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한아란 기자, 18일 금통위 회의 전 이주열 총재 모습
이번에도 당연히 금리인상을 주장할 것으로 예상됐던 이일형 금통위원 외에 금융위 출신의 고승범닫기

고승범 위원은 가계부채 문제 등을 다룬 바 있고 금통위원으로 일을 시작한 초기엔 상당히 도비시한 면모를 보이다가 최근 매파적인 색채를 강화한 인물이다.
이명박 정부 이후 금통위원이 제 때 채워지지 않으면서 2016년 4월에 한 꺼번에 4명의 금통위원이 임명된 바 있는데, 이들 중 두 명이 금리인상을 주장한 셈이다.
이일형·고승범·신인석·조동철 위원은 모두 2016년 4월 21일부터 임기를 시작해 현재 임기 절반을 약간 넘긴 상태다.
윤면식 한은 부총재는 매파적인 성향으로 평가 받는다. 따라서 전날 한은이 충분히 금리를 올릴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 이젠 불확실하지 않은 대외 불확실성?
7인의 금통위 구도에서 당연직 금통위원인 한은 총재와 부총재는 한 몸통이나 마찬가지로 평가 받는다.
한은은 따라서 부총재를 이용해서 10월에 금리를 올릴 수 있었지만 '대외 불확실성'을 내세워 한 번 더 지켜보는 길을 택했다.
이주열닫기

지난 해 한은이 11월 6년 5개월만의 금리를 올렸지만, 그간 한은은 '어느 때보다 높은 대외 불확실성', '상당히 높은 대외 불확실성' 등을 거론하면서 금리를 동결하곤 했다.
따라서 보는 관점에 따라선 한은이 말한 대외 불확실성 요인은 '특별히 불확실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아울러 금리 동결의 사유로는 대외 불확실성을 계속 거론하는 게 관성화됐다는 지적을 하기도 한다.
증권사의 한 채권딜러는 "한은이 금리를 동결할 때 즐겨 쓰는 표현이 어느 때보다 대외 불확실성이 높다는 식의 말이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어느 때보다 높았던 대외 불확실성이 매우 자주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외여건이 불확실한 것은 하루 이틀의 일도 아니다. 작년 11월에 금리를 한 차례 올리긴 했으나, 길게 보면 한은의 통화정책은 불확실한 상황을 핑계로 금리를 내리거나 동결해 왔다"고 말했다.
■ 정부와 관계 따른 구설수 피하고 싶었다?
이주열 총재는 최근까지 '금융불균형 시정 필요성'을 거론하면서 금리 인상 가능성을 내비쳤다.
다만 한은 총재의 금리인상 의지가 한 단계 더 표면화된 것은 정부 관계자들의 금리인상 검토 발언 이후로 볼 수 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대략 한달 전인 9월 13일 금리인상 필요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발언을 하면서 채권시장에 충격파를 던졌다. 이 발언이 파장을 일으키자 총리는 '금리는 금통위의 몫'이라며서 한 발 빼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정부의 부동산정책이 실패하고 서울 아파트 가격이 급등하자 김현미 국토부 장관이 대놓고 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과잉유동성이 생산적인 곳으로 흘러가기 보다는 서울 집값만 올린다고 보면서 금리인상을 종용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주열 총리는 금융불균형 시정 등의 언급을 내놓으면서 금리인상 기대에 부응하는 듯 싶었다.
이낙연 총리의 발언이 나오기 전엔 연내 금리동결 기대감이 커졌던 게 사실이다. 경제 위기가 아닌 상황에선 볼 수 없었던 최악의 고용지표 등을 감안할 때 금리를 올리기 어렵다는 평가가 많았던 것이다.
하지만 서울 집값이 사회문제로 비화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이 총재는 전날 금통위에서 부동산과 금리 문제를 직접 연결하는 시선에 대해 상당히 불편해 하기도 했다.
이 총재는 "통화정책은 기본적으로 주택가격 대책이 아니다"라는 꽤나 강도 높은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런 모습 등을 보면서 한은이 정부의 간섭에서 벗어나는 구도를 만들기 위해 일부러 10월 인상을 피했다는 평가도 적지 않게 나왔다.
은행의 한 관계자는 "최근 총리, 장관, 여당 등에서 금리 인상을 종용하는 말이 나왔다. 이 총재는 금리 인상 의지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면서 "하지만 정치권 등에서 인상을 말하는 시기는 일단 피하고 싶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트럼프닫기

■ 이 총재, 3:3 구도에서 캐스팅 보트 쥐는 무리수 피했다
이번 금리 결정에선 소수의견이 2명으로 늘어나 이 총재는 금리를 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무리수를 두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일형·고승범 위원이 금리인상을 주장하는 상황에서 윤면식 위원(부총재)이 인상 대열에 합류한 뒤 총재가 인상으로 결정해 버릴 수도 있었다.
이런 구도는 그러나 금통위가 대치하고 있다는 느낌을 줘 부담이 됐을 것이란 평가도 있다.
한은의 한 직원은 "총재가 무리수를 쓰고 싶지는 않았을 것 같다. 3:3 구도를 만든 뒤 캐스팅 보트를 쥘 수도 있지만, 조심스러운 대내외 환경에서 스무스하게 움직이고 싶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총재는 최근 G20 회의 등 국제회의를 다녀왔으며, 최대한 조심스럽게 움직이고 싶었을 듯하다. (금리인상) 시그널을 줬지만, 회의에서 한번 더 시그널을 주는 식으로 순리대로 움직이고 싶었을 것"이라고 추론했다.
아무튼 한은 총재가 의지만 있었으면, 금리인상이 가능한 금통위였다. 조동철 위원과 같은 강성 비둘기파를 제외하면 비교적 쉽게 금리를 인상할 수 있었을 것이란 평가도 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이번에 금통위원이 된 임지원 위원의 경우 자기 주장이 강하지 않은 인물인 데다 조동철 위원 정도를 제외하면 총재가 금리인상으로 분위기를 끌어올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무튼 총재 성향 대로 주변을 설득하지도않으면서, 최대한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패턴을 보여줬다"고 풀이했다.
장태민 기자 chang@fntimes.com