 연결 될 것이다.
은행주인찾아주기는 재벌을 1대 대주주로 만드는 것을 의미해서는 안된다. 은행의 책임경영체제는 소유구조에 목적을 두기보다는 건전한 지배구조의 확립에 근거해야 한다. 경영자가 독립적이고 책임있는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환경과 동기를 제공해 주는 것이 책임경영체제의 확립을 위한 관건이 된다. 꼭 대주주가 있어야만 책임경영이 가능한가에 대한 해답은 외국의 사례를 보더라도 회의적이며, 우리 은행의 과제는 은행 자체의 목적을 위한 독립적인 경영을 할 수 있는 여건의 조성이다.
재벌이 자기혁신을 통해 신뢰를 회복하고 사금고화를 억제할 수 있는 감시장치가 완벽하다는 확신이 있기 전에 재벌의 은행 소유를 허용하는 것은 공적자금회수라는 단기적 목적을 위해 1960년대 관치금융체제로의 전환이래 우리나라 경제체제를 또 다시 왜곡시키는 조치이다.
지금 시점에서 은행소유한도를 들먹이는 것보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금융위기 이후 은행에서의 책임경영체제의 확립은 전반적인 수익성위주의 사고방식 정착과 관련 제도의 도입으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사외이사중심의 이사회 운영, 은행장선임, 성과중심의 보상체계, 공시체계강화, 소액주주의 감시 등 시장위주의 운영방식이 완벽하지는 않지만 급속도로 개선되고 있다. 아직도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직간접적인 정부의 간섭이다. 은행 소유한도를 완화하는 것보다는 실질적으로 간섭을 줄이고 기존의 제도 활성화에 노력하는 것이 부분적인 부작용이 있더라도 장기적으로 건전한 금융체제 확립을 위한 정부의 역할일 것이다. 공적자금회수도 시간을 갖고 국민주 형태의 회수방안을 고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官治金融의 폐해를 줄이기 위해 財治金融의 기반을 제공하는 것은 피해야 하며, 금융은 실물을 견제하고 상호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독립적인 산업으로 육성되어야 한다.
관리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