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국 하림 회장./ 사진제공 = 하림
익숙한 광고음악 때문일까? 많은 사람들이 하림을 육계사업을 하는 회사로 알고 있다. 하지만 하림그룹은 단순히 축산사업만 하는 기업은 아니다. 해운, 항공, 홈쇼핑 등 다양한 사업 포트폴리오를 갖추고 있다. 재계 20위권 대기업으로 자산 규모만 15조원대에 달한다.
그 출발은 미미했다. 하림은 김홍국 회장이 어렸을 때 길렀던 병아리에서 비롯됐다. 김 회장이 11살 때 외할머니에게 병아리 10마리를 받았는데, 그게 시작이다. 김 회장은 선물 받은 병아리 10마리를 정성스럽게 먹이며 키웠다. 병아리들이 토실토실한 닭이 되자 시장에서 시세보다 비싸게 팔았고 2500원을 손에 쥐었다. 그리고 그 돈을 종잣돈으로 삼아 본격적으로 축산업을 시작하게 됐다.
김 회장은 공무원이 되라는 부모님 반대를 무릅쓰고 농고로 진학했다. 고교 때 닭 5000마리, 돼지 700마리를 기르며 어엿한 축산업자로 자리 잡았을 뿐만 아니라 양계장을 직접 설계하고, 볏짚을 납품하는 일까지 사업 아이템으로 만들었다.
이 때 벌어들인 수익이 월 300만원으로 알려졌다. 당시 공무원 월급이 20만원 수준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고등학생 때부터 사업 수완이 남달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김 회장은 그렇게 돈을 모아 18세에 하림 모태가 되는 ‘황등농장’으로 사업자등록을 하고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승승장구하던 사업은 25세 되던 1982년 닭값 폭락 파동으로 끝을 맺게 됐다. 김 회장은 당시를 회상하며 “닭, 돼지 값이 폭락했는데도 가격이 그대로인 소시지를 보며 '나도 소시지를 만들어 팔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후 식품회사에 입사해 근무하며 기회를 모색하다 서른을 앞둔 1986년 하림을 설립해 다시 사업을 시작했다. 다시 사업에 뛰어든 김 회장은 과거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농장-공장-시장을 아우를 수 있는 이른바 '삼장 통합경영'을 구축했다. 사업 수직계열화를 완성해 안정적 성장궤도를 마련한 것이다.
삼장 통합경영이란 가축 사육을 하는 농장부터 육제품 가공 공장, 시장 유통과 판매까지 모두 아우르는 사업 모델을 말한다. 불필요한 중간마진을 줄여 소비자들이 저렴한 가격에 양질의 제품을 받아보게 하겠다는 전략이었다.
그의 전략을 바탕으로 사업은 꾸준히 성장했고 상승세에 힘입어 1997년 회사를 코스닥에 상장하고 익산에 육가공 공장을 세웠다. 그 무렵 외환위기가 찾아왔지만 국내 기업으로는 최초로 국제부흥개발은행(IBRD) 산하 국제금융공사(IFC)로부터 2000만 달러를 투자받아 위기를 극복했다. 당시 IFC는 김 회장 자질과 능력을 높이 평가해 투자 결정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2001년에는 하림그룹을 출범시키며 새출발을 선언했다. 김 회장은 그룹 회장으로 취임하고 각 계열사에 전문 경영인을 배치해 그룹 경영 초석을 다졌다. 육계 가공에 치중돼 있던 사업 포트폴리오가 이 때부터 다양하게 뻗어가기 시작했다.
2001년엔 제일사료를 인수하며 사료사업에 진출했고 2003년 공장이 화재로 전소되고 조류 독감 유행으로 어려운 시기를 보내기도 했다. 이 때를 계기로 사업 다각화에 집중해 육계 계열회사업체 ㈜올품, 가축약품 전문회사인 한국썸뱉(Korea Thumb Vet), 농수산식품 전문 홈쇼핑업체 농수산홈쇼핑(현 NS홈쇼핑) 등을 계열사로 편입하고, 양돈과 사료부문 전문기업인 ㈜선진, ㈜팜스코, 오리 계열화업체 ㈜주원산오리 등으로 확대했다.
2015년에는 1조원을 들여 해운업체 팬오션을 인수해 곡물유통사업까지 진출했다. 이를 통해 단번에 덩치를 키워 대기업 반열에 올라섰다. 김 회장이 팬오션 인수를 추진하던 당시 업계는 “하림이 무모하게 사업을 확장한다”고 지적했다. 해운업이 장기 불황에 빠진 상황에 축산업 회사가 해운사 인수에 나서자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부정적 여론에도 불구하고 김 회장은 적극적으로 팬오션 인수를 추진했다. 이유는 사료 때문이다. 하림그룹 전체 매출 중 1/4 가량을 차지하는 것이 사료 부문이다. 김 회장은 팬오션 인수를 통해 사료 원료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운송비를 절감하고 안정적 운송책을 확보하려 한 것이다.
하림그룹은 팬오션 인수로 자산규모가 5조원 가량에서 9조원대로 급등하며 대기업 반열에 들어섰고 그룹 출범 20여년이 지난 지금 하림그룹은 곡물유통, 사료, 식품, 쇼핑 등 다양한 사업을 아우르게 됐다. 그룹에 소속된 회사는 80여개에 달한다.
장기적으로 팬오션 인수는 하림에 ‘신의 한 수’가 됐다. 팬오션은 한 때 법정관리에 들어갔을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았지만, 하림그룹에 인수된 뒤 착실히 실적을 개선해 나갔다. 특히 팬데믹과 동시에 글로벌 물류대란이 발생하며 화려한 부활을 알렸다. 최근에는 하림그룹의 든든한 캐시카우 역할을 하며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다양한 부문에서 사업을 키운 김 회장 다음 목표는 물류 사업이다. 김 회장은 2016년 양재동 화물터미널 부지 9만5000여㎡를 4525억원에 매입하고 물류단지 설립을 공식화했다. 하지만 이후 서울시 반대에 부딪혀 제 속도를 내지 못해 지지부진했다. 그러다 정권이 바뀌고 감사원이 하림 측 손을 들어주면서 재추진되고 있다.
김 회장은 이 부지를 첨단 도시물류센터로 만드는 데 힘을 쏟을 것으로 예상된다. 양재 도시첨단물류단지 조성사업은 오는 2027년까지 서울 서초구 양재동에 연면적 11만5000㎡ 규모 유통물류시설, 업무시설, 연구·개발시설, 컨벤션센터, 공연장, 백화점, 호텔, 주택 등이 결합된 친환경·첨단물류단지를 조성하는 사업이다.
핵심은 공장, 농장에서 생산된 제품과 먹거리가 도심으로 바로 들어 올 수 있도록 물류 단계를 줄이는 것이 목표다. 5조7000억원을 투자해 화물차량 동선을 지하화하고 새로운 개념의 도시물류시설을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해당 용지는 경부고속도로 양재 나들목과 강남순환도시고속도로에 인접해 있어 수도권 소비자들에게 2시간 이내에 상품을 배송할 수 있는 최적의 물류단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 회장은 2020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포장·재고·쓰레기 없는 최첨단·친환경 물류단지와 연구개발·상업·주거·문화 복합단지를 지어 물류 유통 패러다임을 바꾸겠다"며 "기존 식품사업과도 큰 시너지를 창출할 것"이라고 의지를 드러냈다.
하림그룹은 6대 기본구상 바탕으로 관련 법령과 절차에 따라 물류센터 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6대 기본 구상이란 △배송포장 쓰레기 없는 물류 실현 △단지 내 음식물 쓰레기 100% 자원화 △탄소배출 없는 클린에너지 운송 △안전한 일터, 질 좋은 일자리 창출 △최첨단 ICT가 집적화된 스마트 물류센터 운영 △도시와 농촌, 중소기업의 상생발전 가교를 말한다.
김 회장도 과거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서울시가 세계적 생활형 도시첨단물류를 갖추도록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 He is…
△1957년생 / 호원대 경영학 / 1986년 하림식품 대표이사 / 1990년 하림 대표이사 회장 / 2001년 하림그룹 회장 / 2018년 하림지주 대표이사 겸 하림 대표이사 회장
홍지인 기자 helena@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