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진기사 모아보기 산업은행 회장이 있다.산은 최초의 내부출신 회장인 박 회장은 취임 당시 첨단전략산업 지원과 중소·벤처 및 지방산업 육성, 전통산업의 생산성 제고와 산업구조 재편을 산은이 역량을 집중해야 할 분야로 꼽았다. 취임 1년이 지난 현재 이 같은 구상은 국민성장펀드 17조9000억원 승인·결성, 250조원 규모 ‘KDB NEXT KOREA’ 가동, 대산·여수 석유화학 구조재편 금융지원 등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지난 1년간 산은의 행보가 단순한 정책금융 공급 확대를 넘어 산업 재편과 미래산업 육성을 동시에 겨냥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석화 구조재편 선봉에 선 산은…대산·여수에 1.38조
박 회장 체제에서 가장 ‘산업은행다운’ 성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석유화학 산업 구조재편이다. 중국발 공급과잉 등으로 국내 석유화학 산업의 수익성이 악화되자 정부가 설비 감축과 고부가가치 제품 전환을 추진했고, 산은은 채권단을 이끌며 실제 자금을 공급하는 역할을 맡았다.
첫 사례는 HD현대케미칼과 롯데케미칼 대산공장의 통합을 골자로 한 ‘대산 1호’다. 산은은 통합 전 유동성 대응을 위해 5000억원의 브릿지자금을 단독 공급하고, 통합 이후 시설투자와 연구개발(R&D) 등에 필요한 사업재편 투자자금 4300억원도 전담하기로 했다. 대산 1호에서만 산은이 책임지는 금융지원 규모가 9300억원에 달한다.
산은의 역할은 여수로 이어졌다. 지난 7월 여천NCC와 롯데케미칼 등이 참여하는 ‘여수 1호’ 사업재편이 승인되자 산은은 여천NCC에 최대 3000억원, 롯데케미칼에 최대 1500억원 등 총 4500억원의 신규 설비투자 자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채권금융기관들도 양사에 대한 기존 협약채권 약 4조4000억원의 상환을 2029년 말까지 유예하기로 했다.
대산과 여수에서 산은이 직접 책임지는 신규 금융만 합쳐도 최대 1조3800억원이다. 단순히 부실기업을 정리하는 사후 구조조정과 달리 생산설비를 줄이고 고부가 사업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선제적으로 자금을 투입한다는 점에서도 과거 구조조정과 결이 다르다.
성장산업에는 모험자본…국민성장펀드 17.9조 승인
한계산업에 ‘메스’를 댔다면 성장산업에는 자금 공급 속도를 높였다. 박 회장 체제에서 산은은 150조원 규모 국민성장펀드의 운영기관으로 나서며 정부 생산적금융 정책의 핵심 집행기관 역할을 맡고 있다.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국민성장펀드를 통해 승인·결성된 자금은 총 31건, 17조9000억원이다. 올해 목표인 30조원의 약 60% 수준이다. 원익로보틱스의 휴머노이드 양산시설에는 3500억원의 직접투자를 승인했고, CJ포디플렉스에 2200억원, 두산테스나에 5600억원, LG에너지솔루션에 3000억원 등을 지원하기로 했다. 1~8월 승인액 가운데 지역 소재 기업 등에 대한 지원은 7조2200억원으로 전체의 42.5%를 차지했다.
박 회장은 산은 자체 정책금융 청사진도 새로 꺼냈다. 향후 5년간 첨단전략산업 경쟁력 강화에 100조원, 지역금융 확대에 75조원, 주력산업 지원에 50조원, 국민성장펀드 연계 대출·투자에 25조원 등 모두 250조원을 공급하는 ‘KDB NEXT KOREA’ 프로그램이다. 국민성장펀드라는 정부 정책사업을 넘어 산은 자체 자금과 기업금융 역량까지 하나의 틀로 묶은 것이 특징이다.
성장기업에 투자하고 기존 제조업에는 구조재편 자금을 공급하는 ‘투트랙’은 박 회장이 취임 당시 제시한 방향과 맞닿아 있다. 성장산업에는 모험자본과 장기자금을 넣고, 공급과잉에 처한 산업에는 사업재편 금융을 공급하는 방식이다.
30억달러 조달에 지역 벤처까지…정책금융 외연 넓혔다
정책금융을 뒷받침할 외화조달에서도 성과가 나타났다.산은은 올해 1월 전 세계 투자자를 대상으로 총 30억달러 규모의 글로벌본드를 발행했다. 3년 고정금리 12억5000만달러와 5년 고정금리 12억5000만달러, 5년 변동금리 5억달러로 구성됐다. 특히 5년물은 산은 글로벌본드 가운데 역대 최저 수준의 스프레드로 발행됐다. 투자자의 57%가 중앙은행과 국제기구 등 우량 투자자로 채워진 것도 특징이다.
국제금융시장 불확실성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낮은 비용으로 외화자금을 확보하면서 산은뿐 아니라 다른 한국계 기관들의 해외채권 발행에 기준점을 제시했다는 의미도 있다. 정책금융 공급 여력을 안정적으로 뒷받침하는 조달 경쟁력을 확인했다는 평가다.
수도권에 집중됐던 벤처 육성 기능도 지역으로 넓어지고 있다. 산은은 지난 7월 서울과 부산에 이어 ‘KDB NextONE 광주’를 개소했다. NextONE은 현재까지 200곳이 넘는 스타트업을 보육했고 이 가운데 100곳 이상이 1300억원대의 투자를 유치했다. 광주 거점 신설을 통해 수도권 투자자와 서남권 스타트업을 직접 연결하는 구조를 만든다는 구상이다.
국민성장펀드 승인액의 42.5%가 지역 프로젝트와 기업에 배정된 점까지 감안하면 박 회장이 취임 때 내건 ‘지방산업 체질 개선’ 역시 단순한 구호를 넘어 자금 공급과 벤처 인프라 확충으로 옮겨지고 있는 모습이다.
취임 일성 상당부분 실행…남은 숙제는 ‘완결’
박 회장이 1년 전 취임하면서 꺼낸 키워드는 첨단전략산업, 중소·벤처와 지역, 전통산업 구조재편이었다. 취임 첫해 산은의 행보도 이에 맞춰 비교적 선명하게 나뉜다. 첨단산업에서는 국민성장펀드가 본격 가동됐고, 주력산업에서는 대산·여수 석유화학 사업재편이 시작됐다. 지역에서는 정책금융과 벤처 인프라가 확대됐고, 장기 과제인 KDB생명도 다시 매각 협상 단계에 진입했다.남은 임기에는 ‘시작한 일의 완결’이 중요해질 전망이다. 국민성장펀드는 승인액을 실제 투자와 대출 집행으로 얼마나 빠르게 연결하느냐가 관건이고, 대산·여수에 이어 울산 등 추가 석유화학 사업재편을 성사시켜야 한다.
HMM도 대표적인 미완 과제다. 박 회장은 지난 2월 HMM 매각에 앞서 부산 이전을 선결 과제로 제시했고, HMM 노사는 지난 4월 본사 부산 이전에 합의했다. 산업은행은 HMM 지분 35.42%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부산 이전의 큰 고비를 넘긴 만큼 향후 HMM 민영화를 어떤 방식과 시점에 추진할지가 박 회장 남은 임기의 주요 숙제로 꼽힌다.
취임 첫해가 성장산업에 자금을 투입하고 위기 산업의 재편에 착수하는 기간이었다면, 앞으로는 그 성과가 실제 기업 투자와 산업 경쟁력 회복, 구조조정 마무리로 이어지는지를 증명해야 할 시점이다. 박 회장이 취임 당시 내세웠던 ‘산업과 기업의 재도약을 뒷받침하는 정책금융’이 계획을 넘어 결과로 이어질 수 있을지가 남은 임기의 성적표를 좌우할 전망이다.
장호성 한국금융신문 기자 hs6776@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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