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금융권에 따르면 라임펀드를 비롯해 옵티머스펀드, 독일 헤리티지 파생결합증권(DLS), 이탈리아 헬스케어펀드, 디스커버리펀드, 팝펀딩펀드, 젠투펀드, 아름드리펀드, 해외 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 등 부실 사모펀드와 관련한 금융감독원의 분쟁조정이 예고돼있다. 라임펀드만 놓고 봐도 분쟁조정이 이뤄진 무역금융펀드(플루토 TF-1호) 외에도 크레딧 인슈어드(CI) 1호, 플루토 FI D-1호, 테티스 2호 등의 모펀드가 있다. 자펀드는 173개로, 약 1조7000억원 규모다.
금감원 분조위는 지난 6월 30일 우리은행 등 라임 판매사들이 2018년 11월 이후 판매한 무역금융 펀드의 투자원금을 전액 반환하라는 권고안을 냈다. 금융사 배상 여부에 대한 최종 결정권은 이사회에 있다. 당시 해당 판매사들 이사회는 전액 배상권고를 수용할 시 형법상 배임 문제와 타 펀드 이슈에 미칠 영향 등을 두고 고심을 이어갔다. 이 과정에서 일부 사외이사들이 반대 의사를 내면서 의견 합치에 어려움을 겪었다. 사기행위가 입증되지 않은 사안까지 배상할 경우 배임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컸다. 분조위 결정대로 판매사가 책임을 모두 떠안는 게 옳은지에 대한 이의 제기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판매사들은 결정 시한을 한차례 연기하며 법리검토를 거친 끝에 소비자 보호를 명분으로 분조위 권고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금감원이 ‘편면적 구속력’ 등을 언급하며 압박 카드를 꺼낸 점도 부담으로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편면적 구속력은 소비자가 분조위 조정안을 수락하면 금융사들은 무조건 이를 수용하도록 강제하는 제도다.
무역금융펀드는 전액 배상 결정으로 일단락됐지만 금융사 이사회는 내년에도 진통을 겪을 전망이다. 해결되지 않은 사모펀드 현안이 산적하기 때문이다. 금감원은 지난 10월 손해액이 확정되지 않은 사모펀드도 추정 손해액을 바탕으로 분쟁조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추정 손해액을 기준으로 분쟁조정을 진행해 우선 배상하고 추가 회수액이 발생하면 사후 정산하는 방식이다.
금감원은 KB증권이 판매한 '라임 AI스타 1.5Y 전문투자형 사모투자신탁 1~3호'와 우리은행이 판매한 '라임 플루토 FI·라임 테티스 2호’와 관련한 분쟁 조정을 다음달까지 마무리한다. 금감원은 최근 이들 판매사에 대해 분쟁조정을 위한 3자 면담 등 현장조사를 마쳤다. 내·외부 법률 자문을 통해 판매사의 배상 책임 여부와 배상 비율 등을 결정하고 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를 거쳐 조정안을 확정할 예정이다.
금융사 사외이사들 사이에서는 이사회에 사모펀드 배상과 관련한 안건이 올라올 것을 두고 벌써부터 한숨이 깊어지는 분위기다. 앞서 NH투자증권 이사회는 옵티머스펀드 환매중단 사태와 관련해 투자자에게 가입 규모별로 30~70%로 차등해 자금을 지원하는 유동성 공급안을 의결했다. 여섯 차례 논의 끝에 낸 결론이다. 이사회 내부에서는 주주가치 훼손 여부 등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졌는데, 이사진 다수가 선지원 방안에 난색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와중에 사외이사였던 박상호 삼일회계법인 고문과 비상임이사였던 이정대 전 농협자산관리 대표가 중도 사임하는 일도 발생했다.
은행들은 배임 문제를 들어 분조위의 외환파생상품 키코(KIKO) 배상권고를 수용하지 않고 있다. 민법상 손해액 청구권 소멸시효가 지난 만큼 배상이 이뤄지면 주주 이익을 해치는 배임에 해당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 금융사 사외이사는 “사모펀드 배상안은 여러 가지 각도에서 봐야 하기 때문에 판단이 어려워 부담이 큰 게 사실”이라며 “주주 이익 보호, 배임 문제 등을 고려해야 하다 보니 최소 두 곳의 법무법인에서 의견서를 받고 수차례 회의를 열어 신중에 신중을 거듭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아란 기자 aran@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