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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민 칼럼) 한국형 양적완화에 드리운 민주당의 그림자

장태민

기사입력 : 2020-04-01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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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금융신문 장태민 기자] 1. 나는 한국은행 부총재가 최근 한은 조치를 '양적완화'로 볼 수 있다고 한 것에 동의한다.

2. 시급한 단기금융시장에 '무제한' 유동성을 공급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깜짝 놀랄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3. 일부에서, '양적완화는 단순(outright) 매입으로 하는 것이지, 환매조건부(repurchase) 매입은 해당없다'거나, SPV 설립해서 회사채와 CP를 매입하지 않았으므로 양적완화 아니라거나, 하는 얘기는, 한은의 더 적극적인 역할을 기대하는 충정이겠으나, 동의하지 않는다.

4. 중앙은행이 단순매입을 해도 그 자체로 영원히 가는 건 아니다. 만기도래하면 정책적 필요에 의해서 상환금액을 회수하거나, 그만큼 다시 매입한다. RP 역시 만기시에 필요하면, 계속 롤오버하거나 거래를 종료할 수 있다. 질적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5. 채안펀드를 통한 회사채 및 CP매입하는 것과 SPV를 통해 회사채 및 CP를 매입하는 것 사이에도 질적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채안기금은 민간 금융기관만이 참여하나, 필요시 한은이 과거 유사사례보다 더 적극적인 방식으로 참여하리라 예상한다. (이미 한은과 정부는 이에 필요한 재원의 절반을 한은이 채울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6. 그런 점에서 한은을 '양적완화의 정의도 모르는 무식한 놈', '정의를 왜곡한 나쁜 놈', '일 안하면서 일하는 척 시늉만 하는 뺀질이' 등으로 묘사하는 것에는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 여당 정치인 신현호의 한은 옹호

위의 글을 쓴 사람은 더불어민주당 정책조정실장으로 일하고 있는 신현호씨다. 신씨는 28일 저녁 위와 같은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삼정KPMG의 파트너 등으로 일하다가 현재 집권 여당에서 근무하고 있다. 경제 관련 정책 등에서 목소리를 내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신 실장이 위와 같은 글을 쓴 이유는 '한은 종사자가 아니니 한은의 공식적인 입장일리 없지만, 그래도 엄청나게 힘든 상황에서 불철주야 대책을 준비한 한은의 동료들에게 고마움이라도 표시하기 위해서'다.

집권 여당의 정책, 특히 경제정책 파트에서 일하는 사람이 한국은행에 고마움을 표한 것이어서 매우 낯설다.

또 한은이 지난주 발표한 '무제한 RP 매입'에 대해 '가짜 양적완화'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 대한 재비판 성격도 있다.

아무튼 정치인이 이런 논쟁에 뛰어든 게 신선했다.

■ 서울대 경제학과 동기의 입담 대결

신 실장이 양적완화 논쟁에 뛰어든 이유는 외국계 금융사에서 근무하는 자신의 대학 동기에게 자극을 받았기 때문으로 보였다.

한은이 무제한 RP 매입을 발표한 뒤 소시에떼제네랄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는 오석태씨는 다음과 같은 평가를 내렸다.

"국채 매입이 아닌, 달랑 3개월짜리 RP를 하면서 양적완화라고라?

기준금리 더 안 내리겠다는 의지 표명?

Still the most hawkish central bank in the world!

cf. 기본적으로 RP는 양적완화가 아닙니다. 양적완화에 따른 자산 매수에는 '환매조건'이 붙지 않습니다. 저 쌍무식한 한국은행 인간들!!!!!!

그렇게도 금리 내리기가 싫습니까!!!!!

아직도 부동산 타겟팅이죠? 그렇죠?

아니면 정말로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기 싫습니까???

Quantitative easing (QE) is a form of unconventional monetary policy in which a central bank purchases longer-term securities from the open market in order to increase the money supply and encourage lending and investment. (Investopedia)"

외국계 금융사에서 애널리스트로 오랜기간 일한 오씨는 소위 '한국판 양적완화'에 대해 강도높은 한은 비판과 함께 '아니다'라는 주장을 펼친 것이다.

이에 오씨의 서울대 경제학과 동기이자 친구인 '정치인' 신씨가 한은을 거들고 나선 것이다.

■ 한은의 '한국판 양적완화' 발표 전 있었던 일..여당 원내대표의 '예고'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페이스북을 통해 자신의 말처럼 한은이 한국형 양적완화를 했다는 사실을 홍보하고 있다.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페이스북을 통해 자신의 말처럼 한은이 한국형 양적완화를 했다는 사실을 홍보하고 있다.



한은이 한국형 양적완화를 발표하기 전인 24일.

이날 정부의 제2차 '비상경제회의'가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청와대에서 열리는 가운데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불쑥 '한국판 양적완화' 얘기를 거론했다.

이 원내대표는 "정부 정책이 사실상 한국형 양적완화 수준까지 나갈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코로나19 재난극복위원회에 참석해 "코로나 이후 전 세계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전례없이 커지면서 각국 주식 및 외환시장이 요동친다"면서 "금융시장을 통한 자본조달이 막혀 어제 미 중앙은행은 무제한 양적완화를 선언했다"고 지적했다.

여당의 원내대표는 금융 불안이 중견, 대기업까지 파급되는 만큼 전방위적인 안정정책이 필요하다면서 한은이 '정책적 묘수'를 찾아낼 것을 주문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는 당시 "오늘 발표하는 정부 정책이 사실상 한국형 양적완화 수준까지 나갈 것을 기대한다. 이번 정책 이후에도 시장 불안정성이 회복될 때까지 정부와 한국은행 등이 가용 가능한 정책을 발굴하고 과감히 도입하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당시 이주열닫기이주열기사 모아보기 한은 총재는 청와대에서 열린 1차, 2차 비상경제회의에 모두 참여하면서 '가능한 모든 것을 테이블 위로 올려두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아무튼 여당 실력자의 발언에 한국은행의 귀는 어지간히 간지러웠을 법했다.

결국 2일 뒤인 26일 한국은행은 매주 1회 RP 91일물을 무제한 매입해 주기로 했다.

한은의 '예상을 뛰어넘는 조치'는 여당이 분위기를 잡은 뒤 나온 것이었다.

■ 한국판 양적완화에 드리운 여당의 그림자

여당의 경제관련 브레인 중 한 사람이라는 신현호 실장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 대한 사연을 들어보고 싶었다.

정치인이 한국판 양적완화 '개념 논쟁'에 뛰어든 셈이어서 신 실장에의 답변이 궁금했다. 그는 일단 자신이 밝혔듯이 한은의 수고를 평가하고 싶었다고 했다.

"한은이 취한 과감한 행동이 '필요하고 적정한' 정책이라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 의미가 축소되거나 폄하되지 않도록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더 궁금한 것은 '여당의 역할'이었다. 여당이 '한국형 양적완화'를 거론한 뒤 한은이 조치를 취한 만큼 모종의 결탁(?)이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이었다.

우선 여의도 정치판에서 일하는 한 인사의 말을 들어봤다.

"신현호 실장의 판단이 2차 비상경제회의 당시 이인영 원내대표의 발언에 녹아 있다고 봅니다. 신 실장이 여당에서 경제학 박사 과정을 마친 드문 경제통이기도 하고요. 혹시 신 실장의 아이디어가 한은에 접목된 거 아닐까 하는 의심도 해 봤습니다."

다만 여당 정치인이 한은에 아이디어를 줬다거나, 둘이 '내통'했다고 하면 한은 입장에선 자존심이 대폭 상할 노릇이었다. 또 지나친 억측을 하는 것은 정신 건강에 좋지 않다.

한국형 양적완화와 관련해 한은과 논의를 했냐는 질문에 신 실장은 '매우 강력하게' 부인했다.

"한국에선 (어느 나라보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중요한 가치로 평가받고 있죠. 미국, 유럽, 일본에선 정부와 자연스럽게 통화도 하는데, 우리는 있을 수 없는 일처럼 여겨지고 있어요."

신 실장은 한국 중앙은행의 경우 독립성 때문에 '감히' 말 붙이기 쉽지 않다는 투로 답을 했다. 그러면서 한은과 여당이 논의를 해서 이같은 결정을 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억측에 불과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여의도 정치권 인사는 좀 다른 말을 했다.

"이번 무제한 RP 매입을 민주당이 한은에 제안한 건 아니라고 봅니다. 하지만 여당과 한은이 소통을 계속해 왔으며, 한은이 무슨 고민을 하는지도 알고 있었다고 봅니다."

■ 한국형 양적완화와 미씽링크

사실 한은이 26일 3개월 RP 무제한 매입을 발표했을 때 상당히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발표 직후 한은의 공개시장운영을 담당하는 권태용 시장운영팀장에게 "사실상 최소 3개월 양적완화 성격 아니냐"는 질문을 던졌고 권 팀장은 "그렇게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반드시 미국과 같은 조치를 취해야 '양적완화'라는 표현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봤기 때문에 이런 질문을 던진 것이었다.

미국처럼 기준금리를 제로 수준으로 내리고 국채를 매입해야 줘야 양적완화라는 단어가 빛이 날까.

이번 한은의 조치를 보면, RP는 3개월 후 자금을 회수한다. 국채 매입은 국채 만기 때 자금을 거둬들이거나 국채 매각 때 회수할 수도 있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 돈은 회수된다.

이 논리로라면 남는 건 '시간의 문제'다. 그런데 한은은 3개월 후에 '연장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이러다 보니 한은의 무제한 RP매입을 '한국형' 양적완화로 불러도 될 듯했다.

엄밀히 말하면 '진정한' 양적완화는 발권력을 동원해 돈을 찍어 뿌리는 '헬리콥터 머니' 밖에 없다고 볼 수 있다.

아무튼 양적완화의 기준을 어떻게 잡는가에 따라서 다른 얘기를 할 수 있다. 때론 용어의 정밀함이 필요하지만, 언어를 특정 틀에 가둬버리면 실제 현실을 파악하는 데 방해가 될 수도 있다.

사실 한은의 무제한 RP매입이 양적완화냐는 논쟁이 별로 쓸모 없이 느껴지기도 한다. 실익은 없고 미국이나 일본이 '용어의 특허권'을 요구하지도 않을 듯하다.

오히려 여당의 중앙은행에 대한 '요구'가 상당히 거칠어 보였고, 한은도 매우 적극적으로 대책을 내놓았다는 점에 관심이 간다. 향후 정책결정에서도 이런 패턴이 다시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양적완화 개념 정립보다 이번 한은의 결정과 관련한 '미씽링크'(missing link) 존재 여부가 더 관심이 간다. 성격이 좋은 편이 못 되다보니 의심을 거두기 어렵다.

장태민 기자 chang@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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