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증을 잡기는 쉽지 않지만 그러한 의심의 근거는 시황을 통해 쉽게 확인되고 있다. 지난주와 이번주의 선물거래는 대개 오후들어, 그것도 1시30분~2시경부터 ‘밀어 부치는’ 물량들이 쏟아져 나왔다.
장이 마감되기전 30분동안 드라마틱한 변화가 일어나기 일쑤였는데, 이러한 선물거래동향과 선물지수의 급등락이 거래소 현물시장의 지수 변화에 그대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일례로 지난주말장에서 선물지수(99년12월물)는 120.55포인트까지 올라갔다가 오후 2시30분경부터 밀리기 시작해 순식간에 117.10까지 떨어졌다. 약간의 시차를 두고 거래소 종합지수도 급락했다.
이날 선물거래는 장마감 5분전에 다시 매수쪽으로 흐름이 옮아가는 급반전이 이루어졌다. 이번주초에는 반대로 선물지수가 116.30까지 빠졌다가 오후 2시 15분경부터 올라붙기 시작, 역시 순식간에 121.00까지 급상승했다. 마찬가지로 이 때부터 거래소 지수도 급반등했다.
이같은 양상은 30일에도 같은 패턴으로 이어졌다. 오후 1시 30분이 넘어서 선물거래가 쏟아지며 지수를 끌어올렸고, 역시 한 때 거래소지수가 1000을 넘도록 견인하는 역할을 했고, 막판에 급격히 힘이 약해졌다.
지수선물 트레이더들은 이러한 거래흐름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보지 않고 있다. 모종의 세력이 조직적으로 시장을 조정하기 위해 선물로 ‘공작’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는 이러한 기형적인 시황이 연일 계속되기는 어려우며, 하루만을 놓고 시장의 단면을 살펴도 수급에 의한 자연스러운 거래체결로 해석하기 곤란하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지수선물시장은 ‘밀면 밀리는’ 취약한 구조라는 점도 이같은 의혹을 뒷받침하고 있다.
프로그램 잔고가 1조원씩 대기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선물거래를 몇백계약만 한 방향으로 밀어붙이면 쉽게 시장의 흐름을 몰고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요약하자면, 선물지수를 빼서 프로그램 매도를 유발하고 이로 인해 다시 현물지수가 빠지면 쏟아지는 물량을 싸게 흡수하고, 거꾸로 다시 선물지수를 끌어올려 현물지수를 올리고 매수가 강해지면 물량을 내쏟는 식의 간단하면서도 단기적으로 효과를 볼 수 있는 ‘위험한 조작’이 시장에 가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음모론의 실체에 접근하기는 쉬운일이 아니지만, 여러가지 정황으로볼 때 외국인 큰손들이 진원지중 하나가 아니겠느냐는 시각이 적지 않다.
펀드 규모가 크기 때문에 흔히 거래소 시장에서 개별종목의 ‘작전’을 하듯이 한국의 선물시장에 ‘메니퓰레이션(manipulation)’을 가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 외국인의 선물거래 얘기가 나오면 빠지지 않는 화제가 ‘물고기’에 관한 것이다.
‘물고기’는 홍콩의 한 헤지펀드에서 한국시장을 전담하는 선물 트레이더를 지칭하는 것인데, 알려진 바로는 그의 본명이 물고기 이름과 같아 생긴 별명이라고 한다.
잘 나갈 때 그는 ‘2천계약’을 움직이는 큰 손이었고, 지금도 한국 지수선물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만만치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 사이에는 간혹 ‘물고기 동향 주의보’가 입에서 입으로 퍼지기도 하는데, 그는 몇몇 국내 증권사 브로커들에게 “ 내 얘기가 시장에 알려지면 계좌를 폐쇄하겠다”고 공언하는 등 거래의 보안에 극도로 신경을 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선물시장을 ‘밀어부칠’만한 능력이 있는 큰손이 ‘물고기’하나에 그치지 않는다고 보면 교묘한 시장조작을 근거없는 의심으로 무시할 수만은 없을 것 같다.
국내 투자자문회사나 투자전문 부티크들이 전주를 잡아 운용하고 있는 사설펀드들도 의심의 대상이 되기는 마찬가지. 공개를 꺼리고 있지만, 일부 증권사 지점에 거래하는 선물펀드 단위가 1백억원대를 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정도 규모의 선물펀드 몇몇이 담합을 하면 충분히 시장을 좌우할 힘이 생긴다.
시장조작을 의심하는 전문가들의 ‘感’이 정확한지는 검증하기 어렵지만, 적어도 최근 우리나라 증시에 ‘先物’이 키워드로 부상하고 있는 것만은 부인하기 어렵다.
만약 최근의 기형적인 시장흐름이 내부정보를 가진 조직적인 세력에 의한 것이라면, 어떤식으로든 관계 당국의 점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성화용 기자 yong@kf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