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계 일각에서는 뉴브리지 제일은행의 변화에 대해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거나 제 자리를 잡기에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또 매각 당시 정부가 장담했던 선진금융기법 전수 효과도 미미하고 시장에서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잇달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뉴브리지 제일은행은 가랑비에 옷젖듯 서두르지 않으면서도 변화와 개혁의 길을 꾸준히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호리에 행장과 외국인 임원진들이 추진해온 뉴브리지 제일은행의 변화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은 전문가를 적재 적소에 배치하고 자신이 맡은 업무에 책임을 지는 경영체제를 구축한 것이다. 나눠 먹기식으로 임원진을 구축하고 임의적으로 업무를 2~3개 분야씩 맡았던 국내 은행들의 예전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뉴브리지 제일은행에 배치된 외국인 임원들이 국내 은행들에 주는 또 다른 시사점은 그들의 업무 능력과 업무 프로세스가 우리가 IMF 이후에 배우고 도입하기에 급급한 바로 그 대상이라는 점이다. 국내 은행들이야 각종 컨설팅을 받아 외국 금융기관들의 조직과 영업방식을 배우는 시작단계에 불과하지만 그들은 우리가 배우고자 하는 금융기법과 금융문화가 몸에 밴 전문가들이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난 6월 뉴브리지 제일은행은 소매금융상품인 퍼스트모기지론을 출시했다. 그것도 예정일보다 몇 주 늦게 본점 영업부 1곳에서 팔기 시작했다. 많은 시장 관계자들은 예상보다 퍼스트모기지론의 상품성이 없다고 판단했고 소극적으로 영업을 전개하는 방식에 의구심을 품었다. 그러나 뉴브리지 제일은행 관계자들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판매일이 늦어진 것은 상품을 제대로 만들다 보면 있을 수 있는 일이고 1개 점포에서 시작해 현재까지 100개 점포로 취급 점포 수를 늘려온 것은 고객 니즈에 맞게 상품을 보완하는 당연한 과정이라는 지적이다.
또 퍼스트모기지론 상품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COO인 던컨 바커의 상품에 대한 자기주장이 호리에 행장을 능가하는 것이었다는 후문에 비추어 볼 때 뉴브리지 제일은행의 책임경영체제는 국내 은행과는 분명한 차별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뉴브리지 제일은행의 책임 경영체제는 이사회를 중심으로 한 의사 결정 구조와 행장의 역할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지난 9월15일 서울에서 열렸던 정기이사회는 아침 8시부터 오후 3시까지 풀타임으로 진행됐다. 흔히 듣던 외국인들의 ‘10~20분 햄버거 토론’이 등장한 것이다. 이 이사회에서 중요한 IT 투자 계획과 향후 영업 전략에 대한 심층적인 토론과 결정이 이루어져 그 결과물을 토대로 행장이 다시 1분기를 끌고 나가고 있다.
호리에 행장은 평상시에도 외국에 거주하는 이사회의장과 연결된 인터폰을 통해 수시로 의사결정에 대한 자문을 구하기도 한다. 국내 은행들에서 의무적으로 도입한 사외이사제가 유명무실하다느니 자리를 못 잡았느니 하는 소리가 나오는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호리에 행장의 경영 자세도 눈여겨 볼 가치가 있다. 호리에 행장 취임 초기에 은행 관계자들은 종합기획부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전반적인 은행 업무를 총괄하고 조정하며 금융당국이나 정부와의 공식적인 채널로 활용해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그러나 호리에행장은 “종합 조정은 행장이 하는 것”이라며 반대했다. 행장이 국내 은행의 기획부장처럼 실무 총책임자로서 발로 뛰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그래서 제일은행에는 지금 종합기획부가 없다.
송훈정 기자 hjsong@kf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