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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봇과 자동화로 가능성을 시험하던 단계는 이미 지났다. 2026년의 금융은 ‘공간 중심 산업’에서 ‘지능 중심 산업’으로 넘어가는 실전 국면이다. 고객이 영업점에 찾아와 창구 앞에 서는 장면은 점점 예외가 된다. 일상의 금융 의사결정은 눈에 보이지 않는 AI 에이전트들 사이의 호출과 협상으로 이뤄진다. 누가 먼저 고객의 AI 비서에게 선택받느냐, 어느 금융사의 알고리즘이 더 자주 호출되느냐가 금융 패권을 가른다.
문제는 기술의 속도에 비해 금융사의 데이터 구조가 여전히 낡아 있다는 점이다. 예금은 계좌번호, 대출은 담보, 외환은 국적 기준으로 따로 관리된다. 동일한 고객이 시스템마다 전혀 다른 사람처럼 쪼개져 있다. 다수의 국내 금융사는 여전히 예금·여신·외환별 거래 이력을 따로 쌓는다. 이 구조로는 AI가 고객의 금융 여정을 하나의 흐름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AI가 필요로 하는 것은 판매 이후 남는 숫자 몇 개가 아니다. 개별 거래 결과라는 ‘점(Point)’ 데이터가 아니라, 그 결과에 이르기까지의 맥락과 과정을 담은 ‘선(Line)’ 데이터, 고객 유입부터 이탈까지를 따라가는 ‘흐름(Flow)’ 데이터다. 고객이 어떤 경로로 앱에 들어왔는지, 무엇을 살피다 멈췄는지, 상담 중 어떤 설명이 판단을 바꿨는지에 대한 정보가 없다면 AI의 제안은 포장만 그럴듯한 ‘디지털 스팸’에 그친다. “판매 이후 숫자”만 쌓는 방식으로는 맞춤형 금융 AI라는 구호는 출발선에도 서기 어렵다.
글로벌 금융사들은 이 한계를 정면으로 돌파하고 있다. JP모건 체이스는 부서별로 흩어진 데이터를 하나로 묶는 전사적 ‘데이터 메시(Data Mesh)’ 아키텍처를 구축했다. 골드만삭스는 상품과 고객의 관계를 기계가 스스로 이해하도록 설계한 ‘온톨로지 기반 AI 플랫폼’을 가동 중이다. 에이전트 간 실시간 거래가 일상화되는 환경에서 공통 언어와 표준화된 데이터 구조 없이는 신뢰받는 파트너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글로벌 금융사들이 AI를 단순한 서비스가 아니라 ‘조직의 언어’로 재설계하는 이유다.
국내 금융지주들도 AI를 그룹 전체의 운영체제(OS)로 삼는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KB금융은 8개 계열사의 두뇌를 하나로 묶는 ‘KB GenAI 포털’을 열고, 그룹 내 전 애플리케이션에 AI를 적용하겠다는 구상을 내놨다. 신한금융은 앱과 영업 전반에 에이전트를 심는 ‘AX 실험’을 본격화하고 있다. 하나금융 역시 가격 산정과 리스크 관리를 에이전트 중심으로 재배열 중이다. 단순한 채널 확장이 아니다. “AI가 먼저 판단하고, 사람이 검증하는” 은행 시스템으로의 구조 개조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더는 미룰 수 없다는 절박함이 깔려 있다. 오프라인 거래는 이미 붕괴 단계에 들어섰다. 비대면 거래가 일상이 되면서 전국의 영업점은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한때 금융의 신뢰를 상징하던 지점은 이제 높은 유지비만 남긴 채 구조조정의 대상이 됐다. 질문은 바뀌었다. “점포를 지킬 것인가”가 아니라 “점포 이후 무엇으로 신뢰를 증명할 것인가”다. 은행원이 여전히 서류를 전달하는 역할에 머문다면 전통 금융의 미래는 없다. AI 시대, 사람의 가치는 시스템을 설계하고 판단을 설명하며 책임을 지는 능력에서 갈린다. 점포 축소는 곧 인력 구조 재설계의 문제다. 은행원이 ‘서비스 전달자’에서 ‘자산 설계자’로 진화하지 못하면 경쟁력은 급속히 약화될 수밖에 없다.
금융은 결국 고객의 AI 비서와 금융사의 AI가 직접 협상하고 계약하는 A2A(Agent-to-Agent) 경제로 향한다. 이 환경에서 브랜드 파워나 점포 수는 더 이상 절대 기준이 아니다. 생존의 잣대는 하나다. 다른 AI가 우리 서비스를 얼마나 신뢰하고 먼저 호출하느냐다. 호출되지 않는 금융사는 고객의 시야뿐 아니라 알고리즘의 레이더에서도 사라진다. 데이터가 상품별로 쪼개지고 의미 관계가 제각각인 상태로는 에이전트 경제에서 ‘쓸 만한 부품’ 이상의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다. 데이터 구조와 온톨로지 표준화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 조건이다.
대전환에는 분명한 리스크도 중요하지만, 핵심은 책임의 소재다. 고객의 AI 비서, 금융사의 AI, 제3자 모델이 얽힌 판단 과정에서 사고가 발생했을 때 “누가 무엇을 어떻게 결정했는지”를 설명하지 못하는 순간 책임 소재에 대한 리스크가 가시화된다. 신용·대출·투자 추천에 개입한 에이전트가 결과와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면 소비자 보호와 공정대출 규제를 동시에 위반할 소지가 크다. 소수 빅테크 모델에 대한 의존이 심화될수록 동일한 신호에 일제히 반응하는 ‘알고리즘 뱅크런’ 위험도 커진다. AI 에이전트가 자동 이체·주문·계약까지 대행하는 구조에서는 해킹과 조작이 새로운 금융 범죄 인프라로 악용될 가능성도 높다. 준비되지 않은 AI 전환은 혁신이 아니라 리스크 증폭 장치가 될 수 있다는 경고다.
때문에 감독과 정책의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금융위원회는 AI 윤리 원칙과 위험 관리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데이터 품질·보안 통제를 강화하는 한편 금융권 AI 플랫폼 구축과 망 분리 규제 완화 등을 통해 인프라 부담을 덜겠다는 방침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방향이 아니라 실행이다. 선언과 가이드라인만으로는 초 단위로 판단하고 거래를 호출하는 알고리즘 금융을 통제할 수 없다.
기술 감독(SupTech)과 레그테크 기반의 상시 감독 체계는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다. 알고리즘의 판단 논리가 실시간으로 검증되지 않는다면 소비자 보호는 공허한 구호일 뿐이다. 로그와 설명 가능성을 확보하지 못한 AI는 위험 요소에 불과하다. 규제는 기술의 속도를 늦추는 족쇄가 아니라, 잘못된 질주를 바로잡는 안전장치로 거듭나야 한다.
2026년은 AI 에이전트가 금융의 프론트라인을 점령하는 원년이 될 것이다. 그러나 AI 도입 자체가 성공을 보장하진 않는다. 데이터를 얼마나 투명하게 정렬했는지, 알고리즘의 판단을 어디까지 설명할 수 있는지, 그리고 사고 시 책임을 질 준비가 되었는지가 본질이다. 선택받지 못한 금융은 고객보다 먼저, 알고리즘의 냉혹한 판단에 의해 시장에서 퇴장당할 것이다.
김의석 한국금융신문 기자 eskim@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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