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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석의 단상] 야누스의 문 앞에 선 금산분리

김의석 기자

eskim@

기사입력 : 2025-11-29 05:00

“AI 특례” 한마디에 43년 규제 논쟁 재점화
산업자본 4% vs IT기업 34%, 역차별 논란
금지 규제에서 책임으로 패러다임 전환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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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석의 단상] 야누스의 문 앞에 선 금산분리
[한국금융신문 김의석 기자] 고대 로마의 신 야누스는 서로 반대 방향을 바라보는 두 얼굴을 지녔다. 문을 열고 닫는 신으로, 평화가 오면 문을 닫고 전쟁의 기운이 감돌면 문을 연다는 전설이 있다. 한국 금융정책이 금산분리 앞에서 맞닥뜨린 지금의 상황은 이 야누스를 닮았다. 한쪽 얼굴은 IMF 외환위기와 기업 부실의 기억을 응시하고, 다른 얼굴은 AI·반도체 등 미래 산업의 경쟁 속도를 바라본다. 두 얼굴이 마주한 지점에는 금융 안정과 산업 혁신이라는 본질적 가치의 충돌이 자리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샘 올트먼과의 회동에서 AI 분야 특례 가능성을 언급하자, 잠잠했던 금산분리 논쟁이 다시 불붙었다. 재계는 규제 재설계를 요구하며 "드디어 문이 열린다"는 기대를 표했다.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은 곧바로 제동을 걸었다. 금산분리는 금융과 산업 사이의 위험 전이를 차단하는 안전장치이며, 특정 기업의 필요만으로 완화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대기업의 금융기관 사금고화, 경제력 집중, 총수일가 지배력 확장 가능성을 우려하며 특별법의 한시 개정 정도만 검토할 수 있다고 선을 그었다.

 금산분리(金産分離) 규제가 시대별로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요약한 표. 금산분리란 산업자본(기업)이 금융자본(은행)을 소유하거나 지배하는 것을 막는 원칙을 의미함.

금산분리(金産分離) 규제가 시대별로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요약한 표. 금산분리란 산업자본(기업)이 금융자본(은행)을 소유하거나 지배하는 것을 막는 원칙을 의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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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의 핵심은 단순한 완화나 강화가 아니다. 43년간 유지해 온 위험 전이 차단막을 어디까지, 어떤 방식으로 열 것인가, 그리고 문을 열 경우 새로운 제도 기준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다.

금산분리는 산업자본의 금융기관 소유·지배를 제한하는 규제다. 1982년 도입 이후 한국 경제의 금융 안정성을 지켜온 핵심 질서였다. 대기업 중심 경제구조에서 특정 계열사의 부실이 국민 예금을 기반으로 하는 금융 시스템 전체로 번지는 것을 막는 것이 목적이었다. 산업자본의 은행 지분은 처음 8%였다가 IMF를 거치며 4%로 강화됐다. 대우, 한보, 동아건설 사태에서 드러났듯, 산업과 금융이 뒤엉킨 구조는 결국 금융 시스템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험이 한국 경제에 깊이 각인됐다.

금산분리 규제 완화를 둘러싼 주요 쟁점과 찬반 양측의 논리를 비교 분석한 표.

금산분리 규제 완화를 둘러싼 주요 쟁점과 찬반 양측의 논리를 비교 분석한 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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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금은 IMF 시대가 아니다. 산업 패러다임은 이미 달라졌다. AI·반도체·바이오·모빌리티 등 전략산업은 국가 단위의 자본전쟁으로 확장됐다. 미국의 IRA와 반도체법, 유럽의 그린딜, 중국의 대규모 투자처럼 '천문학적 자본 투입'이 세계적 경쟁의 기본 전제가 됐다. 반도체 공장 한 기 구축비용이 100조~120조원에 달하는 시대에, 150조원 규모의 국민성장펀드만으로 첨단 공장 한 개를 온전히 감당하지 못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기업들은 사내유보금 2,800조원을 미래산업에 투입하길 원하지만, 제도적 통로는 좁다. 금산분리 규제는 전략적 투자에 걸림돌로 작용하며 글로벌 속도 경쟁에서 뒤처지는 결과를 낳는다. 국민성장펀드가 SK하이닉스 등 대기업에 출자하고 싶어도 증손회사 지분 100% 규정에 막히는 구조 역시 같은 문제다.

여기에 역차별 논란도 있다. 빅블러 시대, 금융과 비금융의 경계가 이미 모호해졌지만 규제는 여전히 이분법적이다. 카카오·네이버 등 IT기업은 인터넷전문은행 지분을 34%까지 보유할 수 있는 반면, 제조업 기반 산업자본은 4% 룰에 묶여 있다. 기술력과 자본력을 보유한 대기업은 금융투자에 제약을 받고, 상대적으로 역사가 짧은 IT기업들이 금융으로 먼저 진출하는 상황이다.

 금융과 산업 자본의 분리를 규율하는 주요 법률과 핵심 규제 내용을 정리한 표.

금융과 산업 자본의 분리를 규율하는 주요 법률과 핵심 규제 내용을 정리한 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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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안동현 경제학부 교수는 공정거래위원장의 입장을 1930~40년대 미국식 대기업 규제 사고에 머무른 것으로 평가했다. 미국은 이미 빅테크의 비은행 금융사 소유를 허용하는 방향으로 변화했지만,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금산분리를 유지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글로벌 빅테크가 금융을 핵심 사업으로 통합하며 경쟁력을 키우는 동안 한국 기업만 융합 기회에서 배제된다면, 산업 경쟁력의 격차는 더욱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금융 경쟁력도 정체된 상태다. 4대 금융지주의 이자이익 비중은 85%로 글로벌 100대 금융사 평균(59%)과 격차가 크다. 미국 은행들이 비이자이익 비중 30% 이상을 확보하며 사업 다각화를 이룬 것과 대비된다. 한국 금융은 여전히 예대마진 중심 구조에 머무르며 고부가가치 분야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기술 투자가 활발한 해외 금융사들과 달리, 안정적 이익을 중시하는 국내 금융의 보수적 구조가 혁신산업 지원 속도를 늦추는 원인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물론 규제 완화의 위험성도 여전히 크다. 산업자본이 금융사를 지배할 경우 이해상충, 계열사 특혜 대출, 내부 정보 활용, 부실 전가 등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AI에 특례를 허용하면 반도체·배터리·바이오 등 다른 산업도 예외를 요구할 수 있다. '전략산업 줄서기'가 나타나면 금산분리의 근본 원칙이 흔들릴 수 있다.

우리나라와 해외 주요국(미국, 캐나다, EU)의 금산분리 규제 방식을 비교한 표.

우리나라와 해외 주요국(미국, 캐나다, EU)의 금산분리 규제 방식을 비교한 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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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내부 우려도 깊다. 국민성장펀드 첫 투자처가 대기업으로 결정될 경우 특혜 논란이 불가피하고, 정책 추진의 첫 단추가 어긋날 수 있다. 공정거래위원장이 "특정 기업의 필요만으로 규제를 풀 수 없다"고 강조한 배경이기도 하다. 예외가 쌓이면 원칙이 사라지고, 원칙이 사라지면 금융 시스템 전체 신뢰가 흔들릴 수 있다.

결국 해법은 단순한 완화도, 기존 질서의 고수도 될 수 없다. 금융 안정 철학을 지키면서 미래 산업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정교한 규제 전환이 필수다. 특별법의 한시 개정, 기업형 벤처캐피털(CVC) 완화, 정부의 후순위채권 투자 등은 투자 통로를 확보하면서도 금산분리의 기본 골격을 유지하기 위한 절충안으로 거론되나 '변칙'이라는 비판도 있어, 보다 근본적 설계가 요구된다.

AI·반도체 등 첨단산업 투자를 위한 규제 완화와 대기업 사금고화 및 금융 안정 우려가 맞서며 금산분리 논쟁이 격화되고 있다.

AI·반도체 등 첨단산업 투자를 위한 규제 완화와 대기업 사금고화 및 금융 안정 우려가 맞서며 금산분리 논쟁이 격화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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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은 대기업의 금융 지배는 단호히 차단하되, 전략 산업 투자는 제도적으로 열어주는 이중 설계다. 출자 한도는 허용하되 경영권은 제한하고, 특혜 논란을 막기 위한 의결권 제어·외부감사 강화·엄격한 감독체계를 병행해야 한다. 사내유보금의 전략적 활용, 정책금융의 역할 강화, 코스닥·코넥스 등 모험자본 시장 확대, 연기금·기관의 장기투자 유도 등 구조적 보완도 요구된다.

금산분리 논쟁의 본질은 '금지 중심 규제'에서 '책임 중심 규제'로의 전환이다. 금융과 산업이 서로 위험을 전가하지 않고, 각자의 영역에서 책임을 강화하는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일이다.

야누스의 문 앞에서 한국은 다시 선택의 순간을 맞고 있다. 문을 열되, 책임이라는 새로운 문지기를 세워야 한다. 금융 안정과 산업 혁신이라는 두 얼굴이 균형을 찾을 때, 한국 경제는 비로소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과거의 상처를 기억하며, 미래의 도전에 응답하는 용기 있는 선택이 지금 필요하다.

김의석 한국금융신문 기자 eskim@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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