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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민 칼럼) 한국판 양적완화의 탄생

장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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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0-03-26 15:23 최종수정 : 2020-03-26 17:44

[한국금융신문 장태민 기자]

한국은행이 매주 1회 RP 91일물을 무제한 매입해 주기로 하면서 금융시장에선 '예상을 뛰어넘는 조치'라는 평가들이 많다.

한국은행은 과거의 그들 답지 않게 상당히 적극적으로 나오고 있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최근 청와대에서 열린 1차, 2차 비상경제회의에 모두 참여하면서 '가능한 모든 것을 테이블 위로 올려두겠다'고 했다. 한은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라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은은 채권시장 등 금융시장이 안정되지 않으면 추가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입장도 보이고 있다.

한은에 대해 신중하고 보수적인 집단이라고 보던 사람들 사이에 '당황스럽다'는 평가들도 많았다.

특히 1997년 IMF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금융시장에서 몸으로 체험했던 사람들 사이에선 한은이 너무 변해 당황스럽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 금융위기 겪어본 베테랑들이 보는 한은 사람들의 변신

지난 2008년 금융위기 당시 한은이 채권시장안정펀드에 유동성을 댈 때 말들이 많았다.

당시 한은의 표정은 상당히 어두웠다. 주변에선 한은이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는 것 같다는 평가들을 하곤 했다.

그런데 이처럼 과거의 만들어진 이미지는 현실을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되기도 한다. 적지 않은 금융시장의 베테랑들이 최근 한은의 조치에 크게 놀라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경제에 큰 타격을 입히고 있지만, 한국 중앙은행이 특유의 보수성을 벗어던졌기 때문에 당황스러워 하는 것이다.

IMF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를 겪었던 한 베테랑 채권딜러는 이런 말을 했다.

"놀랍습니다. 담보물 하나하나 꼼꼼히 챙기던 한은 아니었나요? 정말 그들이 많이 변한 것 같습니다. 코로나19 위기 때문이라고 하나 분명 예전에 보던 그들이 아닙니다."

한은은 RP 매매 대상 증권사를 대폭 늘리고 RP 매매 대상 채권에 한전 등 공공기관들이 발행하는 채권까지 포함시켰다. 코로나19라는 전염병이 모든 것을 용납하는 상황이 됐다는 말도 나온다.

또 다른 베테랑 채권 매니저는 이런 말을 했다.

"예전 같았으면 주변에서 비판하는 사람 때문에 한은이 이런 조치를 하지 못했을 겁니다. 증권사 뿐만 아니라 한은의 도덕적 해이에 대한 비판도 많았을 것이고요. 하지만 코로나19 앞에 이런 비판들은 약해졌고 한은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돼 버렸습니다."

한은의 적극적인 대응에 대해 응원하는 모습도 보이지만, 오래된 사람들, 즉 베테랑이라고 불리던 금융시장의 노병들 사이에선 고개를 갸우뚱하는 모습들이 적지 않게 보였다.

■ 매우 적극적인 캐릭터로 변한 한은맨들

윤면식 한은 부총재는 이날 '유례없는 한국판 양적완화'에 대해 "한은이 경제금융 상황을 상당히 심각하게보고 조치를 취한다는 연장선상에서 생각하면 된다"고 간단하게 정리해 버렸다.

이게 끝은 아니다. 시장의 흐름이 원활하지 않을 때 한은은 더 내놓은 생각까지 하고 있다.

윤 부총재는 "앞으로 상황 전개에 따라 시장이 더 불안해지거나 진정되지 않고 악화되면 별도의 추가 조치를 강구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미국이 한다고 한국이 다 따라할 필요는 없다. 기축통화국이 아닌 나라 입장에선 최강 선진국의 행태를 모두 모방하다가는 시스템 위기를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시장 일각에선 회사채 같은 리스크가 큰 채권을 매입해 달라는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한은법 68조는 한은이 자기계산으로 매매할 수 있는 증권에 대해 원리금 상환을 정부가 보증한 유가증권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에 대한 윤 부총재의 답은 다음과 같았다.

"저희가 좀 더 자유롭게 유통되고 발행조건이 완전히 이행되는 조건 외에 정부가 보증하면 한은 금통위가 매입 결정하는 데 있어서 용이합니다. 그러나 회사채에 대해 정부가 지급보증하는 것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데, 국민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을지는 별개의 사안입니다."

한은은 이주열 총재가 최근 했던 말처럼 법 테두리 내에서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러면 무제한 91일물 RP매입 아이디어는 어떻게 나왔을까. 한 한은 관계자는 이런 말을 했다.

"한 사람의 아이디어라기 보다는 다 같이 논의한 끝에 현실적으로 선택 가능한 '최고치'를 고른 것으로 보면 될 겁니다."

아무튼 한은 직원들은 이 총재가 '모든 것을 테이블 위로' 올려두라고 한 뒤부터 매우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다른 베테랑 한은 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실물경제 충격이 오고 있습니다. 이 사태가 언제까지 갈지 모릅니다. 연준도 적극적인 QE를 하고 있으며, 우리도 한국판 양적완화를 하게 됐습니다. 법적 제한만 아니라면 한은은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습니다."

■ 정부와 한은의 연결고리에 대한 의심...그리고 부동산

한은이 말하는 '한국판 양적완화'는 제로금리에서 국채 등을 직접 사주는 선진국 중앙은행들의 양적완화 방식과는 다르다.

하지만 원하는 만큼 RP 매입을 통해 한은이 유동성을 공급해주기 때문에 한국식 양적완화로 부를 수 있는 것이다.

아무튼 '한국식 양적완화'를 모두가 칭송하는 것은 아니다. 일각에선 한은이 돌변한 이유를 정부와의 '내통'에서 찾기도 한다.

특히 '올드 스쿨' 문법에 익숙한 사람들은 한은의 예상 밖 적극적인 태도를 보면서 한은을 압박할 만한 사람들을 물색하기도 했다.

한 금융권 관계자의 말이다.

"한은이 이번 조치를 순수하게 취했다고 믿을 사람이 많다고 보십니까? 누가 보더라도 정부가 한은을 벼랑 끝으로 밀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면서 부동산 문제로 꼬인 증권사들의 계략(?)을 꼬집었다.

"증권사들이 CP 발행이 여의치 않으니 한은에 SOS를 쳤습니다. 정부든 청와대든 한은에 '아이디어'를 내보라고 했을 것이고, 한은 역시 증권사들과 함께 도덕적 해이에 동참하게 됐습니다. 증권사의 부동산 투기에 한은이 편을 들어준 면이 있지요."

시중에 도는 10조원이 넘는 증권사 매입 약정에 대한 얘기 등은 증권사 자금사정을 악화를 말해준다. 이 사람은 결국 PF ABCP가 증권사들의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고, 한은이 대마불사의 논리에 동조해 준 것으로 작금의 사태(?)를 이해했다.

한국판 양적완화를 부동산에 함몰된 한국 경제의 실상과 연결짓는 시선도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이런 말을 했다.

"사람들은 CP가 문제라고 하지요. 핵심은 뭘까요? 과도한 부동산 사업과 그 사업의 부실화 가능성입니다. 돈 나올 곳이 없으니 너도 나도 부동산으로 판을 벌였고, 그러다가 증권사가 덫에 걸린 겁니다. 그리고 누가 시켰든 한은이 동원됐고, 한국판 양적완화가 태어났습니다."

장태민 기자 chang@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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