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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민 칼럼) 2020년 봄 통화당국의 표변과 시장에 맞서는 난제

장태민

기사입력 : 2020-04-08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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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한은 기준금리 변동 추이

자료: 한은 기준금리 변동 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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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금융신문 장태민 기자] "연준에 맞서지 마라(Don't fight the Fed)"
월가에서 유명했던 이 격언은 중앙은행의 정책에 순응해야 투자의 세계에서 살아 남을 수 있다는 의미로 사용되곤 했다.

이 말은 미국 외의 다른 나라에선 '중앙은행에 맞서지 마라'는 말로도 투자자들 사이에서 회자됐다.
하지만 시대가 상당히 변했다.

이 격언 대로 하면 투자의 세계에게 다치기 좋은 시대라는 평가도 많다. 연준이나 한은과 같은 중앙은행이 시장에 맞서기 쉽지 않은 것이다.

시장이 요구하면 사탕이든, 떡이든 내줘야 한다. 사실상 중앙은행이 시장을 뜻을 거슬리기 어려운 시대가 도래한 지는 오래됐다.

이런 밀월관계는 일반인조차 아는 듯하다. 개인사업을 하는 한 친구는 지난 3월 한은이 긴급하게 기준금리를 50bp 인하했을 때 이렇게 반응했다.

"채권시장의 한은 압박이 너무 심하다고 생각했어. 역시나 금리가 큰폭으로 인하됐더구만. 왜 중앙은행이 시장 말만 듣는 거야? 한은은 마치 사탕을 안 준다고 아이가 땡깡 피우니 사탕을 더 주면서 장난감까지 사주는 부모의 모습 같다고나 할까."
■ 이제 중앙은행 사람들도 의식할 수 밖에 없는...'채권시장에 맞서지 마라'

미국 연준은 시장에 굴복해 '제로금리' 시대로 돌아갔다.

미국 이자율 시장은 상당기간 연준의 예상이 담긴 '점도표' 상의 금리인하폭 이상의 인하를 예상하고 있었다.

이후 코로나19라는 중국 우한발 바이러스가 세계를 전염시키기 시작하자 '과도했던' 예상은 너무나 쉽게 실현되고 말았다.
연준이 3월에만 기준금리를 150bp 인하하면서 제로금리에 돌입하기 전 골드만삭스 등 몇몇 금융사들이 연준이 금리를 제로로 낮출 수 밖에 없다고 예상을 했다.

주변에선 '과하다'는 평가를 내리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으며, 연준도 한동안 조심스런 입장을 취했다.

하지만 연준은 사람들의 생각보다 일찍 0%대 기준금리 시대와 양적완화 재개를 선언했다.

연준이 3월 15일 일요일에 금리를 100bp 내린다고 발표하자 국내 채권시장 등 이자율 시장 사람들은 예외없이 한은을 쳐다봤다.

수출 국가 한국의 통화정책은 상당부분 미국 등 주요 선진국에 종속돼 있기 때문이었다. 세계가 얽혀 있다보니 스필오버 이펙트도 감수해야 하고 다른 나라 통화정책에 따른 환율 변동 등도 문제가 된다.

한은은 2월 금통위까지 부동산 문제와 같은 금융안정을 내세워 금리를 동결하더니 결국 후퇴했다. 당초 3월엔 금리결정회의가 없었지만, 한은은 시장 등 주변의 압박 속에 임시 회의를 열더니 기준금리 0%대 시대에 동참했다.

■ 한은은 늘 맷집 없는 복서였다

한은은 2001년 9월 19일(50bp), 그리고 2008년 10월 27일(75bp) 임시 금통위 회의에서 금리를 인하한 적이 있다.

그리고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2020년 3월 16일 임시 금통위를 열고 금리를 0.75%로 50bp 내렸다. 역대 최저 기준금리 1.25%가 0.75%로 경신되는 순간이었다.

채권시장 관계자들이 0%대 기준금리 시대를 시간의 문제로 봤던 가운데 한은은 1분기를 버티지 못한 것이다.

0%대 기준금리 시대는 한국경제 비관론자들의 승리이기도 하다. 얼마 전까지도 성장률 3%가 '낮다'고 핀잔을 주던 사람이 많았지만, 이제 2% 성장도 감지덕지한 시대가 됐다는 평가도 많다. 올해는 특수한 해로 일단 마이너스 성장 전망도 많아졌다.

아무튼 금리를 내리지만 경기 부양효과는 별로 없고 그럼에도 항상 금리를 더 내려야 하는 악순환의 쳇바퀴는 올해도 돌아가고 있다.

이런 구도에서 '예상치 못한 전염병'이 발생하면서 금리는 생각보다 빨리 내려간 것이다. 한국은행은 선진국보다 기준금리가 높아야한다고 했지만, 이 해답 없는 금리인하의 쳇바퀴는 어쩌면 0%선까지 가서야 멈출지도 모른다.

한은은 늘 고집을 부리다가도 주변 눈치를 보면서 행동해 온 퇴행적인 플레이어였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시대가 평온하면 매파성을 보이면서 강한 척 하지만, 결국 어느 누구도 휘어잡지 못하는 나약한 플레이어의 이미지로 그려지기도 했다. 또 한은이 매의 탈을 쓰고 기개를 떨치는 듯하다가도 시장의 압력에 굴복하는 패턴을 반복해 온 탓에 맷집 없는 복서처럼비춰지기도 한다.

이자율 시장의 투자자들이 한국은행에 '맞서서' 금리 인하를 끌어낸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한은 총재가 매파적 발언을 하더라도 시장이 한은에 맞서면 고수익이 따라오는 경우가 많았다. 과거에 비하면 낮아진 금리 레벨 때문에 별로 먹을 게 없는 2020년에도 이런 역사는 재연되고 있다.

■ 2013년의 추억..한은은 시장과 정부의 협공엔 못 버틴다

대략 2013년 3월 중순 전후한 시점.

당시 김중수 한은 총재의 '추가 금리 인하 없다'는 입장은 송골매처럼 강건했다.

그 시절 김중수 한은 총재는 2012년 7월, 10월 금리인하가 선제적이었다고 밝히면서 정책효과를 점검 중이라고 했다. 시장이 정책조합을 거론하면서 금리도 내리라고 하자 '경제분석'이 우선이라며 버텼다.

한은은 저금리 장기화의 부작용이나 저금리가 또다른 버블을 일으킬 가능성을 거론했다. 그런데 그 시절에도 지금처럼 추경이 사회 이슈였다. 추경을 10조원 정도는 해야 한다는 말이 많을 때였다.

시장은 한은이 정부의 구애에 약하다는 점을 알았다. 당시 박근혜 정부가 직면한 상황과 경기부진을 감안할 때 한은이 보조를 맞춰서 펌프질을 해줘야 할 것이란 전망이 강했다.

'MB맨' 김중수 총재는 이명박 정권시절 통화정책 수장을 꿰찬 인물이었다. 하지만 임기 후반부엔 기준금리를 낮추고 싶어하지 않았다.

사실 모든 중앙은행 총재는 경기가 좋아진 상황에서 퇴임하고 싶을 것이다. 자신의 임기 중 금리를 낮췄다면 이후 경기가 좋아진 뒤 금리 인상도 해보고 퇴임하길 원할 것이다. 다만 채권시장과 정부가 모두 금리인하를 원한다면 이 같은 임기 말년의 바램은 실현되지 않는다.

한은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진정된 뒤 2010년 7월부터 2011년 6월까지 5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올렸다. 하지만 유럽 국가들의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서 2012년엔 금리를 2차례 내려야 했다. 김중수 총재는 2013년엔 금리를 그만 내리고 싶었으나 결국 그해 5월

회의에서 금리를 내려야 했다.

시장, 그리고 정부가 원하면 금리는 내려가는 것이다. 금리인하 논리는 상황에 맞춰 바꾸면 그만이다. 시장은 2013년 4월 금리를 내리라고 한은을 압박했고 한은은 한달을 버틴 뒤 5월에 금리를 인하했다.

한은의 2019~2020년 시즌은 지난 2012년~2013년 시절과 비슷한 면이 있다. 한은은 2019년 7월과 10월 금리를 내린 뒤 2020년 봄에도 금리를 내렸다. 한은은 버티려고 했으나 되지 않았다.

그 때처럼 시장이 밀어붙였고 정부도 한은에 인하를 바랬던 장면이 오버랩된다.

■ 단시간에 너무 달라져버린 한은 분위기

2020년 2월 27일 금통위 금리결정회의.

한은은 시장의 금리인하 압박에 버텼다. 코로나19라는 중국 전염병 때문에 채권시장 사람들은 한은에 금리인하를 요구했다.

인하를 예상했던 채권시장은 한은에 카운트 펀치를 맞았으나 쓰러지지 않았다. 한은은 금리인하 대신 금융중개지원대출을 5조 늘리면서 대응했다.

이주열닫기이주열기사 모아보기 총재는 금리동결 배경과 관련해 "가계부채가 여전히 높고 주택가격이 안정되고 있다고 확신하기 어려운 만큼 금융안정에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면서 기준금리 카드를 아낀 배경을 설명했다.

총재는 특히 "금융안정을 정부의 거시건전성 정책만으로 해결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로 인한 서울 아파트 가격 폭등으로 서울 내 가계들간 계급이 확실히 그어진 뒤 한은은 1월에 이어 부동산 문제에 신경을 쓰는 듯했다.

하지만 시장에선 4월엔 금리인하(당시만 해도 3월에 임시 금통위를 예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가 단행될 것으로 보는 시각이 강했다.

2월 금통위 당시 채권시장엔 대략 이런 반응은 많았다.

"한은의 경기전망이 너무 낙관적이고 나이브하다. 코로나 사태가 얼마나 빨리 개선되느냐가 중요하지만, 추경으로 경기 방어에 나서더라도 상황 개선이 쉽지 않아 보인다. 4월 금리 인하 기대감이 없어질 수가 없다."

하지만 동시에 한은이 보여준 결기 있는 태도를 응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한은의 결기를 곧이 곧대로 믿으면 안 되는데도, 늘 한은의 순수한 의지를 믿어주는 마음씨 좋은 사람도 있었다.

"금리인하의 경기부양 효과보다 서울 아파트 가격 자극 우려 등 부작용이 클 수 있다는 한은의 의견을 존중한다. 별 효과도 없는 금리인하로 악영향이나 키우지 않길 바란다."

하지만 상황은 급변했다. 코로나19로 연준이 제로금리를 선언하자 한은의 매파성이 거짓말처럼 다 사라져버렸다.

불과 2주 남짓 전 한은 총재의 보였던 결기는 온데간데없었다. 이주열 총재는 부동산에 대한 말을 바꿨다.

"정부가 부동산 안정을 위한 노력을 많이 한다. 단기적으로 부동산 가격이 상승세를 이어가기 어렵다. 주택가격엔 금리 외에도 정부정책, 경기, 교육상황, 수급 등 다양한 요인이 작용한다."

이 총재는 금융안정을 거시건전성 정책만으로 해결하지 못한다고 했으나 그런 태도를 이제 버려야 했다. 금리를 동결하든 인하하든 논리는 언제나 넘치는 법이다.

이자율 시장 플레이어들 중엔 중앙은행에 대해 '한 수 아래'라면서 우쭐거리는 사람도 있었다. 또 거친 플레이어들 중엔 버티지도 못하는 주제에 엉뚱하게 결기를 세웠다고 한은을 비난하기도 했다.

■ 반복되는 역사..추경 나오거나 정부에 불려가면 금리인하 의심해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3월 13일 이례적으로 대통령이 주재하는 경제금융 점검회의에 참석했다.

임시금통위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 총재가 청와대 쪽으로 불려간 것이다.

그 시절 문재인 대통령은 '전례 없는 대책'을 언급했다.

추가경정예산이 그달 17일 통과될 것으로 예상되던 상황에서 대통령은 자신의 직계 뿐만아니라 방계까지 불러들여 경기를 위해 무슨 카드를 내놓을 수 있는지 물었을 것이다.

총재가 청와대에 불려가거나 대통령을 만나면 중앙은행은 뭔가 선물을 해야 한다. 모든 정부는 중앙은행이 금리를 내려 펌프질을 해주길 원한다.

결국 2008년 금융위기 뒤 한은의 보였던 '빅컷'의 역사가 재연됐다.

지난 2008년 10월 이성태 한은 총재는 청와대 경제장관회의에 참석한 뒤 임시 금통위를 열었다.

당시 이성태 총재는 금리 인하가 내키지 않았지만, 정부의 압력에 75bp라는 큰 폭의 금리 인하를 선물해야 했다.

이 사건은 아직까지도 회자되는 한은의 흑역사 중 한 장면이다.

역사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정부가 원하면 한은이 들어준다는 것을 안다. 시장이 압박하면 한은이 버티다가 꼬리를 내린다는 점도 안다.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기준금리의 실효하한에 대해 한은은 구체적으로 답하지 않는다. 그들은 적어도 선진국 기준금리보다는 높아야 한다고 한다.

실은 실효하한에 대해 그들도 잘 모른다. 채권시장이 여기서도 더 원하면 어떻게 해야할까. 애매할 때 채권시장은 밀어 붙이면 된다. 한은이 시장과 정부의 압박, 그리고 주변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는 조직이라는 사실은 이미 역사가 증명했다.

속된 말로 채권시장은 이제 거의 다 해먹었다. 마지막까지 탈탈 털어서 좀 더 해먹고 나면 한국은 지금보다 더 경제 활력이 떨어진 나라가 돼 있을 것이다.

금리를 내렸고 경기부양 효과는 별로 없었다. 효과가 별로 없으니 주변에선 더 내리라고 했다. 한은은 그 뜻을 충실히 따랐을 뿐이다.

늘 눈치도 보고 주변 분위기를 살피면서 지내야 했던 한국의 중앙은행, 한은은 이와 같은 성실함으로 한국경제의 한 축을 담당했다.

■ 蛇足

한은이 3월 임시 금통위에서 금리를 50bp나 내린 만큼 시장은 당장(4월 9일) 또 내리라고 윽박지르지는 않고 있다. 금리 인하를 기대하는 시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엔 강하게 추가인하를 요구하지 않고 있다.
대신 최근 이주열 한은 총재가 '비은행금융기관 대출'을 언급한 만큼 증권사 대출 등과 관련한 조치가 나올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한은은 '비은행금융기관 대출' 언급과 관련해 상황이 더 안 좋아졌을 때를 대비하는 차원이라고 했다.

실물경제가 더욱 어려워지면 회사채 시장이 망가질 수 있는 만큼 한은 입장에서도 준비를 해야 한다. 또 시장에도 자신들이 여차하면 크레딧 리스크 완화를 위한 카드를 내놓을 수 있다는 점을 알릴 필요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장태민 기자 chang@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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