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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보드 1위란 환상 뒤에 숨겨진 '디지털 소작농'의 진실

장종회 기자

jhchang@fntimes.com

기사입력 : 2026-05-15 18:25

장준환 변호사 신간 ‘K가 죽어야 K가 산다’가 던진 화두

인터뷰 하고 있는 ‘K가 죽어야 K가 산다’저자 장준환 변호사.

인터뷰 하고 있는 ‘K가 죽어야 K가 산다’저자 장준환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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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금융신문 장종회 기자] 오래전 '한류'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그것은 일시적인 현상이거나아시아권의 지엽적 유행 정도로 치부되곤 했다. 하지만 지금 K-컬처는 명실상부한 글로벌 주류로 부상했다. K-팝은 세계 음악 산업의 중심에 섰고, K-드라마와 영화는 OTT를 통해 전 세계인의 안방을 점령했다. K-푸드는 하나의 라이프스타일이 되었고, K-아트도 글로벌 미술 시장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다.

하지만 이 눈부신 성공의 정점에서 뉴욕을 무대로 활동하는 장준환 변호사는 매우 불편하고도 도발적인 질문을 던진다. "지금 우리가 환호하는 그 성공의 구조를 과연 누가 설계하고 있는가". 15일 출간된 그의 신간 ‘K가 죽어야 K가 산다’는 K-컬처의 성공을 축하하는 축배 대신에 그 성공이 발을 딛고 있는 '토양'이 무엇인지를 묻는 서늘한 보고서다. 저자와의 대화를 통해 이 시대 가장 위험하고도 꼭 새겨야 할 것들을 짚어봤다.

죽어야 할 K와 살아야 할 K…"우리는 누구의 언어로 말하고 있는가"

Q. 제목부터가 상당히 도발적이다. 'K가 죽어야 K가 산다'니. 지금 전 세계가 K에 열광하고 있는데, 왜 하필 '죽음'을 언급하는 것인가.
A. 죽어야 한다는 것은 K-컬처 그 자체가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죽어야 할 K'는 철저히 외부의 기준에 맞춰진 K를 의미한다. 한국인들은 그동안 글로벌 플랫폼과 자본이 인정하는 방식, 즉 세계가 좋아하는 'K-스타일'에 맞추기 위해 스스로의 감각과 언어를 조금씩 조정해 왔다. 반대로 '살아야 할 K'는 우리 스스로가 기준을 잡고, 무엇이 아름답고 중요한지를 스스로 결정하는 문화 경제 구조를 가진 K이다. 진짜 K가 살기 위해선, 외부의 시선에 길들여진 과거의 K를 넘어서야 한다.

Q. 문화 현상을 비판하는 시각은 많았지만, 변호사로서 주목하는 지점은 무엇인가. 결국 '구조'인가.
A. 맞다. 실패한 문화는 구조를 물을 여유조차 없다. 하지만 K-컬처처럼 성공한 문화라면, 그 성공이 어떤 구조 위에 세워졌고 그 결실이 어디로 축적되는지를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성공이 진짜라면 불편한 질문도 견뎌낼 수 있어야 하니까.

'디지털 소작농'…100년전 식민지 구조의 데자뷔

Q. 책에서 가장 충격적인 부분은 오늘날의 플랫폼 구조를 100년전 식민지 근대화 과정에 비유한 지점아다. '디지털 소작농', '디지털 동양척식주식회사' 같은 표현은 논란의 여지가 있어 보이는데.
A. 일부러 강한 비유를 선택했다. 오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100년 전 조선과 전혀 다르며, K-컬처의 성취는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주목할 것은 '지배의 방식'이 아니라 '구조의 유사성'이다. 과거에 철도와 금융 시스템을 통해 영토의 인프라가 재편되었다면, 오늘날에는 플랫폼, 알고리즘, IP 계약을 통해 문화의 수익 구조가 재편되고 있다.

Q. '디지털 소작농'이라는 표현은 결국 우리가 만든 콘텐츠의 이익을 글로벌 플랫폼이 가져가는 구조를 꼬집는 것인가.
A. 그렇다. 콘텐츠를 만드는 주체는 우리지만, 그 콘텐츠가 자라고 유통되는 '디지털 토지'와 데이터, 알고리즘을 타인이 소유하고 있다면 그 성공은 언제든 흔들릴 수 있는 불안정한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반외세 운동이나 고립을 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핵심은 우리가 그들과 대등하게 맞설 수 있는 '협상력'을 갖고 있는가, 그리고 우리만의 인프라를 축적하고 있는가이다.

'인정의 외주화' 멈추고 '미학적 주권' 선포해야

Q. '인정의 외주화'라는 용어도 인상적이다. 빌보드 순위나 넷플릭스 차트에 일희일비하는 우리의 모습을 정면으로 겨냥한 것인가.
A. K-컬처의 힘은 분명 진짜다. 우리 안에는 치열한 경쟁과 창의성으로 빚어낸 놀라운 에너지가 있다. 하지만 그 가치를 평가하는 방식은 여전히 외부 인증에 지나치게 기대고 있다. 빌보드나 해외 언론, 혹은 유명 아트페어의 인정을 통해서만 우리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려는 경향, 그것이 바로 '인정의 외주화'이다. 외부의 인정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우리가 우리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 즉 '안목의 주권'을 회복해야 할 때다.

Q. 그렇다면 K-컬처의 '다음 단계'는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이라고 보는가.
A. 세 가지 주권의 회복이다. 먼저 IP(지식재산권) 주권이다. 콘텐츠가 성공했을 때 그 장기적인 권리와 수익이 우리에게 남아야 한다. 다음은 플랫폼과 데이터 주권이다. 유통망과 알고리즘, 그리고 팬덤 데이터를 누가 통제하느냐가 승패를 가른다. 마지막으로 안목의 주권이다. 우리 스스로 가치를 판단하고 축적할 수 있는 비평, 교육, 미술관 시스템이 필요하다. 조회수나 순위라는 숫자를 넘어, 더 강한 '구조'를 만드는 것이 다음 단계의 핵심이다.

뉴욕의 변호사가 바라본 자본의 민낯

Q. 변호사로서 뉴욕 맨해튼에서 활동하며 갤러리도 운영하고, '더 뱅크 뮤지엄 디스트릭트' 같은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라고 들었다. 그런 현장 경험이 책을 쓰는데어떤 영향을 주었나.
A. 자본이 움직이는 방식을 현장에서 가장 가까이 지켜보며 깨달은 점이 있다. 자본은 단순히 '돈'이 아니다. 자본은 구조를 설계하는 힘이다. 무엇이 가치 있는지 정의하고 소비의 방향을 설계하는 것이 바로 자본의 속성이다. K-컬처는 단순한 문화 현상이 아니라 자본과 기술, IP와 데이터가 얽힌 복합적인 경제 구조다. 문화는 AI 시대의 국가 경쟁력과 직결된 전략적 인프라다.

박수 소리가 멈춘 뒤를 대비해야

‘K가 죽어야 K가 산다’에서 저자인 장준환 변호사가 쏟아낸 것들은 뼈아프지만 정확하다. 어쩌면 한국인들은 그동안 '글로벌'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경기장에서 승리하기 위해, 그 경기장을 빌려주는 이들이 만든 규칙에 순응해 왔는지 모른다. 하지만 저자의 지적대로, 이제는 직접 경기장을 짓고 규칙을 설계해야 할 시점에 도달한 게 아닐까.

‘K가 죽어야 K가 산다’는 그런 시각에서 볼 때 K-컬처의 성공을 부정하려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 성공을 일시적인 불꽃놀이로 끝나지 않도록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 지를 고민한 결과물이다. K-문화가 앞으로 100년, 200년 이어질 탄탄한 구조로 구축되기를 바라는 애정도 느껴진다. "K-컬처의 다음 단계는 유명세가 아니라 구조"라는 저자의 말은 문화산업에 종사하는 이들이 한번쯤 되새겨 봐야 할 대목이다.

지금 성공가도를 달리는 듯 보이는 'K'가 정말 우리가 설계한 'K'인지, 세계의 박수를 받기 위해 무엇을 포기해 왔는지 스스로 묻고 답해야 할 때다. 외부의 잣대가 아닌 자신의 기준을 세워야 진정한 주체로 설 수 있을테니.
빌보드 1위란 환상 뒤에 숨겨진 '디지털 소작농'의 진실
저자 장준환은
뉴욕에서 활동하는 비즈니스 및 프라이빗 웰스 변호사이자 기획자이다. 뉴욕 맨해튼 장법률그룹(Chang Law Group P.C.) 대표변호사이며, 뱅크예술재단(The Bank Art Foundation) 설립자로서 문화 인프라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저서로는 ‘인텔렉추얼 비즈니스’ ‘변호사들’ 등이 있다.

장종회 한국금융신문 기자 jhchang@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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