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총재는 25일 서울 중구 한은 본관에서 열린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말한 뒤 “이번 위기가 진정되면 확장적인 조치들을 단계적으로 정상화해 나갈 방안에 대해서도 미리 준비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 총재는 “코로나19의 전세계적 확산은 단순히 경기침체를 초래하는데 그치지 않고 경제주체의 행태와 경제구조에 큰 변화를 불러올 것으로 예측된다”며 “물가는 코로나19가 진정된 이후에도 상당기간 저인플레이션 기조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 총재는 “역사적 경험에 비춰 볼 때 위기상황에서 대규모 해고라든가 매출 급감을 경험한 경우에는 극단적 위험회피 성향을 갖는 이른바 슈퍼 세이버(super saver)가 증가할 수 있다”며 “이러한 경우 해당 경제주체의 재무건전성은 개선될 수 있으나 경제 전체적으로 성장의 한 축이라 할 수 있는 소비와 투자의 회복이 더뎌지고, 이는 다시 물가를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비대면 온라인거래의 확산은 거래비용을 절감하고 업체 간 경쟁을 주도해 이 또한 물가를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내다봤다. 감염병의 확산으로 생산차질을 경험한 기업들이 무인화나 자동화를 확대할 가능성도 물가 하방압력을 강화시키는 요인으로 꼽았다.
다만 물가를 높이는 요인도 상존하고 있다는 게 이 총재의 판단이다. 이 총재는 “크게 확대된 유동성이 코로나19가 진정된 이후 억압됐던 소비의 회복과 결합될 경우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이에 더해 리쇼어링(reshoring), 역내 교역강화, 인적교류 제한 등에 따른 기존의 글로벌 공급망 약화도 물가상승압력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올해 1월 중 1%대 중반을 기록했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월 이후 빠르게 둔화돼 4월 중 0.1%로 낮아진데 이어 5월에는 –0.3%를 기록하면서 물가안정목표인 2%를 크게 하회했다. 이에 대해 이 총재는 “경제활동 위축에 따른 원유 수요 감소로 인해 국제유가가 큰 폭으로 하락했고 수요측면에서도 사회적 거리두기의 영향으로 여행, 숙박, 외식서비스를 중심으로 물가상승압력이 약화됐다”며 “이에 더해 무상교육 확대라든가 개별소비세 인하 등 정부의 사회보장강화 및 소비촉진책이 추가적으로 물가를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향후 물가여건을 살펴보면 최근 주요국의 경제활동이 일부 재개됐으나 코로나19 재확산에 대한 우려가 여전히 높아 국내외 경기와 국제유가의 회복세는 완만할 것으로 판단된다”며 “이에 따라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당분간 0% 내외의 낮은 수준을 나타낼 것으로 예상되고, 내년 이후에는 국제유가 하락의 영향이 사라지는 가운데 경기가 점차 개선되면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올해보다 높아질 전망이나 목표 수준으로 수렴하는 속도는 상당히 더딜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이 총재는 또 “코로나19 확산 이후 경기침체와 물가상승률 급락에 대응해 통화정책을 더욱 확장적으로 운용하면서 주요국 금리는 실효하한에 근접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면서 “향후 한은은 현행 물가안정목표제의 기본 틀을 유지하면서 통화정책의 유효성를 제고하기 위한 방안을 개발해 활용하는 한편 물가안정목표제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적 통화정책체계도 국제논의를 참조해 가면서 모색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한아란 기자 aran@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