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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모두가 이성을 잃은 부동산, 냉정을 찾자

장호성 기자

hs6776@fntimes.com

기사입력 : 2020-12-28 00:00

▲사진: 장호성 기자

▲사진: 장호성 기자

[한국금융신문 장호성 기자] 시작에 앞서 최근 본 설문조사 결과 하나를 소개할까 한다.

주제는 직장인들이 가장 많은 ‘현자타임(현실자각 타임의 줄임말을 나타내는 신조어)’을 느끼는 순간이다.

1위는 ‘무리하게 일하다가 건강에 무리가 왔을 때’였지만, 이와 아주 근소한 차이로 2위를 차지한 문항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부동산 관련 뉴스를 들을 때’였다.

하물며 바로 그 ‘부동산 뉴스’를 생산하는 기자는 어떠하겠는가. 다른 부서를 담당할 때와는 차원이 다른 박탈감과 ‘현자타임’을 매일 느끼고 있다.

취재를 하다 보면 굉장히 자주 듣게 되는 소식은 ‘30대 직장인인데 갭 투자로 5억 벌었다’, ‘주말에 세 번째 집 보러 임장 다녀왔다’, ‘자식한테 집 증여하려고 하는데 세금폭탄 피할 방법 없느냐’ 등 기자의 실생활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진 얘기들뿐이다.

기자 주변의 실제 청년들은 주로 원룸 전월세 등을 전전하며 살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2030 세대가 영끌로 집을 사고 있다는데 도대체 어떤 2030들이 그러고 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그런데 기자가 부동산부에서 뛰기 시작한지 약 8개월이 지나가는 동안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느꼈다.

기자가 취재 과정에서 만난 다주택자, 1주택자, 무주택자, 임차인, 임대인, 20대, 30대, 40대, 50대, 은퇴한 사람들, 현직 공인중개사, 부동산 전문가, 국토부 등 당국 관계자들, 여야 국회의원들, 부동산 커뮤니티 회원들까지, 그 누구 하나 만족하거나 행복해하는 사람이 단 하나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가진 자는 더 갖지 못해서 불행하고, 갖지 못한 자는 가진 자들을 시기하며, 이들 사이를 중재해야 할 당국 관계자들은 정책의 갈피조차 잡지 못하고 있고, 일부 부동산 전문가들은 이를 이용해 자신들의 잇속을 챙기고 있었다. 어느 모로 봐도 정상인 부분이 없었다.

소위 ‘부동산 투자’로 돈 좀 만졌다는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쓴 소리까지 늘어놓는다. ‘나는 주말까지 반납하면서 하루에 9시간씩 공부하고 임장 다니면서 돈 버는 거다. 너희들은 노력도 안하면서 부자들만 욕하고 앉아있는 거다.’

물론 타당한 비판일 수 있다. 그들의 노력을 폄하할 생각은 없다. 사실 기자도 그들처럼 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그런데 세상에는 그런 노력을 할 짬조차 낼 수 없는 어렵고 힘든 사람들도 많다.

단적인 예로 얼마 전 대한민국 복지 시스템의 취약성을 재확인시켜준 ‘방배동 모자’나 ‘송파 세 모녀’의 안타까운 사례들이 그러하다. 그들은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삶을 살 수 밖에 없었던 것일까?

이렇다보니 아예 유치원생 나이대의 아이들을 임장에 동행시키거나 부동산 공부를 시키는 등의 ‘부동산 헬리콥터 부모’까지 나타나고 있다.

심지어 기자가 한 견본주택 취재 현장에서 만난 한 부모는 아이에게 견본주택 안내원을 가리키며 “너 공부 열심히 안하면 집 못 사고 저렇게 되는 거야”라는 몰지각한 말을 다 들리게 내뱉었다. 귀를 의심했다. 저런 가정교육을 받고 자란 아이는 과연 어떤 어른으로 자랄까.

정부의 유주택자-무주택자 ‘갈라치기식’ 정책에 무주택자들이 가진 다주택자들에 대한 막연한 증오와 분노도 늘어가고 있다.

정부는 ‘공급확대’라는 쉬운 길을 놔두고 먼 길을 돌아가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규제 완화 등이 또 다른 투기를 부를 것이라는 우려다.

지난 사례들을 비쳐본 결과겠지만, 작금의 정부는 공급정책에 지나치게 인색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격이다.

부동산에 매몰된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점점 이성을 잃고 괴물이 되어가고 있다. 수요자, 투자자, 입법부, 행정부 모두 마찬가지다.

지금 대한민국 부동산을 보다보면 미래에 대한 장밋빛 희망보다는 염세주의만 싹튼다.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은 정보 과잉의 시대 속 냉정을 잃었다. 언론도 책임이 없지 않다.

정부의 부동산정책이 올해 대다수 실패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필요 이상의 시장 불안을 조성할 필요는 없다. 팩트를 전달하고, 나라가 보다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언론의 역할일 것이다.

냉정을 찾아야 한다. 정부는 여론에 휘둘려 땜질식 처방을 내놓는 것이 아닌 근본적 대책 마련을 위해 힘을 집중해야 할 것이고, 시장도 흥분을 가라앉히고 이성적인 대응을 해야 한다.

집은 ‘사는(living)’ 공간이지 ‘사는(buying)’ 공간이 아니라는 말이 있다. 부동산은 결국 삶의 작은 한 부분일 뿐,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신축년 새해는 많은 사람들이 그 점을 되새기는 한 해가 되길 소망한다.

장호성 기자 hs6776@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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