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도’ ‘전문화’등 은행산업 계층화 바람직
회사채 신속인수제 시장원리 훼손 아닌 보완조치
이근영 금융감독위원회 위원장은 창간 9주년을 맞은 본지와 단독 인터뷰를 갖고 금융기관들의 구조조정, 기업 자금난 해소등 현재 우리 경제와 금융산업이 안고 있는 주요 현안들에 대해 소상하게 의견을 피력했다. 李위원장이 밝힌 내용을 요약 정리했다.
<편집자>
-지난해 우리나라 은행산업은 큰 변화가 많았습니다. 국민ㆍ주택은행이 합병을 선언하고 한빛, 평화, 광주, 경남은행은 지주회사로 결합하게 됐습니다. 그러나 한미ㆍ하나은행의 합병이나 외환은행의 지주회사 합류 등은 대주주나 경영진의 반대로 흐지부지되고 말았습니다. 은행 구조조정과 관련 이제 추가 합병이나 지주회사 편입 등의 필요성이나 가능성은 없는지, 아니면 지속적인 구조조정이 필요한 것인지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 정부 주도의 금융지주회사 출범과 국민ㆍ주택은행간 통합은 금융산업 발전에 획기적인 전기가 될 수 있습니다. 다만 모든 은행이 대형화될 필요는 없으며 전문화 또는 틈새시장에서 내실 있는 비교우위 전략을 추구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대형화와 겸업화 그리고 국제화를 추구하는 선도은행과 내실있는 전문화은행 등으로 계층화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앞으로 추가적인 은행통합 또는 지주회사 편입문제는 각 은행의 여건과 경영전략에 따라 스스로 선택할 사항입니다. 감독당국이 은행합병 등을 위한 특별한 시나리오를 갖고 있는 것은 없습니다. 다만 정부는 우량 건전은행에 대해서는 겸업화 또는 신규업무 취급 등의 면에서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등 대형화와 전문화를 적극 지원하고 경쟁력 취약 등으로 부실화된 은행에 대해서는 적기 시정조치에 따라 상시 구조조정해 나갈 것입니다.
-정부가 주도하는 금융지주회사에 한빛, 평화, 광주, 경남은행 등이 편입되고 내년 6월에는 사업부제로 개편될 예정이지만 금융계에서는 내년 4월의 자치단체장 선거 등 정치적인 부담과 해당 은행들의 반대로 평화, 광주, 경남은행은 계속 독자 생존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습니다. 이에 대한 금감위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아울러 서울은행 처리와 관련 상반기중 매각이 안될 경우 정부 지주회사에 편입시키겠다는 데 대해 시간이 촉박하다는 의견이 많은데 매각 시한을 연말이나 내년으로 미룰 생각은 없는지요.
▶ 금융지주회사의 출범은 관련 은행의 경영진과 주주 뿐만 아니라 직원과 국민들도 인식을 같이 하고 있으며 특히 금번 지주회사 출범은 노사합의에 의해 추진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정치적인 이유로 금융지주회사의 출범이 지연되거나 후퇴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으로 봅니다.
한빛은행을 주축으로 하는 금융지주회사는 공적자금 투입을 통해 건전화된 은행과 종금사, 보험회사 등이 지주회사 산하에 편입될 예정이므로 금융겸업화의 시너지 효과가 충분히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서울은행은 우선 현재 진행중인 구조개선 작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해 은행의 가치를 극대화한 후 해외 매각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습니다. 서울은행은 이미 충분한 공적자금이 투입됐고 경영실적도 많이 개선돼 당초 해외매각을 추진했던 98년과 달리 매각이 가능할 것으로 봅니다.
-올들어 회사채 신속인수제 시행 등으로 기업 자금 사정에 다소 숨통이 트이는 분위기이지만 근본적인 개선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은행들은 여전히 BIS비율 관리에 집착해 기업들에 대한 여신보다 국공채 투자만 하고 있습니다. 투신권도 채권시장을 견인할 정도로 매수에 적극 가담하지 않고 있습니다. 금융당국은 기업들의 자금난 완화를 위해 어떤 정책을 펼칠 것인지 말해 주십시오.
▶ 산업은행의 회사채 신속인수 방안은 외환위기 직후 중견 대기업 등이 유동성 확보를 위해 대규모로 발행한 회사채가 금년 중에 만기가 집중 도래함에 따라 기존 제도나 대책으로서는 이를 적절히 소화하기 어려운 점을 감안해 마련된 제도입니다. 회사채 인수시 발행금리도 시장실세금리 이상으로 책정하고 엄격한 자구계획을 제출토록 하고 있으며 동 제도의 운용도 한시적입니다. 따라서 동 제도는 일부에서 제기하고 있는 시장원리 훼손이 아닌 시장원리를 보완하는 조치로 봐야 합니다.
최근 기업의 자금사정을 보면 금융 구조조정의 큰 틀이 마련되고 회사채 신속인수 방안 등의 시행으로 기업의 신용위험이 축소됨에 따라 점차 안정을 되찾아 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현재 정부에서는 금융시장 호전이 기업 자금사정 완화와 실물경기 회복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로 전환될 수 있도록 적기시정조치의 탄력적 운영을 도모하는 한편 BIS비율 목표수준을 10% 이상에서 8% 이상으로 변경해 한시적으로 운영하는 등 다각적인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현대그룹 문제와 관련 국내외적으로 현대건설, 현대전자 등에 대한 만기도래 회사채 인수 및 자금지원에 대해 특혜시비가 적지 않습니다. 이에 대한 금감위의 입장을 듣고 싶습니다. 아울러 2월말까지 방안을 확정키로 한 현대투신 매각과 관련, 미국 AIG측의 공동출자 요구에 대한 금감위의 입장은 무엇입니까.
▶ 우선 회사채 신속인수 제도에 대해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동 제도가 ‘현대’라는 일개 그룹을 위한 것이 아니라 금융시스템 전체의 안정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현대건설, 현대전자 등 일시적 유동성 문제를 겪고 있는 대기업들의 정상화 여부는 업종의 미래 전망과 기업 스스로의 자구노력에 따라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동안 현대는 부동산 및 계열사 매각 등을 통한 재무구조 및 지배구조 개선, 조직ㆍ인력감축, 대주주의 사재출연 등 상당한 자구계획을 실천해 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이들 대기업의 처리 여부는 스스로의 자구노력 여하에 따라 판단돼야 할 것이나 자구노력이 미진할 경우 시장원리에 따라 채권금융기관이 적절한 조치를 취하게 될 것입니다.
현대투신에 대해 AIG와 공동 출자하는 협상은 현재 진행중에 있어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기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정부는 협상에 있어 시간에 얽매이기 보다 수용 불가능한 과도한 요구에 대해서는 이를 분명히 거부하는 등 명확한 원칙과 기준을 가지고 임할 것이고, 국민부담이 최소화되도록 최선을 다 할 것입니다.
-최근 보험사의 구조조정 잣대가 지나치게 경직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지급여력 기준 등을 완화할 계획은 없는지요. 또 손보사 구조조정과 관련 적기시정조치를 받은 부실 손보사들이 자체 정상화에 실패할 경우 어떤 방법으로 처리할지 궁금합니다.
▶ 현행 보험회사의 지급여력제도는 IMF등 국제기구와의 협의를 거쳐 확정된 것으로 EU선진국이 채택하고 있는 방식을 국내 실정에 맞게 도입한 것입니다. 현재 일부 보험회사의 지급여력비율 하락 원인은 주식시장의 침체, 보험영업손실의 증대 등에 기인한 것으로 알고 있으며 지금까지 계약이전 또는 퇴출된 보험회사는 지급여력비율 뿐 아니라 자산ㆍ부채 실사결과 부채가 자산을 초과해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된 경우로서 정상적인 영업이 어려운 회사들이었습니다.
따라서 현행기준을 완화하는 것은 구조조정을 지연시키고 공적자금 부담의 증가와 함께 국제적 신뢰를 저하시킬 우려가 있다고 판단됩니다. 다만 일시적인 주가하락 등에 의해 적기시정조치 대상에 해당될 경우, 수익성 및 자본확충 계획 등을 고려해 적기시정조치를 유예하는 등 제도를 탄력적으로 운영할 방침입니다.
-지난해 무산된 삼성, 교보 등 생보사 상장 문제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 추진할 것인지 말씀해 주십시오. 아울러 대한생명을 어떻게 처리할지 궁금합니다.
▶ 생보사 상장 유보는 그동안 이해 당사자인 보험회사, 주주, 계약자 등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합리적인 해결 방안을 찾기 어려웠던 데다 주식시장의 침체 및 주권 상장시 주식시장의 수급 불균형 문제 등이 우려됐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생보사 상장방안은 법과 원칙에 따라 그동안의 논의를 종합해 합리적으로 마련될 수 있도록 추진하고 주식시장여건 등을 감안, 생보사 상장이 무리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해 나갈 예정입니다.
한편 대한생명의 경우 추가출자를 통해 조기 경영 정상화와 매각작업을 병행 추진하되 구체적인 매각방안은 공적자금관리위원회(매각심사 소위)의 심사를 거쳐 확정할 계획입니다.
-신용금고의 저축은행 전환과 관련 허용시기와 자격요건, 이를 통한 업무영역 확대 등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요. 종금사의 투자은행 전환에 대한 금감위의 입장도 듣고 싶습니다.
▶ 상호신용금고의 명칭을 ‘상호저축은행’으로 변경하도록 하는 금고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됐지만 시행일은 법개정안 공포 후 2년 이내에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날이므로 허용시기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씀드릴 사정이 아님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만 상호신용금고가 명실상부한 상호저축은행으로 탈바꿈하기 위해서는 명칭에 걸맞는 공신력과 건전성 확보가 선행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한편 종금사의 경우 건전 경영기반이 구축될 때 기업금융의 한 축을 담당하면서 중장기적으로 투자은행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할 방침입니다.
-마지막으로 국내 금융업 종사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면 해주십시오.
▶ 금융기관은 리스크를 수용(Taking)하고 관리(Management)하는 기관이며 수익은 이러한 리스크를 관리ㆍ운용하는데 대한 보상(Premium)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 금융기관은 리스크를 수익의 대상으로 인식하기 보다는 회피의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는 경향이 있습니다.
21세기 우리나라가 금융강국으로 부상하고 금융산업이 국가경제의 엔진역할을 담당해 나가기 위해서는 금융기관이 적극적으로 신용을 창출하고 관련된 위험을 적절히 관리하는 고도화된 전문성을 갖추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각 금융기관은 무임승차할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시장이 붕괴되면 자기 하나만 리스크를 회피했다고 살아남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는 IMF사태 초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던 금융기관도 전염효과(Contagion Effect)에 의한 유동성 부족으로 문을 닫았던 경우를 상기해보면 알 것입니다. 따라서 외국인이 투자 또는 소유하는 은행을 포함해 모든 금융기관은 시장 참가자로의 시스템을 유지ㆍ발전시켜 나갈 의무와 책임이 있다고 봅니다.
문병선 기자 bsmoon@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