옵션 등 상품 개발력 제고 절실
그동안 증권업계가 수차례 건의했던 장외파생상품이 조만간 허용될 예정이다. 상품개발의 다양성이 높아지고 수익원 다변화와 선진 금융기법도입의 효과를 볼 수 있어 긍정적인 조치라는게 증권업계의 일반적 시각이다. 그러나 업무수행능력차원에서 국내 증권업계의 실상은 그렇지 못해 우려섞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정부가 고민끝에 허용하기로 방침을 정한 장외파생상품이 아직 국내에서 활성화되기에는 시기상조라는게 그 첫번째 이유다. 우선 다양한 파생상품을 활용해 상품을 구성할 전문 인력이 없는데다 설사 상품을 만들더라도 파생상품 기본 기능인 리스크헤지를 정확히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느냐는 점에서 다소 회의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다. 자칫 큰 손실을 볼 경우 불똥은 고스란히 투자자들이 받게 된다.
더구나 파생상품에 대한 프리이싱과 가치 결정 등을 국내 증권사가 제대로 산출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 기껏해야 거래소에 상장돼 있는 주가지수옵션과 선물 등을 활용했을 뿐인 증권사들이 다양한 옵션 기능을 붙여 투자자들의 시선을 붙잡기란 사실상 지금의 형편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인식이다.
이에 따라 증권업계는 정부가 장외파생상품을 허용하기로 한 것은 바람직하지만 이 분야에 오랜 노하우와 경험이 풍부한 외국계 증권사와 투신사가 관련 시장을 독식할 것이라는 데에 이견을 달지 않고 있다.
그만큼 파생상품에 대한 기본 인프라가 전혀 마련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제도를 도입하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느냐는 시각이다.
그렇지만 정부도 고민은 있다. 증권사의 수익구조가 점차 한계에 달하고 있고 새로운 수익원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상품의 다양성을 확보하고 이에 대한 리스크 관리와 자산관리 등에 주력해야 한다는 현실적 절박함을 마냥 무시할 수 만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는 리스크관리와 상품 개발 능력 등이 우수한 대형증권사에만 이를 허용할 방침이라고 밝힌 것이 그 이유다.
그나마 대형증권사들이 이 같은 파생상품을 활용할 역량이 된다는 판단이다. 하지만 현실은 조금 다르다. 대형증권사들도 제도 도입을 환영하는 분위기는 지배적이지만 실상은 이에 대한 준비가 전혀 없어 곤혹스럽기는 정부와 마찬가지다,
대우증권 관계자는 “옵션을 붙여 상품을 만든다해도 이에 대한 헤지 능력은 기본인데 과연 국내 증권사들이 이 같은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파생상품등에 대한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아 인적 자원이 태부족인 상황에서는 국내에 진출해 있는 외국계 증권사들이 시장을 싹쓸이 할 가능성도 매우 높다”며 토로했다.
다른 증권사 관계자도 “기본 인프라가 전혀 마련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제도가 도입될 경우 외국계 증권사들은 국내 상품과 외국 상품을 접붙여 국내 지점을 활용하는 등 다양한 마케팅을 펼칠 수 있기 때문에 외국사의 독무대가 우려된다”고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또 하나의 걸림돌은 파생상품은 현재 증권사들이 취급할 수 있는 유가증권으로 간주되지 않아 빠른 시일내에 유권해석 등 결정이 내려져야 하고 증권거래법 시행령 개정과 감독규정 개정등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는 점이다.
한편 투신사 또한 장외파생상품을 편입할 수 있는 펀드를 구성해 운용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만큼 이에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물론 관련 펀드의 개발은 무척 힘들지만 고객 니즈에 맞는 맞춤형 펀드를 만들 수 있어 다양한 운용기법의 활용도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투신업계는 보고 있다. 모 투신사 사장은 “상품에 가격을 매겨서 판매하는 것이 투자은행 업무의 핵심”이라며 “그러나 평가 능력이 떨어지는 우리의 현실에서는 이 같은 상품 구성이 거의 불가능한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국내 증권사들은 지금이라도 투자은행업무의 특화와 인적 자원에 대한 대규모 투자등 상당한 준비를 통해 외국계 증권사와의 한 판 경쟁에 임해야 한다는 게 관련업계의 시각이다.
김태경 기자 ktitk@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